前해병대사령관 전도봉장군이 사령관 취임전에는 이런 사람이었다.
[화제] 13평주택에 살며 동네골목 청소하는 "잠롱장군"
요즘 군장성들 사이에는 전도봉 해병대사령관내정자(현 해병대부사령관)에 대한 화제로 새삼 흥미를 끌고 있다.
오는 29일 중장 진급과 함께 해병대사령관 취임을 앞둔 그가 화제가 된 까닭은 이양호 국방부장관과 이양우 변호사등과 맺은 기연이 알려지면서 이다.
이들은 30년전 당시 전군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해병대 장교들의 김해비행장 습격사건때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 사건때 전도봉 해병소위(해병간부후보 35기)는 습격주모자였고, 이양호 공군대위는 김해비행장 훈육관으로 방어자 입장이었다.
당시 이양우 해병대 군법무감(대령)이 사건중재역할을 맡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지난 3월 '뉴스피플' 장군의 비망록 '김연상 장군편'에 언급된 바 있으나 전 사령관과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보다 상세히 기술해 본다).
1966년 8월7일 일요일. 한달전 소위로 임관한 해병간부후보 35기 4명이 전날 외박을 나갔다가 귀대를 위해 부산에서 버스를 탔다.
귀대장소는 경남 진해해병기지였다.
그런데 버스안에는 김해공군기지에 근무하는 공군소위 2명이 우연히 동승해 있었다.
혈기왕성한 해병소위와 공군소위의 눈길이 오고 갔다.
버스안은 어느 새 강렬한 긴장감이 팽배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연스럽게 사소한 시비가 생겼다.
해병소위 한명이 "소위면 다 똑같은 소위냐. 해병소위의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며 공군소위들에게 펀치를 몇방 날렸다.
버스는 김해공군기지를 경유, 진해까지 가는 것이었다.
버스가 김해기지앞에 잠시 멈추자 공군소위들은 내렸고 버스는 곧 진해쪽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얻어맞은 공군소위들은 내리자마자 해병대 장교들한테 집단구타를 당했다고 동료장교들에게 알렸다.
동료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했다.
20여명의 공군장교들은 즉각 군용트럭 2대에 나눠타고 전속력으로 버스를 추적했다.
잠시후 이들은 앞서가던 버스를 따라잡았다.
트럭 한대가 버스앞을 가로막아 강제로 정차시켰다.
트럭에서 내린 공군장교들은 버스에 올라 4명의 해병소위들을 끌어내린 다음 버스를 출발케 했다.
다음 일은 뻔했다.
해병소위들은 노상에서 초주검이 되다시피 얻어터졌다.
몸이 성한 데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길바닥에서 비틀대던 해병소위들은 간신히 다음 버스를 얻어타고 부대로 귀환했다.
이들은 또 동료 해병소위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즉각 전했다.
구겨진 해병의 자존심을 회복하자는데 어느 누구 하나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
특히 간부후보 35기 출신들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에서 이미 학부과정을 마친 상태여서 엘리트의식도 매우 강했다.
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해병장교에 자원한 전도봉 소위가 주동자로 적극 나섰다.
보복작전은 치밀하게 이루어졌다.
이날 저녁 순검(점호)을 마친 후 소등하고 취침에 들어갔다
(이들은 아직 부대배치 이전이기 때문에 피교육생 신분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위장이었다.
옷을 벗고 잠자는 척했던 해병소위들은 일련의 신호와 함께 연병장에 속속 모였다.
모두 110명.
이들은 "후퇴는 없다. 죽어도 전진한다"는 해병대정신을 되새긴 뒤 후문을 통해 부대를 몰래 빠져나왔다.
근무자에겐 야간훈련이라고 둘러댔다.
이들이 부대를 떠나 진해역에 도착한 것이 새벽 3시.
부산행 기차는 새벽4시가 첫차로 김해와 가장 가까운 진영역을 경유하는 것이었다.
새벽 5시쯤 이들은 진영역에 도착했다.
때마침 역주변 공사장에 트럭 2대가 주차해 있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이들은 트럭을 낚아채 분승, 김해공군기지로 무작정 돌진했다.
위병소의 저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통과했다.
해병소위들이 공군기지 내무반 막사 앞에 당도한 시각이 상오 5시30분쯤이었다.
이들은 막사주변의 전화선을 끊은 다음 안으로 쳐들어갔다.
내무반안의 공군장교들은 아직도 단잠에 빠져 있었다.
옷을 벗고 있는 터여서 누가 소위이고 중위인지 계급을 분간할 수 없었다.
일일이 따질 필요가 없었다.
잔뜩 독기를 품은 해병소위들은 "우린 해병대다.
다음으로 너희들에게 따끔한 맛을보여주기 위해 왔다"고 소리를 지르고는 잠자고 있던 공군장교들을 향해 사정없이 주먹과 발길질을 퍼부어댔다.
여기저기서 '우당탕' '퍽퍽' 소리가 나면서 내무반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해병소위들이 막사 출입문을 지키고 있었지만 일부 도망자가 생겼다.
도망자는 곧장 당직사관실로 달려가 괴한들이 들어와 난동을 부린다고 보고했다.
사건은 확대일로였다.
비상 사이렌이 울리고 부대 요소요소의 대공포가 불을 뿜어댔다.
적이 습격해 왔을 때 반사적으로 취하는 비상조치였다.
해병소위들은 일단 보복작전을 중지하고 연병장으로 나왔다.
주동자인 전도봉 소위는 당직사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연병장에 집결했다.
이때 당직사관이 이양호 대위(훈육관)였다.
이양호 대위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했다.
이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공군장병 1천명 정도가 삽과 곡괭이 등을 들고 해병소위들을 때려잡을 듯이 돌멩이를 던지며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들은 비행장 인근에 주둔해 있던 기간병들이었다.
당황한 해병소위들은 일단 돌멩이 세례를 피하기 위해 활주로 끝쪽으로 달렸다.
그곳에는 수송기 30여대가 서 있었다.
비행기밑으로 가면 비행기 파손을 우려해서 돌멩이를 던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오였다.
비행기가 있건 말건 공군병사들은 돌멩이를 계속 던졌다.
비행기의 유리창이 마구 깨졌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해병소위들은 할 수 없이 비행기 뒤쪽에 있는 철조망을 부수고 도망쳤다.
일부는 공군장병들과 육박전을 벌였다.
부상자도 많이 발생했다.
공군과 해병대사령부에 보고된 것도 바로 이 시각이었다.
잠시후 해병소위들은 진해 해병기지에서 보낸 트럭 2대에 나눠타고 돌아갔다.
이날 양쪽 편싸움으로 생긴 결과가 꽤 심각한 편이었다.
해병소위 1명 사망, 14명 중상, 공군장교 25명 중상 및 비행기 25대 파손 등.
사건은 청와대까지 즉각 보고됐다.
국회에서도 들고 나왔다.
강기천 해병대사령관이 청와대와 국방부를 드나들며 뒷수습을 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결국 주동자인 전도봉 소위가 모든 책임을 지고 군복을 벗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
이때 전 소위는 사건처리를 맡은 이양우 법무감과 만났다.
이 법무감은 전 소위에게 "자네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결정이 가상한 만큼 대신 지금 옷을 벗더라도 군필의 혜택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전 소위는 곧 군복을 벗었다.
그러나 3개월뒤 병무청으로부터 징집통보를 받았다.
그는 다시 이 법무감을 찾아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이 법무감은 자신의 실수라며 국방부에 소청을 제기하라고 일러주었다.
며칠뒤 소청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소청자료를 훑어본 뒤 전 소위의 행동에 감명을 받은 심사위원들은 "다시 소위계급장을 달아주면 국가를 위해 헌신할 각오가 돼 있느냐"고 물었다.
이렇게 해서 3개월만에 다시 그는 소위계급장을 달았고 이듬해 월남전에 참전, 소대장으로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그는 이양호 국방부장관과 비행장 습격사건때 악연을 맺었으나 이양우 변호사의 도움으로 군복을 다시 입고 현재는 각자 국방의 책임을 진 중요한 자리에서 만나고 있다.
전 사령관은 "이 국방부장관과는 한.미연합사 등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몇차례 있었다"면서 "가끔 그때가 생각나는지 나를 보면 빙긋이 웃곤 했다"고 말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전 사령관은 현재도 시장골목의 13평짜리 허름한 집(서울 성북구 보문동 자택)을 갖고 있을 만큼 청빈한 장군으로 귀감이 되고 있다"면서 "평소 검소와 정직함이 몸에 밴 장군"이라고 귀띔했다.
보문동에 사는 한 주민은 "전 사령관은 가끔 자택에 들를 때마다 동네거리청소에 솔선수범하고 불우이웃돕기에도 앞장서는 등 존경받는 장군"이라면서 청빈한 성품때문에 전 장군을 '잠롱장군'이라고도 부른다고 말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신념으로 살아가는 전 장군은 세아들도 해병대에 입대시켜 '해병가족'을 이루고 있다.
아들 3형제 가운데 첫째와 둘째아들은 이미 해병대에서 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막내아들은 아버지 취임식날 해병대 소위로 임관할 예정이다.
출처 뉴스피플 (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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