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해병대원은 소총수
"모든 해병대원은 소총수(Every Marine is a Rifleman)" 라는 신조는 해병대 특유의 실질적, 정신적 요구에 의해서 생성된 것이다.
상시 출전 준비태세를 완비하고 상륙작전을 주임무로 하는 특수목적군인 해병대의 부대구조는 이 신조가 지니고 있는 중심적 의도를 잘 나타내준 것이다.
해병대는 특수목적군이기 때문에 장비 및 물자가 경량화 되어야 한다.
해병대에 있어 후방지역이란 있을 수 없으며 그 어느 해병대원도 전투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없다.
모든 해병대 작전의 성공은 신속성, 작전적 융통성 그리고 이 두가지를 전투력으로 직결시킬 수 있는 해병대원들의 능력에 달려 있다.
기동의 한 요소로서 작전에 직접 투입되는 해병대원들은 군수기지 건설과 차량호송, 보급품 지원등은 물론 필요 시에는 적과 직접적인 전투임무도 수행하는 전투근무지원 담당 동료 해병대원들의 지속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1951년 8월 27일
김일성고지(924 고지)와 모택동고지(1026 고지) 전투에서 해병대 제1연대 군의관 장익열 중위는 전방에서 후송되어온 부상병 치료에도 눈코뜰새가 없었다.
그러한 와중에 북괴군 1개 연대가 전방에서 전투중인 해병대 제1연대의 공격력을 둔화시킬 목적으로 야음을 이용하여 후방에 위치한 연대본부를 기습하였다.
이때 연대본부의 최선임자는 장중위 뿐이었다.
장중위는 황급히 1개 중대를 급조 편성하여 북괴군 기습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는데 성공하였다.
그후 연대장은 장중위의 전공을 치하하자 그는
"나는 그저 연대본부를 지키는 사명을 다 했을뿐, 우리 위생병과 주계병들의 용감한 전투로 적들이 물러 갔습니다."라고 당시 전투에 참가한 부하들에게 그 공을 돌렸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최초로 명예 훈장을 수여받은 미 해병대 조종사 Henry Hank Ellod 대위는 'Wake'섬의 전투기 조종사였다.
영웅적인 도서방어작전 15일만에 그가 조종하는 항공기가 격추 당했는데 그는 그후 해병대 소총소대를 지휘하다가 전사했다.
장익열 중위나 미해병대 엘로드 대위를 비롯한 여러 해병대원들이 보여준 이와 같은 영웅적 행동들은 모든 해병대원들은 소총수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으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해병대원들의 이와 같은 모습과 함께 해병대에 보병이외의 다른 병과가 있다는 사실에 타군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해병대 라는 표식외에는 병과 표시가 없다.
이와 같은 것은 우리의 어느 한 부분에 대해 해병대원이 아닌 다른 자들이 갖게되는 '해병대는 특별히 뛰어나다' 라고 인식을 갖게 해주는 것의 하나이며, 특별한 인식을 바탕으로 해병대의 제병과 주특기에서도 탁월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해병대원에게 동료 해병대원보다 더 고귀한 것은 없다.
이러한 전통적 유대는 장교, 사병 구별 없이 모든 해병대원이 공통적으로 받게 되는 교육 훈련에서부터 기인하며 또한 상륙작전 고유의 위험과 난관을 함께 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저 대열 속의 해병대원들은 나의 가족이요 가정이다.
그들은 나에게 지금까지의 어느 친구보다도 또한 앞으로의 어느 친구보다도 가까운 친구들이다.
그들은 나를 저버리지 않았으며, 나 또한 그들을 저버릴 수 없다.
그들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만 죽게 하고 나만 살수 잇는 길을 택할 수는 절대 없는 것이다.
나는 지금 분명히 알고 있다.
그들은 부대기나 국가 또는 해병대, 영광과 같은 그 어떠한 추상적인 것을 위해 싸우지 않으며, 그들은 전우를 위해 싸운다.
전쟁터에서 자신을 위해 죽어 줄 전우가 없는 해병대원이나 또는 전우를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칠 뜻이 없는 해병대원은 진정한 사나이가 아니다.
그는 정말 저주받은 불쌍한 인간이다."
이와같은 해병대원간의 응집력이 어느 특정 부대의 일만은 아니다.
해병대 조직 전체가 이루어 낸 기능인 것이다.
어느 한 해병대원이 실무부대에 처음 배치되어 전입신고를 할 때 그 부대의 지휘관은 개인적으로 그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해병대원이라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그 해병대원이 전문적인 그 무엇인가를 갖추었다고 인정하며, 해병대내에서 그들이 어떻게 알려져 있는가에 상관하지 않고, 해병대 훈련을 통해 지워질 수 없는 '소총수( Rifleman )'라는 것이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해병대원이 전쟁에 나가거나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이와같은 훈련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전투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동료 해병대원들은 대체로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해병대원은 언제나 고난의 길을 가기에 그렇지 못한 해병대원들은 "남겨져 있다 (Left out)" 는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은 자신감으로 인해서 모든 해병대원은 싸울 수 있으며 모든 해병대원은 임무 완수에 기여 할 수 있다.
"모든 위험을 함께 나누고 동료 해병대원의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느끼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들을 해병대에 보내는 예비역 해병대원 출신의 어느 한 아버지는 아버지로서의 심정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내 아들이 속해 있는 해병대가 위험한 곳에 가지 않기를, 그러나 가야 한다면 내 아들이 결코 전선에서 두번째 대열에 서지 않기를 ....."
이와같은 해병대의 자신감은 전통과 훈련으로부터 비롯된다.
해병대원들은 전투와 훈련을 겪으면서 그 자신과 동료 해병대원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과 믿음을 갖게 된다.
이러한 것 때문에 전투에서의 승리와 생존이 의문시 되는 어려운 상황하에서도 확고 부동한 군기를 유지하면서 전투에 임하며 동료 해병대원과 소속된 부대 그리고 전체 해병대를 위해 싸우면서 각 개인의 확신은 서로의 확신으로, 서로의 확신은 해병대 전체의 확신으로 이어진다.
해병대원 각자나 서로가 가진 이 자신감은 승리와 생존 그리고 패배와 전멸간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게 된다.
해병대에 근무한다는 것은 어느 한 팀(Team)의 일원으로 근무함을 의미한다.
해병대가 하는 모든 것은 팀워크(Team Work)이다.
해병대 사령부로부터 소총중대의 최말단 화력조에 이르기까지 전 해병대 조직은 하나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하나의 공동목표를 지향하면서 고도로 훈련된 해병대원들로써 엄격한 선발과정을 통해 구성된 하나의 그룹인 것이다.
1950년 장진호전투에서 미해병대 포병부대원들이 주계병이나 행정요원들과 함께 수송장교인 어느 한 중위의 지휘하에 소총소대를 편성하여 소총중대 역활의 일부를 완벽하게 수행해 내는 것을 본 한 군사 옵저버는 깜짝 놀랐다.
대다수의 경우 전체부대 이동 계획의 성공은 중대급 이하인 소부대급의 작전수행 능력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예하작전 수행부대는 타부대에 소속되어 있던 해병대원들을 급조편성하여 작전에 투입하게 되었는데 전체적인 작전의 성공은 이와 같은 부대들의 성공적인 임무수행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소부대의 작전성공은 편성된 해병대원들이 한 팀의 일원으로서 자기 역활에 최선을 다하고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자기자신을 통제하면서 팀의 목표를 자신의 이익보다 우선 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도솔산지구 전투를 비롯한 수 많은 전투에서 입증된 '모든 해병대원은 소총수'라는 전통과 정신은 해병대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해병대원들 만이 느낄 수 있는 이 전통과 정신은 훌륭한 제복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격전의 현장에서 전신으로 퍼져 들어오는 전장의 위험과 난폭함 그리고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를 함께 나눈 경험에서 비롯되는 이 정신은 미대법원 판사이자 남북 전쟁참전 용사인 Wendell Holmes가 이야기 한것처럼 '불꽃과 같은 강렬함(Touch of Fire)'과 같은 것이다.
태백산맥 한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도솔산 높은봉(1148 고지)에는 "해병대가 명예 걸메고 목숨 내건 싸움터" 도솔산지구 전투 전적비가 아침 안개사이로 햇살을 받으며 그 당시 산화한 선배들의 넋을 기리면서 오직 승리와 불굴의 투혼을 간직한채 우뚝 솟아 있다.
전우의 시체 위에서 해병대 특유의 '해병대 혼'을 일깨우며 최후의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안되면 될 때까지', '불가능이란 없다', '하면 된다'는 만능정신으로 세계 최강 미해병대도 눈아래 굽어 보겠다는 선배들의 처절하고 끈질긴 투쟁의식을 보여주는 이 전적비는 오늘의 후배 해병대원들에게 '해병대 쌓아올린 승리의 산' 도솔산과 함께 해병대의 상징으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도솔산의 노래
1. 하늘의 우뢰소리 땅 위의 아우성
불바다 피투성이 새우기 몇 밤
이 나라 해병대가 명예 걸메고
목숨내건 싸움터 도솔산 일세
후렴 : 오 오 도솔산 높은봉
해병대 쌓아올린 승리의 산
오늘도 젊은 피 불길을 뿜는다.
2. 아침 안개 사이로 햇살을 받으며
돌가루 먼지 속에 그리던 간밤
땀투성이 얼굴을 들어볼 때엔
도솔산 고지 고지 발 아래 있네
3. 돌바위 벼랑에도 골짜기에도
손발의 피땀으로 아로 새겨진
해병대의 그 이름 가실리 없어
세상사람 일러라 도솔산 싸움
'Belleau Wood'의 미해병대 기념비를 방문해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느끼게 된다.
숲속 빈터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면 기념비 위의 해병대원 동상이 어느새 살아 움직여 1918년 6월 어느날 아침 시들어 가는 독일군 시신 앞으로 용감히 돌진하는 듯 하다.
일순간에 그 해병대원의 동상이 과거와 현재, 국가와 해병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수천 수만 해병대원의 영혼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 같다.
또한 그 동상은 지금의 해병대원과 함께 미래에 해병대원이 될 수천 수만의 젊은이들을 위해서도 서 있는 것이며, 장차 국가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상황속에서도 항상 모든 해병대원들의 마음속에 "모든 해병대원은 최상의 소총수(Every Marine is first and foremost a Rifleman)"라는 확신을 심어주면서 해병대원들에게 명예심과 의무감을 고취시켜 줄 것이다.
출처 : 전도봉 장군님 글
'★해병대 사령관 글 > 22대사령관 전도봉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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