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무기 보다 화학무기 더 많이 보유, 은밀한 위협
북한 김정남 피살에 화학무기용 VX 사용
지난 2월 13일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프르 공항에서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피살됐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정남이 화학무기용 신경작용제 독극물인 VX에 의해 살해됐고, 그 배경에는 북한 정권이 개입되어 있을 개연성이 매우 높음을 시사했다.
VX는 1995년 일본의 옴진리교가 동경지하철에서 사용하여 13명이 숨지고 6000여명이 부상한 사린가스보다 100배 이상의 독성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학무기는 생물무기와 함께 “가난한 자(貧者)의 핵무기”로 불린다. 비료공장, 제초제 또는 살충제 생산공장, 제약회사 등에서도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생산할 수 있으며, 발견하기 매우 어렵고 증거인멸도 용이한 반면, 조금만 사용하더라도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공포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사악한 정치지도자들에게는 항상 매력적인 무기 1순위로 꼽힌다.
지난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탄저균 우편배달 사건은 화학무기가 테러에 언제든지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부산의 인구밀집 다중이용시설에서 발생한 화학, 생물무기 테러공격에 노출된 부상자를 구조하는 훈련 [사진 중앙포토]
화학무기는 가난한 자의 핵무기
북한은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도 미가입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브뤼셀협약과 헤이그협약이 화학무기의 사용을 금지했지만 단순한 선언적 의미밖에 없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연합국 양측이 모두 화학무기를 사용하여 9만명이 사망하고 100만명 이상이 부상당하자 1925년 화학무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협약인 제네바의정서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제네바의정서도 화학무기의 사용만 규제했을 뿐 개발, 생산, 비축 및 배치를 규제하지 않았다.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가 이란 지역내 민간인에게까지 화학무기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화학무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야기되었고, 1992년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이 채택되어 1997년 4월 29일 정식 발효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 192개국이 가입했으나, 북한, 이집트, 이스라엘, 남수단은 가입을 거부하고 있다.
화학무기는 은밀하게 사용되고 증거인멸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핵무기보다 더 위험한 무기일 수도 있다. 북한은 1961년 12월 김일성의 “화학화 선언”에 따라 화학무기의 개발과 생산을 추진해 왔다.
우리 군과 정보기관은 북한이 신의주, 청진, 함흥 등지에 화학작용제 생산, 저장 및 연구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은 세계 3위의 화학무기 보유국
화학무기 1천톤이면 4천만명 살상 가능
북한은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화학무기 보유국이며, 현재 약 2,500-5,000톤 가량의 화학무기를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평시에는 연간 5,000톤, 전시에는 12,000톤 규모의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화학무기 1,000톤이면 4,000만명을 살상할 수 있다고 한다.
화학무기는 ICBM이나 SLBM 등 첨단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필요도 없고, 박격포, 야포, 방사포. 항공기, 지뢰는 물론이며 최근 서울 상공까지 비행해 온 무인기 등 다양한 투발수단으로 우리의 전후방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로 가공할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항상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허점을 노리고 공격한다. 화학무기나 생물무기는 은밀하게 우리의 상수도를 오염시킬 수 있고, 미량의 독극물을 무인기 또는 풍선에 실려 보낼 수도 있다.
북한이 핵무기뿐만 아니라 화학무기와 생물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용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북한의 화학무기 기술이 고도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
북한을 테러지원국에 재지정해야
우리 군이 북한의 화생무기 위협에 우선적으로 대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북한이 화학무기금지협약(CWC) 등 국제규범에 가입하도록 하여 국제적 통제 하에 화학무기를 폐기하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또한 유엔에 의해 사용이 금지된 비인도적 대량살상무기를 민간인 테러에 사용했다는 점에서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해야 하고,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 재지정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국민 모두가 북한의 화생방 위협에 경각심을 늦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구본학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중앙일보] 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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