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의 밤 4
충정도가 고향인 그 선임은 한없이 순하다가도 한번 꼭지가 돌면 어지없는 아싸 해병대셨다.
날도 추운 날 이렇게 나와 경계근무 서는 것도 성질이 날 판에 민간인이 욕지거리를 해대고 거기다가 아싸 해병대의 자존심을 뭉개를 발언을 서슴치 않았으니 그 선임의 꼭지가 도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어깨에서 총기 멜빵을 빼는 모습을 본 순간.. 저 양반이 빈총이라도 겨누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보면 문제가 크게 생길 것 같아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덩치로 보나 정신적인 빠이팅으로 봐도 월등하게 선임이 우월하다.
게다가 상대방은 술까지 쳐드셨으니 애시당초 싸움의 상대는 되지 못할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민간인 구타나 총기를 가지고 위협 하는 행위는 중대 범죄 행위가 될 수 있어 어떻게든 개입을 해야만 했다.
"ooo 해병님. 순찰 올 시간 입니다. 참으십시오"
계속 지켜볼 수 만은 없어 슬쩍 팔을 잡고 만류를 하였다.
"놔. 이거 놔라"
선임의 눈동자에 파란 색 불이 이는 듯 하다.
'아.. 이거 사고 나겠다.. 어쩌지? 딸딸이를 날릴까? 어쩌지...."
그때 선임의 입에서는 소리는 낮았지만 아주 단호하고 찰진 욕지거리가 뱉어졌고 놀란 민간인은 움찔하더니 더 이상 쏘아붙치지 못하고.. 어버버... 하고 있다.
그 때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적색 후레쉬 렌턴이 보이면서 인기척이 나고 있었다.
"오빠야 그냥 가자.. 빨리 타라.. 가자..."
옆에 타고 있던 여자의 채근이 계속 되고 추가 병력이 다가오고 하니 이 남자도 기세가 확 꺾였는지 들릴동 말동 한 말을 남기고 차에 올라 탔으며 차량은 바로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초소로 병력이 다가오자 내가 얼른 암구호를 날렸고 상호간의 암구호가 확인이 되고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지근의 거리에 모습을 나타내는 사람은 대대 당직사령과 통신병이었다.
"무슨 일이야?"
"외곽 근무자 상병 OOO! 민간인 차량이 접근하여 훈련중 통제된다고 고지하고 돌려보내는 중이었습니다."
이 말을 할때는 이미 차는 후진 후 방향을 바꿔 멀어지고 있을 때 쯤이었다.
"민간인하고 말썽 부리면 안된다이.."
당직 사령의 당부였고 그 폭발 직전의 상황에 대해선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터라 대답만 확실하게 하고 나서 그 대결의 순간의 위기를 벗어났다.
당직사령이 돌아가고 선임은 한동안 씨발 씹새끼를 연발 하면서 뭔가를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난 후 선임은 다시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세벽의 엄청난 추위를 느끼면서 선임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저 멀리서 근무교대 병력으로 보이는 후레쉬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근무 종료 20여분 정도가 남았지만 교대 병력이 선임 보다 후달리니 서둘러 교대를 받으려고 오고 있는 것이었다.
근무를 인계하고 바싹 마른 자갈밭위를 한참이나 걸어서 GP에 복귀했다.
두시간 동안 꽁꽁언 추위에 그대로 노출되었으니 잠이 잘 올리가 없다. 그리고 GP안은 아까보다도 더 추웠다.
침낭은 거의 소용이 없을 정도의 형편없는 성능이었고 그냥 이 꽁꽁언 밤을 조심스럽게 뒤척이며 어서 기상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다들 잠들어 있는 GP에서 눈을 뜨고 있으면 마치 혼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당연히 지난 날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온갖 그리운것 투성이다. 춥기도 추웠지만 배도 많이 고팠다.
건빵이라도 있으면 조심스럽게 입안에서 녹여 먹으면 그 맛이 꿀맛인데.. 건빵 주머니 속엔 모래 밖에 잡히지 않는다.
이놈의 생활을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내가 한 선택에 정말 후회는 없는 걸까? 하는 생각들이 수도없이 떠오르고 아무리 계산을 놔봐도 영광스러운 전역은 먼 훗날 아주 먼 훗날의 얘기였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제 일병 단 놈의 군생활이 즐거움이란게 뭐가 있을까?
유일한 희망은 휴가인데 휴가 일정이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물어보지도 못하겠다. 물어보면 당연히 기합빠졌다고 쭐대나 쳐올려 지기가 자명하므로....
오리털이나 화섬솜 침낭이나 추운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시간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꼬찔찔이 이병이 일병을 달고 밑으로도 몇 명의 쫄이 생기기도 했으니 느리지만 확실하게 시간이 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 이렇게 하루하루 보내다 보면 진급도 하고 그에 맞게 대우도 달라지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오겠지.. 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말이었다.
그나저나 안성탕면으로 만든 뽀글이 하나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배에서는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고 그 소리에 선임들이 깰까 싶도록 크게도 들려왔다.
혹시나 OOO 해병님이 고생했다며 뽀글이 하나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어두운 GP안으로 곁눈질을 해보지만 인기척이 없으시다.
깊은 잠에 빠졌다 보다.
춥고
추웠으며
배고프고
너무 배가 고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