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면 빨리 가지만 함께면 멀리 갑니다”
해병대 예비군 6년차 이바름 기자의 해병대 1사단 무박3일 전장극복 훈련 체험
40㎏짜리 군장 매고 시작된 8시간 동안의 무장 행군 하루 한 끼만 전투식량 제공 물 한통 의지한 채 강행군
뒤처진 분대원 독려하며 험한 산길 오르고 올랐지만 첫날부터 포기자 `수두룩`
짧은 휴식 후 또 다시 훈련에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단결력·협동심 배운 값진 시간
“걷고 또 걸었다. 어떻게 걷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몸은 점점 땅속으로 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자랑스런 해병대원들을 이끄는 해병대 간부다.”
해병대 1사단은 지난 24일부터 중대급 초급 간부들을 대상으로 해병대 전장극복(충무 리더십)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설 연휴가 이틀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라를 위해, 소속 부대원들을 이끌기 위해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훈련에 자진 참가했다. 해병대 훈련 중 힘들기가 둘 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악명높은 전장극복훈련. 주·야간 구분없이 끊임없는 행군과 그에 따른 돌발상황 해결, 육체·정신적으로 극한의 상황까지 몰린 해병대 초급 간부들의 강도 높은 훈련을 본지 이바름 기자가 체험했다.
훈련은 지난 24일 입교식과 함께 시작됐다. 첫날 훈련은 협동심과 단결력, 통솔력 함양훈련이 이어졌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갑니다.”
앞선 교관의 외침이 들렸다. 그러나 영하 날씨와 함께 매서운 칼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상황에서 훈련 참가자들에겐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등 뒤로는 40㎏짜리 군장이 들려 있다. 이미 모두의 얼굴은 지쳐 보였다.
울창한 산 한가운데서 목적지를 찾아 3시간째 걷고 있다. 오르고 올랐지만, 산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선두에 있는 교관은 멈출 줄 몰랐고, 따라가기도 벅찼다.
오후 3시 30분. 수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 이름도 모르는 산에서 출구를 향한 지 6시간하고 30분이 지났다. 사전에 준비된 대항군과의 전투를 제외하고선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앞과 뒤 전우 모두 얼굴엔 땀이 흘러내렸다. 입고 있던 군복은 험준한 산속에서 넘어지기를 수십 번, 흙먼지로 뒤덮여 있다.
전쟁상황을 가정해 자신이 통솔하는 병력을 최대한 전력낭비 없이 안전하게 목표지까지 이동하도록 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이 과정에서 단결력과 협동심을 키우는 것이 이번 훈련의 진정한 목표다. 때문에 한 명이라도 뒤처지면 다른 9명의 분대원들은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행군 속도는 더뎠고, 이에 따른 훈련생들의 체력 소모도 심각했다.
추가 훈련 과제로 중화기 산악이동 명령이 떨어졌다. 누군가는 한 손에 20㎏짜리 탄약상자(캔통)를 들었고, 다른 누군가는 K-3 기관총을 군장 뒤에 매고서 비탈길을 올랐다.
등 뒤에서 꾸준히 양 어깨를 누르는 40㎏짜리 군장에 몸은 점점 땅바닥과 가까워지는 느낌이었고, 다리는 그저 본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걸음 앞으로 떼기조차 어려웠다.
점심도 먹지 못했다. 체력은 진작 방전됐다. 하루에 한 끼씩만 전투식량을 제공하는 훈련 특성상 오전부터 지금까지 먹은 거라곤 물 한 통이 전부다. 이번 훈련이 끝나야만 전투식량이 제공된다.
훈련의 강도가 워낙 높다 보니 훈련 첫날임에도 포기자가 수두룩했다. 그만큼 육체적 한계까지 몰아세우는 힘든 훈련이다. 몇몇은 의무 차량에 실려갔고, 누구는 훈련 도중 교관에게 직접 포기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 해병대 1사단 전장극복 훈련에 참가한 해병대 초급간부들이 1차 훈련 마지막 목표인 장기읍성을 내려가고 있는 모습. /해병대 1사단 제공
“포기하겠습니다.”
훈련 포기자가 또 나왔다. 오른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목표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임무를 함께 완수해보자고 다독이며 서로 마음을 다잡았다. 모두가 다시 힘을 얻었고 더욱 힘차게 행군을 시작했다.
손목시계는 어느새 오후 4시 반을 가리켰다. 행군 후미에서 지칠 대로 지친 인원들은 한 걸음조차 내디딜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런 후미 분대원들을 매번 기다리는 선두 교육생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제야 분대원들간의 협동심이 발휘됐다. 뒤처지는 인원을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선두 분대원들은 먼저 나서서 짐을 바꿔 들었다. 교육 초반, 교관의 외침이 인제야 생각이 난 듯, 극한의 상황까지 내몰린 훈련생들 사이에서 드디어 훈련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드디어 산을 빠져나왔다. 산속에서 몇 시간 동안 보이지 않았던 그림자는 어느새 길게 늘어져 있었고, 해는 산등성이에 걸쳐 서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오후 5시. 오전 9시부터 시작해 8시간 동안의 완전무장행군이라는 대장정을 끝마쳤다. 50명의 훈련생들은 끊임없는 행군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분대원들을 이해하는 협동심을, 지칠 대로 지친 분대원들을 이끌어가는 통솔력을 배웠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바로 야간훈련 준비합니다.”
교관의 외침이 들렸다. 이제 첫 훈련이 종료됐을 뿐이었다. 쉬는 것도 잠시, 내려놓았던 군장을 다시금 어깨에 들쳐 멨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극한 훈련의 연속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민을 지키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해병대 장교·부사관이다.”
[경북매일] 2017.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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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은 힘들어도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해병대 예비군 6년차 이바름 기자의 해병대 1사단 무박3일 전장극복 훈련 체험
새벽까지 이어진 야간행군 후 하루만에 15명이나 포기
유격·환자후송·적 주둔지 습격 훈련까지 무사히 마쳐
▲ 훈련 마지막 날 해병대 1사단 내에서 훈련 종료를 앞둔 교육생들이 단체로 4㎞ 뜀걸음을 하고 있다. /해병대 1사단 제공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이른 아침. 전날 밤을 꼬박 새운 교육생들이 2일 차 훈련을 준비 중이었다. 훈련 첫날과 달리 훈련 조마다 교육생들이 많이 줄어 있었다. 추위와 배고픔, 피로 등 전날 새벽까지 계속된 야간 무장행군으로 하루 만에 15명이 훈련을 포기했다. 3일간의 훈련 과정 중 아직 절반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짙은 다크서클과 한층 수척해진 얼굴은 전날의 훈련 강도가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은 35명의 교육생들은 양 어깨와 허리, 다리의 통증을 이끌고 새롭게 2일 차 훈련을 시작했다.
출발 이후 5시간 동안의 행군 이후 목표지점인 유격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유격훈련과 함께 사낭(모래주머니)을 이용한 체력단련이 이어졌다. 숨 돌릴 틈도 없는 훈련의 연속이었다. 해가 질 때쯤에는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 환자 후송 훈련을 진행했다.
이번 훈련에서 교육생들은 전쟁 중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환자를 들것을 이용해 최대한 빨리 목표지점까지 후송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대항군의 습격에 대비한 적절한 상황대처도 필요했다. 분대원들에게 환자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한 강인한 체력과 협동심은 필수였고, 분대장은 그런 분대원 모두의 전력 낭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최선의 판단이 수시로 요구됐다. 그러나 모두의 얼굴엔 강행군 탓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힘들어도 절대 내색하지 마십시오. 교육생들은 각 부대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입니다.”
부대 간부로서의 역할, 책임을 잊지 말라는 훈련교관의 따끔한 지적이 이어졌다. 교관의 말 한마디에 극한의 훈련 과정에서 지칠 대로 지친 교육생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훈련을 제외하고선 말 한마디도 섞지 않았던 다른 분대원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다 같이 힘드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스스로 지친 몸에 다시 채찍질했다. 교육생들은 그렇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자신들의 한계를 한 단계 뛰어넘고서 또 한 번 해병대원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오후 10시, 어느새 2일 차 훈련의 대미인 `적 주둔지 습격`만을 남겨둔 시점에 교육생들은 적 진지 근처에서 매복하며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다. 적 진지에서는 대항군이 진을 치고 있었고, 분대마다 어느 곳을 먼저 공격할 것인지, 누가 앞장설 것인지에 대한 병력배치가 이어졌다. 40시간 이상 수면 없이 훈련받은 고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대마다 점령 지점을 나누고 나서, 분대장의 돌격 명령과 함께 수풀 속에서부터 총격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 진지에서는 돌진해오는 교육생들에게 연막탄과 수류탄을 던졌다. 쏟아지는 적 포탄 사이로 돌격조가 먼저 앞으로 향했다. 뒤이어 엄호조에서 지원사격했다. 돌
격조가 진지를 점령하면, 뒤에 있던 엄호조가 다음 진지를 점령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대원들은 멈추지 않고 적군을 향해 돌진했고, 최후방 진지까지 모두 점령했다. 이어 조원들끼리 맞붙는 격투봉 훈련을 끝으로 2일차 훈련을 마무리했다.
마침내 훈련 마지막 날. 교육생들은 무박 3일의 훈련 일정에 마침표를 찍고자, 자신들이 행군했던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군장을 둘러멨다. 훈련 내내 짊어지고 이동했던 군장조차 이날은 가벼웠다.
그러나 최종 목적지인 해병대 1사단 연병장에 도착하려면 아직 최종 관문이 남아 있었다. 4㎞ 군장 뜀 걸음. 뜀 걸음 중 이탈자 없이 모두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맨 앞과 뒤, 옆 교육생들의 군장에 포승줄을 묶었다. 그리고 뛰었다.
“행군 간에 군가 한다. 군가는 영원한 해병!”
▲ 해병대 초급간부 대상 전장극복훈련 교관진. /해병대 1사단 제공
해병대 훈련교관(DI) 출신인 3분대 황수동 교관의 지휘 아래, 교육생들이 합창하는 우렁찬 군가가 사단에 울려 퍼졌다. 고지를 향해 나아가는 `상승 해병`의 늠름한 모습으로 거듭났다. 첫날 훈련 이후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았고, 그들은 그렇게 지옥 같은 훈련을 무사히 끝마쳤다.
“해병대 장교로서 힘들다는 이 훈련에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훈련을 무사히 수료할 수 있게 돼서 나 자신에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 해병대 파이팅!”
총 인원 50명 중 수료인원 35명. 그들은 이번 전장 극복 훈련을 통해 해병대원들을 이끄는 강인한 지도자로 거듭났다.
[경북매일] 201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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