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南도 쏘니 北 미사일도 괜찮다"…해괴한 비교법
정부 여당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입장을 확고히 정립한 것 같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우리도 각종 발사체를 시험하고 있으니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SLBM, 초대형 방사포 등 북한의 미사일 도발도 시비 걸지 말자는 겁니다.
맞습니다. 우리도 쏩니다. 국방과학연구소 ADD가 충남 태안의 안흥시험장이란 곳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극비리에 각종 발사체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은 김정은 참관 하에 올해 11차례 쐈고, 쏠 때마다 대대적인 선전전을 펼치며 한미를 위협했습니다.
남쪽의 극비 개발과 북쪽의 노골적 위협 발사. 본질적으로 남북 시험발사의 성격은 이렇게 다릅니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남북이 각각 쏜다고 상황을 단순화시켜 남측도 쏘니 북측을 타박하지 말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꽁꽁 숨겨놓았던 기밀급의 ADD 시험발사 내역까지 공개하고 나섰습니다.
● ADD 시험발사 내역, 만천하에 공개
지난달 10일 한 종편 방송사는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ADD의 미사일 시험발사 내역을 공개했습니다. 지난 3년간 안흥시험장에서 실시된 내역인데 매해 몇 번씩 쐈는지 정확하게 내보냈습니다.
"북한도 쏘지만 우리도 이만큼 쏘니 든든하다"로도 읽힐 수 있지만 "우리도 이만큼 쏘니까 북한이 쏘는 걸 비난하기 군색하다"로도 들리는 팩트입니다. 어찌됐든 발짓 손짓 하나하나가 기밀인 국방과학연구소 ADD의 시험발사 내역이 공표된 건 놀라운 일입니다.
김병기 의원이 ADD의 자료를 공개한 진심은 무엇이었을까요? 지난 2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병기 의원 :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 대한민국은 몇 차례 정도 시험발사를 했습니까?
정경두 장관 : 제가 그 횟수에 대해서는…
김병기 의원 : 북한이 한 거보다 많이 했습니까, 적게 했습니까?
정경두 장관 : 하여튼 우리도 다양하게 하고 있다고…
김병기 의원 : 그렇다고 해서 9.19 군사합의 위반은 아니죠, 저희는. 당연히 아니죠.
국방과학연구소 ADD의 시험발사 내역을 이미 파악하고 있던 김병기 의원은 횟수만으로는 ADD가 북한보다 시험발사를 많이 했던 점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ADD의 시험을 9.19 남북 군사합의 위반으로 볼 수 없으니, 북한의 시험발사도 9.19 군사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도 극비리에 온갖 무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미는 북한이 은밀하게 개발하고 있는 무기들을 일일이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않습니다. 조용히 대응책을 마련할 뿐입니다.
북한이 올해 쏜 북한판 이스칸데르, 대구경 조종방사포, 북한판 에이테킴스, 초대형 방사포, 신형 SLBM 북극성-3형은 다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북한이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공개적으로 한미를 위협한 무기들입니다. ADD의 시험발사와 비교 대상이 애초에 안됩니다.
● 장관도 한목소리…"우리도 쏘잖아요"
지난달 27일 국회 외교안보분야 대정부질의에서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질문하고, 정경두 국방장관이 답했습니다.
지난달 27일 대정부질의 중 정경두 장관에게 질문하는 심재철 의원
심재철 의원 : 9.19 합의에 적대행위를 금지한다는 표현 있죠?
정경두 장관 :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심재철 의원 : 적대행위입니까, 아닙니까?
정경두 장관 : 적대행위라고 하는 것은 여러가지…
심재철 의원 : 미사일 쏜 게 적대행위입니까, 아닙니까?
정경두 장관 : 그러면 우리가 시험개발하는 것은 어떻게 표현해야 합니까?
"우리가 시험개발하는 것은 어떻게 표현해야 합니까"라는 정경두 장관의 발언은 김병기 의원의 논리와 똑같습니다. ADD도 미사일 개발하니까 북한 미사일 발사도 괜찮다는 겁니다. 국회의원들의 말이야 자유자재로 선을 넘나드는 법이니 접어둔다고 쳐도 국방장관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듭 강조하건대 북한이 올해 11번 미사일을 쏜 것과 ADD가 미사일을 시험개발하는 건 완전히 다릅니다. 북한은 어제(4일) 노동신문 정론을 통해 "(SLBM) 북극성은 적대세력들의 검은 소굴을 엄숙한 시선으로 굽어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극성-3형으로 그들의 적대세력인 한미를 겨냥하고 있고 언제든 타격할 수 있다는 분명한 위협입니다. 그래서 청와대 NSC도 북극성-3형 발사 즉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우리도 쏘니 북한 미사일도 괜찮다"는 비교법은 북한 노동신문에나 나옴직한, 북한의 입장에 가깝습니다. 대한민국 국방장관, 여당 정치인이 펼칠 논리는 절대 아닙니다.
9.19 군사합의라는 역사적인 군비통제를 지켜내기 위한 발언이라고도 볼 수 없습니다. 유럽, 중동의 화약고를 잠재운 성공적 군비통제의 역사를 보면 당사자들은 상대방을 엄중하게 검증해서 매몰차게 과오를 바로 잡았지, 지금 한국에서처럼 있는 것을 없는 것마냥 덮어주며 얼렁뚱땅 넘어간 적은 없습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SBS뉴스] 201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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