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 POLICE(2)
모든 훈련소의 하루는 나팔로 시작된다. 정각 6시가 되면 일석 점호와 함께 하루의 과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훈련소는 오나가나 작은 자갈을 깔아놓았다.
해병은 훈련도 거의 맨발로 받았다.
맨발로 잔자갈 위를 뛰노라면 처음엔 누구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불가능이란 해병대의 사전에는 없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것~ 이것이 해병이다.
뛰고 또뛰고 빡빡기고~기압받고~ 빳다맞고~~
이것이 해병대의 훈련이다. 다 견딜수 있다.
그러나 배가 너무도 고팠다.
나이도 젊었지만 기본량이 너무나 적다보니 배가 고플 수 밖에!!..
훈련중에는 이따금 수로에 떠내려가는 콩나물을 건져먹기도 하였다.
배고픔을 이겨내는 것도 훈련이고 따지고 보면 인생만사 훈련 아닌것이 어디 있으련만....
나는 해병대 입대하기 전에 익히 들었었다.
6.25당시 제주도에 훈련소가 있었다.
이 훈련소 출신들은 얼마나 배가 고팠기에 들녘을 행군하다 똥물을 뿌려놓은 무우를 뽑아먹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에서 훈련을 마치고 부산항에 입항하면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저기 명태 배들어왔다"고 할 정도로 명태처름 말라 비틀어져 왔다는 말이다.
그래도 그들은 조국을 위해 내 한 목숨 초개와 같이 버리고 조국을 위해 싸우지 않았던가?
내가 지급받은 보급품들. 몸을 옷에 맞추고 발을 신발에 맞추는 것이다. 맞을리가 만무하지 않던가?
그래도 좋다.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피복에서부터 신발은 물론 심지어 팬티까지도 국산은 단 한가지도 없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U.S.A.
이 모양이니 어떻게 배 곯이지 않겠는가?..
아!..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그대의 빈천은 삼각산에서 청계천 빈민굴에 이르기까지~~
금정산에서 영도다리 밑에까지 흐르지 않는 곳이 없구나.
우리는 언제 빈곤에서 탈피하여 자주국방을 이룩하고 통일을 이룩하겠는가?
해병대 훈련소의 훈련의 강도는 나날이 높아갔다.
악으로~깡으로 1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갔다.
우리 앞에 선배들이 수료식을 마치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그들이 웬지 부르웠다. 수료식이 있으면 입소식이 있는 법. 신병들이 그만큼 들어온 것이다.
훈련은 곧 실전이다. 특히나 해병대 교육은 팀웍이 잘형성되어야 했다.
"싸워서 이기고 지면 죽어라"
이것이 필승 해병의 신념이다. 이곳 훈련소에도 토요일 오후에서 일요일 오후까지 가족면회가 허용이 되었다.
훈련병이면 누구나 가족이 기다려진다. 더솔직히 말하자면 배가고프기 때문이다.
나도 어머니께서 면회를 오셨다. 도망을 치다시피 입소를 하였으나 행방을 알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고생이 많겠구나?"
"어머니 죄송해요"
나는 염치도 없히 어머님이 싸오신 통닭이며 김밥을 정신없히 먹어 치웠다.
배가 고프고 보면 염치고 체면이고 없는것 그런것 따위는 배부른자들이 하는 소리다.
혁띠를 겨우 맬 정도로 먹어두어도 돌아서면 또 배가 고픈것은 웬일일까?
어머니가 돌아서서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제사 삭발의 모정 같은 진한 어머니의 정을 느꼈다. 저 무상인 사랑의 의미에서 이처름 아프고 뜨거운것. 또 없으리~~
슬플때나 괴로울때나 내마음의 등불되어 요요한 별밭에 다시 피어나리니 모성은 고독한 은총의 등이어라!!...
어머니!..성공을 앞세우고 돌아가는날, 그때 어머니의 하해 같은 은혜에 보답하리라.
해병대의 교육중 필수과목 처럼 되어있는 것이 천자봉 행군이다.
쳐다보기만 해도 그육중하고 가파른 산세에 가위가 눌릴것만 같은 천자봉!!..
해병은 완전무장을 갖춘채 그 산을 정복한다.
이것이" 해병혼"이다.
해병은 행군간에 낙오병이 발생하면 숨이 붙어 있는 한 업고 가든 메고 가든 그 중대가 책임을 지고 동행해야한다.
악으로~깡으로 잇빨을 깨물면서 행군간에 군가는 목에 피가 올라올 정도로 불러제꼈다.
그런데 그 군가는 때로는 이상한 마력이 있어 새로운 힘을 솟구치게도 하였다.
세월은 말없이 흘러갔다.
남쪽지방이라고 겨울이 없는것이 아니다 천자봉에 백설이 하얗게 뒤덮이고 살얼음 낀듯한 진해의 앞바다!.
해병은 살얼음 낀 바다에 던져져도.시궁창에 던져져도 그어떤 악조건에서도 이겨낸 강인한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 지는것입니다.
입소할때 보급받은 피복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다 낡아버렸다.
더러는 바늘로 여기저기를 꿰매어 놓았다.
그 피복을 만약 내 개인이 보관할수만 있다면 나는 영원한 기념으로 보관을 하련만!!..
15주가 흘러갔다. 이제 1주일이 남았다.
다음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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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 POLICE(1) (0) | 2015.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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