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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역사탐방 ① 해병대 처음 상륙한 곳!

머린코341(mc341) 2017. 6. 29. 10:58

해병대 역사탐방 ① 해병대 처음 상륙한 곳!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380명의 소수병력으로 창설된 이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신으로 6·25전쟁과 베트남전 등을 거치며 빛나는 전통과 명예를 다져왔습니다.


해병대가 나서서 빼앗지 못한 고지가 없고 지키지 못한 진지가 없었으며,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자랑스런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대한민국 해병대의 불패의 신화가 시작한 곳이 있습니다. 대진고속도로를 달려 통영 인터체인지를 지나 거제로 진입하는 신거제대교 앞 통영타워 한쪽에는 '해병대 처음 상륙한 곳' 기념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해병대 적진상륙의 효시가 된 곳, 해병대가 처음 상륙한 곳 통영입니다.

 


해병대의 최초 단독상륙작전이었던 통영상륙작전은 절망에 빠져있던 조국과 국민의 마음에 희망의 불씨를 살렸으며,이 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수복하여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발판을 마련하는데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 작전에서 해병대는 작전승패를 가름하는 마일봉 고지를 적보다 5분 먼저 점령하여 인해전술로 공격하는 적을 격멸하고, 통영시내의 잔적을 소탕하면서 적의 유일한 공격로인 원문고개를  조기에 탈취 확보했습니다.


여러차례의 공방전에서 적 대대를 격퇴하므로써 낙동강 교두보의 서측 위협을 제거하였고 유엔군 철수작전중 방어를 위한 유일한 공격 작전을 수행하여 "귀신잡는 해병"의 전통을 수립하였습니다.

 


'귀신잡는 해병'은 한국군 최초의 단독 상륙작전이자 공격작전이었던 통영상륙작전을 취재한 뉴욕 헤럴드 트리뷴 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Marguerite Higgins)가 우리 해병대 활약상을 ‘귀신 잡는 해병대(They might capture even devil)’라고 소개함으로서 이 후 대한민국 해병대를 상징하는 별칭중의 하나가 된 것입니다.

 


전술적 요충지였던 통영시의  원문공원내에 세워진 통영지구전적비, 통영지구 전적비는 바로 그날의 격전이 벌어졌던, 통영시 무전동 951번지 원문고개 언덕 위에 세워져 있고 해마다 이곳에서는 한국 해병대의 통영지구 상륙작전 전승기념식과 추모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여기는 적진상륙의 효시가 된 곳, 북괴의 남침으로 조국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을때 실지회복의 첫 개가로 겨례와  감격을 나눈 곳!그날의 총탄은 멈추었고, 포성은 잠들었으나, 충무의 바다와 원문고개에 피어난 호국의 충혼이여! 해병혼이여! 영원하라!





▲ 원문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LVT


원문공원의 통영지구전적비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2011년 8월 개관한 통영상륙작전기념관이 있습니다.

 


원문공원 내에 위치한 통영상륙작전기념관(지상 2층, 건축면적 316㎡)에는 당시 중령으로 해병부대를 진두지휘했던 김성은 장군(전 국방부장관)의 유품(遺品)과 해병대 주요장비 및 역사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광장에는 6.25전쟁 당시 해병대가 사용하던 상륙장갑차와 M-47 전차 등을 상설 전시하여 기념관을 찾은 국민들이 해병대의 용맹함과 국가의 안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뜻을 기리는 안보교육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 통영상륙작전기념관 전경




통영상륙작전기념관은 6.25당시 김성은 장군과 해병대는 전 국토가 공산군에 의해 짓밟힐 위기에서 민과 군이 하나가 되어 지켜낸 구국의 현장으로 조국을 되찾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수많은 젊은 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미래의 값진 거름으로 삼고자 이 기념관을 세웠다고 합니다. 


또한 기념관은 300여년의 삼도수군 통제영의 정기가 고스란히 살아 있고,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의 기적을 이뤄낸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성지로서 미래 세대에겐 나라사랑의 훌륭한 학습장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해병대의 김성은부대는 1950년 8월 17일부터 9월 22일까지 37일간의 전투기간동안 북괴군 제7사단을 상대로 469명을 사살하고 83명의 포로를 생포하는 전과를 올리며 한국해병대의 용맹성을 전세계에 알렸을 뿐만 아니라 작전상 후퇴만 거듭하던 국군 장병들에게는 승리의 신념을 심어 준 전투였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북괴군은 거제도를 점령하여 전략요충지인 마산과 진해를 봉쇄하기 위하여 적 제7사단 예하 제51연대 1개 대대(약 370명)를 통영 방면으로 진출시킵니다. 이


후 약 250명의 적이 후속하여 통영 시내에는 약 600명의 적이 준동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우리 해병대의 김성은부대는 1950년 8월 17일 18:00에 7척의 해군 함정 지원 아래 장평리 해안에 한국군 최초의 단독 상륙작전을 감행한 것 입니다.

 


1950년 8월 16일 해군참모총장은 김성은 부대로 하여금 즉시 거제도 서해안에 상륙하여 통영으로부터 거제도에 참투하려는 적을 격멸하라는 명령에 따라 2척의 LST에 병력을 분승시켜 밤 10시경 군항을 출항했던 김부대장은 이튿날 새벽 통영반도 동북방에 있는 동쪽 기슭에 이르러 자신이 세워놓은 북안에 따라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합니다.


즉 먼저 2개조의 정찰대를 운용하여 통영시가지 쪽과 거제도 서해안 쪽의 적정을 살펴본 그는 해군본부에 타전하여 작전명령의 변경을 요청했던 까닭은 불과 기백명의 적은 병력으로 거제도의 긴 서해안을 수비하는 소극적이고 불안한 대책보단 차라리 당시 통영 해상을 초계중에 있던 PC-703호를 비롯한 수척의 우리 해군함정의 지원하에 통영읍 동북단의 장평리(長坪里)에 기습적인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그 이튿날 새벽 통영시가지를 감제(瞰制)하는 시가지 동쪽의 망일봉을 선제점령하고, 일부 병력을 통영읍의 진입 길목인 원문고개로 진출시켜 적의 퇴로와 적 후속부대의 진입을 차단하는 가운데 총공격을 감행한다면 통영의 적을 독안에 든 쥐를 때려잡듯 때려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끈질기게 요청을 거듭한 끝내 마침내 작전명령의 변경을 승인 받게된 김성은 부대장은 703호 함장과의 협의를 거쳐 PC-703호와 소해정 504, 901, 302, 307호 등 해군함정의 지원하에 적으로 하여금 시가지 남쪽 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처럼 가장하기위해 그 일대에 포화를 집중시키고 기습적인 상륙작전을 감행, 계획대로 그 이튿날 새벽 1개 중대를 원문고개로 진출시키는 한편 망일봉을 점령하여 한발 뒤늦게 그 봉우리로 올라오는 100여 명의 적을 요격하여 승기를 잡게되었습니다.


그날 오후 해군통제부로부터 탄약과 1개 중대의 응원병력을 지원받은 다음 그 다음날(8.19) 미명을 기해 총공격을 감행한 끝에 그날 오전 10시경 드디어 적 수중에 들어가 있던 통영 시가지를 완전 탈환하게 됩니다.





▲ 기념관 2층의 전망대





▲ 통영상륙작전기념관 야외전시장





▲ 통영 두타사 해병영혼의  집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던 절망의 그날, 해병대는 북괴군 7개사단을 물리치는 개가를 올렸지만 그 속에는 초개처럼 목숨을 던져 산화한 19인의 해병들이 있었습니다.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름 석자도 비문에 남기지 못한 상사 이근영, 하사 최영배, 하사 고재군, 하사 김동길, 하사 박현중, 하사 박병식, 하사 안경희, 하사 원강식, 하사 윤수일, 하사 김양숙, 하사 이용우, 하사 이용종, 하사 고종석, 하사 최정봉, 하사 최일봉, 상병 강용일, 일병 조원창, 일병 고성태, 일병 문상기…이들의 위페가 모셔져 있는 통영의 두타사에는 2010년 통영시 해병대전우회가 그들을 추모하는 추모시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 통영상륙작전 60주년을 맞아 통영해병전우회가 통영상륙작전 전몰해병에 바치는 비를 세웠다.




통영지구전적비와 기념관이 있는 원문공원은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원문고개에 시민공원으로 꾸며져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충혼탑과 3·1운동 기념탑이 함께 서 있어 그 의미를 더 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통영시는 2017년 4월 6.25전쟁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해병대 단독 상륙작전한 용남면 장평리 전승기념비부터 원문공원 구간(약 8.4km)을 명예도로명으로 지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시 관계자는 "6·25전쟁 당시 전략요충지인 통영에서 펼쳐진 해병대 단독상륙작전의 의미를 알리고, 목숨을 바친 해병 호국 영웅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해병대상륙작전로라는 도로명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명예도로명이란 도로에 대하여 그 지역의 특성, 역사성, 업적 등을 고려하여 법적주소가 아닌 도로의 별칭을 부여한 도로명을 말합니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최전방 서북 6개 전략도서부터 수도권 서측방의 관문인 김포 및 강화, 포항, 제주, 울릉도에 이르기까지 국토방위를 위해 해병대의 전 역량을 집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해병대는 과거 선배해병들이 이룩한 빛나는 전통을 계승·발전시켜, 변화하는 미래전의 양상과 다양한 형태의 위협에 대비한 공지기동해병대로 거듭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 입니다.


<글/사진 임영식기자>


[날아라마린보이] 2017.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