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헬리콥터산업 성공 가능성은?
지금이 소형 무장헬기(LAH)·민수헬기(LCH) 개발의 최적기다!
⊙ 1967년 미군(美軍)이 증여한 OH-23 Raven 3대로 시작, 2001년 한국형 다목적헬기(KMH) 사업에서 2004년 한국형 헬기 개발사업(KHP)으로 전환
⊙ 수리온, 서울시 소방헬기 선정사업에 서류도 못 낸 배경
⊙ 세계 6위권 군용(軍用)헬기 보유국이지만 ‘사실상’ 독자 개발 헬기 없어
⊙ 국산 헬기산업도 자동차산업처럼 성장 가능성 충분
▲ 최초의 국산헬기 수리온.
헬기는 산악 지형이 많은 우리에게 중요한 항공무기 체계 중 하나다. 육군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무기체계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 6위권의 군용헬기 보유국이다. 그러나 베트남전(戰) 때 활약한 UH-1H와 4인승 소형 헬기에 ‘억지로’ 무장(武裝)한 500MD가 아직도 주력 군용헬기다. 우리 군(軍)이 운용 중인 대부분의 헬기는 외국산 도입 기종으로, 원제작사 부품생산 중단 등으로 운용 유지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 바로 최초의 국산 기동헬기인 ‘수리온’이다.
헬기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여러 용도의 헬기(파생형 헬기)를 만들 수 있다. 수리온 생산업체인 주식회사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은 ‘수리온 파생형’ 헬기를 통해 현재 전량 수입해서 쓰고 있는 경찰 및 소방헬기,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해상(海上)작전헬기, 의무 후생 및 탐색구조헬기, 촬영용 헬기 등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수리온은 최근 ‘체계결빙’이라는 악재(惡材)에 발이 묶여 있다. 더군다나 서울소방본부와 부산소방본부가 외국산 소방헬기를 선호함으로써 KAI의 국산 소방헬기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국산 헬기 개발 역사와 현황, 문제점들을 짚어 봤다.
한국 헬기 개발 약사(略史)
국내에 처음 도입된 헬기 OH-23 Raven.
우리나라에 헬기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67년이다. 당시 미군(美軍)이 운용하던 OH-23 Raven 3대를 국군에 증여한 것. OH-23 도입을 발판으로 육군항공학교에 회전익학과를 창설하고 회전익 조종사를 배출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증여받은 기종을 운용하는 데 머물렀다. 도입 이후 10년 가까이 UH-1H 등을 운용하는 것이 우리나라 헬기 ‘역사(歷史)’의 시초다.
이후 우리나라는 1976년 미국 맥도널더글러스(McDonnell Douglas)사(社)의 소형 기동헬기 500MD를 면허생산 방식으로 도입했다. 면허생산 방식이란 원제조사로부터 기술협력 또는 생산 권한을 양도받아 국내에서 해당 제품의 부품을 조립해 소요군·소요처에 완제품을 최종 납품하는 방식이다. 500MD는 1976년부터 1980년까지 대한항공에서 300여 대를 생산해 우리 육군 등에 납품했다. 헬기 소요(수요)에 따라 대전차(對戰車) TOW 미사일을 장착해 운용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1981년부터 1993년까지 맥도널더글러스사를 인수한 미국 휴즈(Hughes)사에 500대 분의 동체를 납품함으로써 1600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린 바 있다.
500MD의 후속으로 중형 기동헬기 도입 사업이 1987년 시작됐다. 주(主)계약자로 500MD를 면허생산한 대한항공이 선정됐고, 기종은 미국 시코르스키(Sikorsky)사의 UH-60 블랙호크(Blackhawk)였다. 1990년 사업계약이 체결된 후 1999년까지 총 138대가 대한항공에 의해 면허생산됐다.
1980년대 말 한국은 12종, 700여 대를 갖게 되면서 세계 7위 군용(軍用) 헬리콥터 보유국이 됐다. 그러나 보유 기종이 전량 외산(外産)이어서 성능개량이 불가능했다. 전력증강을 위해 추가비용을 들여서라도 다른 기종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배경으로 ‘KLH(Korean Light Helicopter)’라 불리는 소형헬기 도입사업이 시작됐다. 그러다 1995년 국방부가 ‘다목적헬기(Multiple Purpose Helicopter·MPH)’ 사업을 추진하면서 독자적인 헬기 개발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삼성항공(현 KAI의 모체 중 하나)은 연구진을 미국의 벨(Bell)사에 파견해 SB-427 개발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닥쳐 온 IMF 외환위기로 국방예산 절감 차원에서 다목적헬기 사업은 백지화됐다.
2000년 대형(大型) 공격헬기 도입의 필요성을 느낀 국방부는 AH-X(대형공격헬기) 사업을 진행했다. AH-X사업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기종이었던 아파치의 초기 도입비용은 당시 가격으로 대당 250억원. 여기에 운영·유지비도 높게 책정돼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향후 독자 모델 개발을 위해 ‘절충교역을 통한 신기술 확보’ 쪽의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침내 2001년 6월 합참에서 ‘한국형 다목적헬기(Korean Multi-role Helicopter·KMH)’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먼저 기동헬기를 개발한 후 공격헬기를 순차적으로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KMH 사업은 기동헬기와 공격헬기를 분리, 개발하는 쪽으로 변경됐다. 2004년 한국형 다목적헬기(KMH) 사업은 한국형 헬기 개발사업(Korean Helicopter Program·KHP)으로 전환된 것이다. 2006년 KAI와 국방과학연구소(ADD),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등이 개발 주관 기관으로 선정됐다.
첫 국산헬기 수리온
수리온이란 매과 조류를 뜻하는 ‘수리’와 ‘100’이란 뜻을 가진 우리말 ‘온’의 합성어(合成語)다. 독수리의 용맹함과 100% 국내 제작을 염원해 지은 이름이다. 수리온은 한국형 헬기 개발사업(KHP)의 일환으로 설계, 제작된 중형 기동헬기이다. 총 개발비는 1조3000억원이다. 2006년 6월 개발에 착수한 지 38개월 만인 2009년 7월 경남 사천에 위치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첫 출고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독자적으로 헬리콥터를 개발한 세계 11번째 국가가 됐다. KAI는 2022년까지 약 4조원 규모로 200여 대의 수리온을 생산 납품해 노쇠한 UH-1H와 500MD 헬기를 대체할 계획이다. 수리온 사업이 예정대로 갈 경우 약 12조원의 산업파급 효과와 5만여 명의 일자리 창출도 기대된다.
수리온은 최대 이륙중량이 약 9t(2만 파운드)인 중형 헬리콥터로, 분당 150m 이상의 속도로 수직 상승할 수 있다. 약 2700m 상공에서도 제자리 비행이 가능해 한반도 전역 산악지형에서 작전이 가능하고, 게처럼 옆으로 날거나 후진 비행 및 S자 형태의 전진 비행도 가능하다. 또한 승무원을 제외한 완전무장 병력 9명을 태우고 최대 140노트 이상의 속도로 날 수 있다. 섭씨 영하 32도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다.
기관포는 기본으로 미사일 무장이 가능하다. 적의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레이저, 미사일 등에 대한 경보(警報)수신기를 장착했고, 채프·플레어(미사일 기만기) 발사기도 갖췄다. 수리온은 군용·관용·민간용 헬리콥터로 의무후송, 해상후송, 재난구조, 수색 등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LAH·LCH 개발의 중요성
LAH, LCH 개념도.
우리 정부는 2010년 항공우주산업개발 정책심의회에서 2020년까지 항공산업 전략기종으로 소형 무장헬기(Light Armed Helicopter·LAH)와 소형 민수헬기(Light Civil Helicopter·LCH)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11년부터 2012년까지 2년간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이 탐색개발을 완료했다. 현재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의결을 거쳐 KAI가 해당 모델의 체계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군 소요 및 전력화 시기를 생각하면 지금은 LAH·LCH 개발의 최적기이며 놓쳐서는 안될 시점이다. 민군(民軍) 헬기산업 현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현재의 기회를 놓칠 경우 향후 30년간 국내 개발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LAH·LCH 개발은 수리온 사업에서 확보한 인력 및 인프라를 토대로 국내 헬기 개발 역량 강화를 위한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LAH와 LCH를 통합개발로 추진하고 있는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개발비용 절감효과가 있다. 둘째,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중소 부품업체들의 지속적인 생산라인 유지로 안정적인 후속 군수지원이 가능하다. 셋째, 군수헬기 소요에만 의존해서는 헬기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군수헬기를 기반으로 민수헬기 시장에 진입해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LAH·LCH 개발사업의 모델은 유로콥터사(社)의 EC155이다.
수리온의 문제점
LAH, LCH 개발 원형 기종 유로콥터 EC155.
순탄히 진행되던 수리온 사업이 2016년 들어 제동이 걸렸다. 2016년 1월 ‘수리온 윈드실드(앞 유리창) 파손’에 이어 4월엔 ‘중앙동체 프레임 일부 균열’, 9월엔 ‘국산 헬기 수리온 납품중단 미국 기체(체계) 결빙 테스트 통과 못해’ 등의 기사가 이어졌다. 일반인에게는 마치 수리온에 큰 결함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보도였다. 물론 전문가들에겐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겪는 성장통’과 같이 문제였다.
회전익(헬기) 항공기는 고정익(비행기) 항공기와 다르게 ‘돌아가는 구성품’이 많다. 부품의 회전 주파수를 ‘고유 진동수(natural frequency)’라고 하는데, 개별 부품의 진동이 헬기 전체에 영향을 준다. 일반적으로 여객기(비행기)의 경우, 날개 외부에 장착된 엔진만 돌아가기 때문에 승객은 이착륙할 때 가장 큰 진동을 느낀다. 그러나 헬리콥터와 같은 회전익 항공기는 주(主) 로터, 꼬리 로터, 엔진, 트랜스미션 등 각각 다른 회전속도로 돌아가는 구성품이 많아 많은 진동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헬기 개발 엔지니어들은 “헬기 플랫폼 하나를 개발하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진동과 싸워야 한다”고들 한다.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왜 독자적인 플랫폼을 개발하지 못하느냐”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 진동을 해결하는 것은 고난도(高難度) 문제이긴 하지만 시간과 돈의 싸움이다. 다시 말해 신규 플랫폼에 따른 비용과 리스크가 증가하는 것이다.
수리온의 경우, 유로콥터의 플랫폼을 기본으로 채택했지만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바꿨기 때문에 실전 운용 과정에서 크고 작은 진동 및 이로 인한 문제점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났고 이를 보완해 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헬기의 완성도는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의 주력 헬기인 UH-1H, UH-60, 500MD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운용되는 헬기들은 모두 양산 후 10년 이상 오랜 기간에 걸쳐 진동 문제를 해결했다.
이러 배경지식이 있다면 최근 언론에 보도된 ‘수리온’ 관련 기사는 헬기의 완성도를 높여 가는 ‘성장통’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이 지적한, 수리온 동체(胴體) 하부 진동흡수기 주변 일부 균열 문제는 비행성능과는 관계없다. 프레임 부분을 새로 만들어 교체해 주면 된다. 이는 항공기뿐만 아니라 자동차 등 모든 이동체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윈드실드 파손’의 경우 설계·구조상의 문제로 인한 뒤틀림·비틀림이라면, 비행안전에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외부 충격에 의한 균열이었다. 쉽게 말해 자동차 주행 시 돌멩이 같은 외부 이물질에 의한 앞 유리창 파손과 같은 케이스로 보면 된다.
최근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된 ‘체계결빙 문제’의 경우, 그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이다. 애당초 방사청과 KAI는 ‘중간’ 이상의 기준으로 정했다. 수리온의 원형인 수퍼푸마에도 적용하지 않았던 ‘중간(Moderate)’ 단계의 결빙 운용능력을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결빙강도는 소량→ 약간→ 중간→ 다량 등 4단계로 구분한다. 최근 육군이 도입한 미국 보잉사의 AH-64 아파치 공격헬기도 ‘약간 결빙’ 능력만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 당국과 제작사는 그보다 더 높은 기준을 설정한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요구도를 내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를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기술적 해결책은 분명히 있다. UH-60과 같은 ‘중간 결빙’ 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세계 유명 헬기들뿐만 아니라 아래 다루게 될 서울 소방헬기 후보 기종인 이탈리아 아구스타 웨스트랜드사(Augusta Westland)의 AW-189 기종도 3년에 걸쳐 결빙 문제를 해결했다.
서울시 소방헬기 구매사업
헬기산업은 기본형을 먼저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용도의 ‘파생형’ 모델을 생산, 판매할 경우 더 많은 부가가치를 거둘 수 있다. 그동안 수리온은 경찰헬기 및 소방헬기를 개발해 경찰청, 해경, 산림청 및 제주소방에 납품해 왔다. 최근에는 군용 의무후송 전용헬기의 ‘전투적합성 판정’과 해병대의 ‘상륙기동헬기’ 납품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최근 수리온 기종은 대한민국 수도(首都) 서울시가 발주한 소방헬기 구매사업에 서류도 못 내 보고 탈락했다. 수리온 소방헬기의 성능이 서울시가 요구한 기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결국 외산(外産)업체 아구스타 웨스트랜드의 ‘AW-189’만 입찰했고 현재 수의계약이 진행되고 있다. 이를 두고 여러 의혹이 언론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
항공전문가인 필자는 서울시가 국산 헬기를 구매해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애국심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서울시가 요구하는 기준에 수리온은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서울시 소방헬기의 요구성능 기준이 조금만 낮았더라면 ‘수리온 소방헬기’가 외국산 유명 헬기들과 거의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국민적 관심이 가장 중요
헬기 수요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웃 러시아, 중국, 일본은 우리보다 항공기 산업에 앞서 있고, 특히 헬기산업은 훨씬 더 앞서 있다. 우리의 경우 고등훈련기 T-50을 개발, 생산하고 있는 KAI가 KUH(수리온)와 LAH·LCH 등 헬기사업을 도맡고 있다. KAI는 수리온 사업 초기 “하필이면 유로콥터의 구형(舊型) 모델 플랫폼을 베이스로 했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주어진 예산과 우리의 헬기 실력을 객관적으로 볼 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항공기의 내구 연한이 통상 30년이 넘는 만큼 안전하고 튼튼한 헬기를 ‘싸게’ 만들어 내놓을 수 있다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것이다.
한국의 헬기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적 관심이다. 우수한 엔지니어들이 보다 적극 참여한다면 ‘국산 헬기산업’은 자동차산업처럼 미래 먹거리 산업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월간조선 2017년 1월호 / 글=조진수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
[Pub Chosun] 2017.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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