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 군벌과 군조직 -13-
시곗바늘이 12를 넘으면서 12월 13일이 되었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지만 필동 수경사에 있는 육본 참모들은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국방부장관의 지시가 있어야 육본측 또한 병력을 출동시켜서 뭘 막든지 혹은 공격하든지 할 수 있겠지만 장관은 부대출동을 자제하라는 엄명을 내리고 있었다.
그나마 출동한 9공수여단마저 회군해버렸다. 결국 1군사령관 김학원 중장, 3군사령관 이건영 중장등과 통화한 육군참모차장 윤성민 중장이 육본 참모회의를 열어 참모들의 의견을 묻기로 했다.
“내가 방금 제1, 제3군사령관과 통화를 했습니다. 3군의 제26사단 및 수도기계화사단, 그리고 제1군의 제11사단 등 전방 사단 병력들은 장관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움직일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병력동원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각 참모들의 의견을 모아보기로 하겠소. 먼저 천 장군부터 말해 보시오.”
윤성민 차장은 가장 먼저 인사참모부장 천주원 소장을 지목했다. 그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었다.
“오늘 밤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보니 저쪽에서 5.16때보다 훨씬 장기간, 그리고 아주 치밀하게 준비해 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무방비상태에서 기습을 당한 것이고 이제 저항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을 것 같습니다.”
장태완 사령관이 화가 나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니, 천 선배님! 말을 바로 하세요. 그래 병력을 동원하지 말잔 말입니까?”
“장 장군, 윽박지르지 말고 자유로운 의견을 들어봅시다. 황 장군의 의견은 어떻소?”
장태완 사령관을 나무란 윤성민 차장은 이번에는 정보참모부장 황의철 소장을 지목했다. 그 또한 천주원 소장과 마찬가지로 병력출동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병력을 동원할 수 있으면 해야지요.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병력을 동원하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그 다음은 하소곤 작전참모부장이었다.
“병력을 동원할 수 있다면 동원해야지요. 그러나 지금 하급부대에 명령이 먹혀 들어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명령을 내려봤자 저쪽의 방해공작으로 병력들이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하소곤 작전참모부장은 자포자기식으로 병력출동의 난점을 표현했고, 26사단과 수기사의 사례를 보았을 때 그의 말은 맞는 면도 있었다. 그때 군수참모부장 안종훈 소장이 말했다.
“이번 쿠데타가 치밀하게, 그리고 오래 전부터 기획된 것이어서 진압이 비록 어렵다 손치더라도 국민의 군대요, 군의 사명에 따라야 할 우리 고급장성들이 우리만 살겠다고 쿠데타군에 손을 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 군인은 군인으로서의 사명을 생사를 초월하여 지키고 우리들의 명예를 끝까지 저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장태완 장군의 병력동원 요구에 이유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찬성합니다.”
라고 병력출동에 찬성했다. 이때 장태완 사령관은 안종훈 군수참모부장의 말을 듣고 ‘무척 고맙게 생각했다.’
이어 민사군정감 신정수 소장은 “쿠데타를 막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시해되어 어수선한 상황에서 아군끼리 서로 충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라며 반대를 표했다.
그렇게 토론이 진행되던 와중에 수경사령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10.26 이후 군에 복귀한다는 조건으로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간 이희성 전 육군참모차장의 전화였다.
“여보! 지금 당신 부대에서 뭐하고 있소? 전차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있는데 혹시 당신 저쪽을 공격하려는거 아니요?”
“아니, 부장님! 제가 초저녁에 저놈들이 장난질 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참모총장님이 납치가 되었고, 국방장관님은 행방불명이기 때문에 저놈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진압부대 동원을 부탁드렸을 때 부장님은 긍정적인 답변을 해 주셨는데 이제와서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놈들의 병력은 수개 사단의 전투력을 능가하는 각종 부대로 편성되어 있고 지금 그들은 서울 시내로 진입하고 있는데 나보고 이대로 앉아서 가만히 당하고 있으란 말씀입니까? 도대체 부장님은 누구 편입니까?”
일갈한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수화기를 박차고 육본 참모들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젠 좋을대로 하십시오. 나는 지금 전차를 몰고가서 30경비단과 보안사를 모두 불바다로 만들어 놓고 최후의 돌격을 해 보겠습니다!”
이후 장 사령관은 사령부를 나갔다. 밖에는 수경사 정문 입구에서부터 퇴계로의 아스토리아 호텔까지 병력을 태운 트럭과 토우중대, 전차 4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트럭의 병력은 1백여명으로 사령부에 근무하는 행정병, 수송부 근무원 그리고 취사병들까지 끌어모아 만든 병력이었다.
장 사령관은 먼저 전차 4대를 앞세우고 경복궁으로 가 보안사와 30경비단에 전차포, 106미리 무반동총, 토우 미사일, 3.5인치 로켓포를 집중적으로 퍼부은 후 병력을 투입해 쿠데타 주모자들을 색출 혹은 사살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심지어는 수경사 헬기부대에 연락해 수류탄과 최루탄을 투하하는 방법을 검토하려고 했으나 밤이라 건물 접근이 어렵다고 한 헬기부대장에 의해 취소되었다.
다만 참모들이 출동병력 중 일부에 반대하고 나섰다. 가장 핵심은 토우중대였다. 작전참모 박동원 대령 등은 토우 미사일을 시가지에서 발사할 경우 유도선이 끊어지면서 엉뚱한 곳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이유로 토우중대의 동원을 반대했다. 그러나 모든 화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판단한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그대로 토우중대를 동원하기로 했다.
한편 경복궁에 모든 포를 조준하고 있던 수경사 야포단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전에 경복궁에 포를 조준하라는 명령을 하달한 박동원 작전참모에게 포병단장 구명회 대령이 야포가 피아가 완전히 떨어져 있지 않은 시가전에서는 무용지물인 점, 30경비단에 사격을 하려면 먼저 관측사격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광화문 일대가 쑥밭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민간인 피해 또한 수없이 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하고 조명탄이나 준비해두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조명탄 또한 추진체가 쏟아져 행인의 살상이나 민가 피해를 초래할 수 있어 구명회 단장은 조명탄을 꺼내놓기만 하고 대기상태로 두었다.
한편 장태완 사령관이 맨 뒤에서부터 전투임무 숙지상태와 장비점검을 하면서 앞으로 향하던 중 먼저 시찰을 나가 있던 수경사령관 비서실장 김수탁 중령이 달려와 말했다.
“사령관님! 제가 지금 저 앞의 전차소대 쪽에 갔더니 30경비단 편에 있는 전차대대 본부에서 사령관님을 사살하라는 무전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하셔서 사령부로 돌아가셔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최후 공격 주력이 바로 저 전차 4대뿐인데 저놈들이 저러니 나머지 이 행정병력만 가지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제 모든 것은 다 끝이 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무실로 올라가셔서 사후정리를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충격을 받은 장태완 사령관은 결국 집무실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시계는 어느새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뻘글 집합소] 201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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