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ICBM 위협은 오판, 쏘는 순간 미국은 화염과 분노”
[중앙일보] 5일 ‘스톡홀름 노딜’ 이후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재개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중앙일보는 9일 한·미의 외교·안보 전문가 10명에게 북한의 ICBM 시험발사 재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 시나리오를 물었다.
10명 모두 미국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로 상징되는 2017년의 초강경 대응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답했다. 탄핵 국면 등 미국의 국내정치적 상황이 비핵화 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질문에도 10명 중 9명은 ‘아니다’고 답했다.
일부는 다음 수순은 ‘아름다운 편지(beautiful letter)’, 즉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원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 외교가 재개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전문가별 발언 요약(미국 전문가는 알파벳순, 한국 전문가는 가나다순).
한·미 전문가 10인의 북·미 비핵화 협상 전망.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동아태 담당 선임보좌관=북한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거친 공개 협박전술을 쓰며,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다가 큰코다칠 수 있다.
ICBM 시험발사 재개 위협을 미 행정부는 미국의 결의(resolve)를 시험하는 것으로 인식할 것이다.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것이다.
개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정책조정관=내년에 핵실험이나 ICBM 시험발사를 재개하겠다는 건 북한의 공갈이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방해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실무협상 결렬은 정상회담을 하자는 압박이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안보석좌=ICBM 재개는 미국으로선 참기 어렵다. 양보는커녕 곧바로 강경정책으로 회귀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북한 문제는 탄핵과 아무 상관이 없다. 탄핵 조사 국면에서 김정은과 화합하는 모양새는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북한의 ICBM 시험 재개는 큰 실책이 될 것이다. 중국·러시아의 지지까지 잃을 것이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욕심 때문에 스톡홀름에서 미국이 크게 양보할 것이라고 보고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대치를 갖고 간 것 같다. 2주 내 협상 재개는 어려워 보인다.
수전 손턴 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대행=북한은 신속한 제재 완화를 원한다. 회담과 긴장 고조 중 어느 것을 통해 이를 얻을 수 있을지 계산하고 있다.
ICBM 시험 재개로 긴장을 고조하는 것은 제재 해제를 돕기는커녕 트럼프 대통령이 좋게 대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협상 재개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ICBM 시험발사 유예 약속이 깨지면 북·미 간 협상도 깨질 것이다. 미국은 2017년 분노와 화염 국면 때처럼 군사적 위협을 가하면서 제재와 압박을 더 조일 것이다.
지금 수준을 넘어서는 전면 봉쇄까지 갈 수도 있다. 북한도 이를 잘 아니 실제 쏘진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불안하니 자신들만 무장해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ICBM을 쏘는 순간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강경 대응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을 것이다. 미 탄핵 국면에서 외부 요인의 영향은 크지 않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치적을 바랄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판이다. 미국으로선 비핵화의 최종 목표 및 로드맵 설정이 우선이라는 기본 원칙에서 요구 수준을 낮추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전제로 했을 때 초기 상응 조치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는 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성과가 좀처럼 나지 않는 북핵 문제에서 국내정치적 어려움을 상쇄할 승부수를 던지기에는 부담이 크다.
오히려 대선 국면이 다가올수록 제대로 된 성과가 아니라면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없다고 인식할 것이다. 양쪽 모두 3차 정상회담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3차가 마지막 게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부족하지만 성과를 만들어내는 모양새로 갈 가능성도 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 =ICBM 카드로 국내정치적으로 어려운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해 ‘스몰 딜’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북한이 미국 정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선거운동에서 공화당 지지층 표심을 생각한다면 대북 유화책보다는 강경책이 유리하다. 북한이 압박 수위를 높이며 선을 넘으려 하면 2017년과 같은 강경 대응으로 나올 수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트럼프 대통령에겐 북핵 카드의 시효가 거의 다 됐다. 내년 대선에서 활용할 정도로 가치가 높지 않다는 뜻이다. ICBM을 쏘면 오히려 미국이 먼저 판을 깨고 긴장을 고조시키며 책임을 북한에 뒤집어씌우는 게 국내정치적으로 더 효과적이라고 볼 것이다.
북한은 한국 대선에서의 ‘북풍’을 생각하겠지만, 미국 대선에서는 북핵 이슈가 크지 않다. 북·미 둘 다 지금 입장을 고수하면 아무 합의에도 이를 수 없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유지혜·이유정 기자 wisepen@joongang.co.kr
[중앙일보]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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