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소식칼럼/해병대 분석

팔각모

머린코341(mc341) 2017. 3. 30. 06:40

[도청도설] 팔각모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우주론이 있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뜻으로 고대 중국의 문헌인 '주비산경'에 나온 말이다. 둥근 것은 하늘, 네모진 것은 땅의 상징이라는 이야기다. 천문학이 발달하기 전이니 동양뿐 아니라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이전 서양 또한 천원지방은 오랫동안 진리였다. 그렇다면 둥근 하늘과 네모진 땅 사이에는 뭐가 있을까.


동양철학에서 원은 우주와 신, 사각은 땅을 뜻했다. 당연히 그 사이에는 인간이 있었고 도형적으로는 원과 사각의 사이, 곧 팔각형이 인간의 상징이라는 세계관이 생겼다. 불교 또한 8을 최고 경지에 다가가기 위한 숫자라고 봤다. 부처 뒤에 자리한 깨달음의 상징인 광배(光背)에 다다르기 직전의 단계로 본 것이다. 불교의 탑 등에 8각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최근까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8각정도 그 산물이겠다.


서양에서도 8각형은 각별한 의미를 가졌다. 라틴어로 8을 의미하는 옥토(Octo)는 균형 완벽 불멸 영원이라는 상징을 갖고 있다. 서양 중세 연금술사들 또한 동양처럼 8각이 원형과 사각형을 완벽하게 조합해 하늘과 땅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양의 유명한 한 시계 브랜드가 줄곧 8각형 외형을 유지해온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8각이 우리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요즘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보는 팔각모도 그 산물이다. 물론 동서양에서 철학적으로, 기하학적으로 사랑받던 그 정도는 아니지만 원에 가까우면서도 적당히 각진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에게 친숙한 건 팔각모가 '귀신을 잡는다'는 해병대의 상징 중 하나인 탓도 크다. 그 모자 하나만 쓰고 있어도 뭔가 상대를 기죽이는 듯해서다.


이런 해병대의 상징인 팔각모가 최근 입길에 올랐다. 해병대의 상징인 팔각모의 착용을 해군까지 확대하겠다는 군 당국의 계획 때문이다. 해병대와 해군이 군사작전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아 일체감을 강화하는 차원이란다. 명예에 죽고사는 해병대 예비역들이 발끈하며 반발할 만도 하다. 해병대 정체성의 하나인 팔각모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이야기다. 해병대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다만 천원지방의 사이에 있는 8각처럼 너무 모나지 않게 슬기롭게 문제가 해결되기 바랄 뿐이다.

장재건 논설위원 jjk@kookje.co.kr


[국제신문] 2017.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