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 전통·비화

휴전후의 발전기 - 상륙전 훈련

머린코341(mc341) 2016. 8. 14. 16:22

휴전후의 발전기 - 상륙전 훈련

 
  휴전 후 해군과 해병대에서 설정한 최대의 정책목표는 해병대의 주임무인 상륙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배양하는 일이었다. 그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해병대에서는 1954년 하반기에 BLT(대대상륙단)훈련을 실시할 준비를 갖추는 한편 상륙전의 교리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54년 10월 마침내 거제도에서 첫 번째의 BLT훈련을 실시했다. 그 훈련에 참가했던 상륙군부대는 1연대 1대대였으며, 그 훈련에 지원된 각종 함정은 18척(미 해군5척, 한국해군 13척). 상륙군부대에 배속된 부대는 포병 1개 중대와 공병 전차 수륙양용차 각 1개 소대었다.


  제1차 BLT훈련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된 해병대에서는 1955년초에는 2연대 2대대가 참가한 제2차 BLT훈련을 실시했고(거제도에서) 8월에는 3연대 3대대가 참가한 제3차 BLT훈련을 실시한데 이어 1956년 말까지는 나머지 모든 보병대대의 BLT훈련을 실시 완료했다. 그런 다음 1957년에서 1958년 전반기까지에는 3회에 걸친 RLT(연대상륙단)훈련을 실시하고 1958년 후반기(10월)에는 여단규모의 상륙전 훈련을 실시했는데, 1957년에 실시한 그 1차 RLT훈련(작전명칭-행운의 범)에 참가한 부대는 1연대였고, 2차 RLT훈련(작전명칭-청룡)에 참가한 부대는 제2연대, 제3차 RLT훈련(작전명칭-행복한 사자)에 참가한 부대는 3연대였다. 그리고 여단급 상륙전훈련(작전명칭-폭풍)에 참가한 부대는 제1임시여단이었다.


  한편 휴전 후 계속 금촌지구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사단은 1959년3월 하순경 주한 미 해군사령관의 작전지휘 하에 현 동해안 기지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그 해 봄(4.19~5.3) 한·미 해병대에서는 합동여단 상륙전 훈련(작전명칭-거북이)을 양포리 해안 일대에서 실시한데 이어 그 해 10월에는 해병 제1상륙사단[-]이 참가한 최초의 사단급 상륙전 훈련(작전명칭-쌍룡)을 양포리 월포만 해안일대에서 실시함으로써 상륙전 훈련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수림하게 되었고, 그러한 발자취를 기록하게 됨으로써 유사시에 전승(戰勝)을 선도할 전략기동예비대로서의 능력과 위상을 그만큼 강화할 수 있었다.


  상륙전은 계획단계로부터 시작하여 실시단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수행되는 작전이므로 경험이 전혀 없던 우리 해병대로서는 훈련을 실시함에 있어 미 해병고문단과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미 해병부대(제3상륙군)로부터 많은 협조와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특히 합동훈련을 실시할 경우에는 합동훈련계획에 참여케 된 아군측 계획단 요원들의 오키나와 계획단본부 방문이 잦았고, 또 오키나와의 미 해병부대에서도 관계 요원들이 혼련이 끝낱 때까지 한국의 동해안 기지를 뻔질나게 방문함으로써 6.25전쟁 때 맺었던 한·미 해병대의 형제적인 전우애를 더욱 굳게 다졌다.


  한편 각급 상륙전 훈련에는 그 규모에 상응하는 해·공군의 지원이 수반되어 실전을 방불케 하는 입체선을 전개했는데, 1959년에 실시한 한·미 해병대의 합동여단 상륙전 훈련 때 동원된 한·미 해군의 각종 함정 수는 63척(한국해군 27척, 미 해군 36척). 한·미 공군에서 지원한 각종 항공기 수는 73대에 달하였고, 미 8군에서는 1개 연대전투단의 가적부대를 차출했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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