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 군벌과 군조직 -14-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집무실로 돌아오자 두 개의 보고가 올라왔다. 먼저 1공수여단이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했다는 보고였고, 다른 하나는 수경사 방공포병단 소속 발칸포 1개 분대가 국방부로 접근해오는 1공수 병력을 향해 사격하여 수명이 사살된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실제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음)였다.
국방부장관 노재현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새벽 3시 즘이었다. 그때 국방부에서는 1공수 병력이 총격전을 벌이며 국방장관실에 총탄을 난사한 후 국방장관 노재현을 찾고 있던 때로, 그때 그는 국방부 지하 상황실에 숨어 있었다.
“야, 장태완! 넌 왜 자꾸 싸우려고만 해!”
“장관님!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무슨 병력이 있어야 싸우지요, 저놈들이 언제 쳐들어 올지 모르니까 다만 자체 방어태세만 갖추고 있을 뿐입니다.”
“야, 말로 해! 말로......”
“아니, 저놈들이 초소를 유린하면서 부대를 공격해 들어와도 된단 말입니까? 그러시다면 지금부터 어떻게 하라는 지시를 장관님께서 내려 주십시오. 지금이라도 지원병력을 출동시켜 주시겠습니까?”
“말로 하란 말야,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단 말야.”
“피 흘린 것도 없지만 이젠 다 끝났습니다. 병력들이 다 저쪽으로 넘어가고 여기는 전투병력이 없습니다.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하라는대로 하겠습니다.”
“병력들을 철수시키고 상황을 끝내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것이 장관님의 명령이라시면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장관님! 제가 복명복창을 하겠습니다. 이 시간부로 상황을 끝내겠습니다!”
이후 장태완 사령관은 같은 방에 있던 육본 참모들과 윤성민 참모차장에게 13일 새벽 03시 부로 상황을 종료한다는 보고를 올렸다. 접견실로 간 그는 김기택 수경사 참모장에게 사령부 전 참모들을 집합시킬 것을 지시했다. 작전참모 박동원, 인사참모 이진백, 방공포병단장 황동환 등 참모들이 접견실로 향했다.
“여러분들 오늘 밤 고생이 많았고, 이제 9시간 동안의 상황은 모두 끝났소. 군인은 승부에 깨끗해야 하는 거요. 특히 오늘밤에 있은 이 일은 먼 훗날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고, 여러분들의 문제는 내가 모든 것을 다 책임질테니까 조금도 걱정하지 말아요. 여러분은 나의 성격을 잘 알테지만 나의 면전에서 명령에 불복했다면 총살을 당했을 것이오. 그러니 사령관이 시키는대로만 했다고 말하면 아무런 일이 없을거요.”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을 때에도 병력들은 계속해서 서울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새벽 2시 14분에는 3공수여단 2개 대대 병력(장갑차 10대, 2.5톤 트럭 26대)이 천호대교를 건너 경복궁까지 진군했다.
이때 김진선 작전처보좌관은 검문소에 사격 금지 후 내무반으로 들어갈 것을 지시하였고, 이후 수경사령관에게는 3공수 병력과 20사단 병력이 천호대교를 건넜다는 허위보고를 올렸다.
여기서 또다시 30사단이 문제를 일으켰다. 처음에는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한강다리와 수색, 구파발 봉쇄 요청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다가 보안사 정도영 보안처장의 회유공작 이후 00시 경 부대가 훈련을 나갔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한 박희모 30사단장은 송응섭 30사단 90연대장이 출동하겠다고 사단장에게 보고하자 “알았다. 잘해” 라면서 격려까지 해 주었다. 결국 30사단 90연대 병력은 4시 고려대학교로 출동하여 6시 30분에 도착하였다.
한편 장기오 여단장의 5공수여단 3개 대대 병력은 3시 25분 경 제2한강교로 접근해왔다. 이들은 이후 4시 경 수경사에서 발령한 한강 다리 봉쇄 조치가 취해지자 한강을 건너 효창운동장으로 진군했다.
전방에서 출발한 이필섭 연대장의 9사단 29연대, 30연대 병력과 김호영 2기갑 16대대장의 전차병력이 합류한 것은 벽제에서였다. 삼송리 검문소까지는 경복궁에 있는 황영시 군단장의 1군단 관할 검문소였기 때문에 원활하게 통과할 수 있었으나, 수경사 관할인 구파발 검문소가 문제였다.
구파발 검문소의 병력은 경복궁 측이 출동시킨 병력에 비한다면 적지만, 바리케이트와 쇠못이 솟은 철판을 깔아놓은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고 방벽 위에 발칸포가 배치되어 있는 구파발 검문소를 무력으로 통과하자면 수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이 뻔해 보였다.
우선 자신들이 갈 것이라는 통보를 한 1군단 헌병단장 최동수 대령이 병력들보다 먼저 구파발 검문소에 도착했다. 뒤에 있는 16전차대대의 전차포에는 모두 벌집탄이 장전되어 있는 상태였다.
검문소장 김 중위를 끈질기게 설득한 최동수 대령은 결국 3시 15분 경 29연대, 30연대 그리고 2기갑여단 16대대 병력이 구파발 검문소를 교전 없이 통과하도록 하는데 일조했다.
3시까지 구파발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는 지시가 보안사에서 내려와 있었다. 우회한다면 그 지시를 이행할 수 없는 상황에 황영시 군단장의 명령을 이행한 최 대령은 결국 15분만 늦은 채로 부대를 서울로 진입시켰다.
수경사에 있던 장태완 사령관이 사격지시를 각 예하부대에 전달하고 무장병력 철수, 한강 봉쇄 해제 등의 지시를 내리면서 사태의 막을 내려갈 때 쯤 세 명은 장태완 수경사령관 연행을 각각 계획하고 있었다.
한 명은 수경사 작전처보좌관 김진선 중령이었고, 다른 한 명은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 중령, 마지막 한 명은 이진백 수경사 인사참모였다. 육사 후배인 수경사 본부근무대장 편정휘 소령을 포섭한 김진선 중령은 체격 좋고 용감한 병사 20여명을 선발할 것을 지시하였다.
“어느 정도냐.”
“다들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임무가 무엇입니까?”
“사실 너의 임무는 사령관을 납치하는 것이다. … 사령관을 납치하는 것이 사령관한테도 도움이 되고 국가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니 어떻게 모시고 있던 사령관을 납치하느냐 하는 콤플렉스를 가지지 말고 프라이드를 가지고 임무를 수행하라. 그 분을 안전하게 모시고 간다 하는 것으로 생각하라”
편정휘 소령은 놀라는 듯 하더니 곧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수긍했다. 사령관실 앞이 헌병과 부관들로 차 있는 것을 본 김진선 중령은 편 소령에게 그의 부하들을 그 사이에 끼워놓으라고 지시했고, 적당한 때를 보던 도중 수경사 인사참모 이진백 대령이 와 “사령관 납치 지시를 받았는데 상황실장(김진선)도 그런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 또한 10시 경 연행지시를 받고 연행을 계획중이었던 것이다. 한편 육참총장 공관에서 복귀한 신윤희 헌병단 부단장 또한 김진선 작전처보좌관과 협의하라는 지시를 받고 헌병 40여명을 차출해 장태완 수경사령관 연행을 계획했다.
최순호 정보실장의 집무실에 김진선 중령 예하 수경사 헌병단 장교들이 모였다. 57중대장 한영수 대위, 53중대장 윤태이 대위, 10중대장 박대식 대위, 기동부대장 이재우 대위, 최순호 정보실장이 모인 가운데 신윤희 부단장은 57중대와 53중대에 용감한 헌병 20명씩을 각각 선발하여 실탄 분배를 하며 53중대는 사령부 건물 밖에 대기하면서 내부 지원태세를 갖추고 57중대는 20명의 병력을 4개 조로 편성하여 1 ,2층 복도 및 사령관실을 점령하여 사령관의 무장 해제 및 체포를 지시했다. 반항하면 사살할 것 또한 지시하면서 다른 장군들은 무장해제만 시킬 것을 명령했다.
3시 30분이 작전개시 시각이었다. 이들은 복도 2층으로 올라와 수행부관들과 헌병들을 내쫓았다. 이후 문을 박차고 들어간 그들은 윤성민 참모차장 예하 육본 참모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그때 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헌병들이 들어오기 직전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있는 접견실로 갔다가 참모들과 대화중인 것을 본 하소곤 장군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던 수경사령관 집무실로 돌아간 것이었다.
장군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던 헌병들을 본 순간 하소곤 소장이 놀라며 순간적으로 손을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에 갖다 대었다. 총성이 울린 것은 그 때였다. 57중대장 한영수 대위가 들고 있던 M16으로 하소곤 소장에게 발포한 것이었다. 총알은 하소곤 소장의 왼쪽 가슴을 뚫고 들어가 허파와 비장을 치고 뒤로 관통해 나갔다.
“야, 저놈들이 나를 쏜다!”
하소곤 소장은 접견실로 쓰러졌다. 그의 부관 김광해 중령은 사격에 깨진 유리창 파편이 머리에 박혔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접견실에 있다 놀라서 수경사령관 집무실로 달려갔다. 집무실에서는 그 사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황원탁 대령이 재빠르게 권총을 꺼내들고 헌병들을 향해 겨누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총격전이 벌어진다고 해도 M16 수정과 권총 한 정이 맞붙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또다른 유혈사태를 우려한 황원탁 대령 옆에 있던 문홍구 합참본부장이 권총을 빼앗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야, 이놈들아! 우리는 비무장이야, 총구를 치우지 못해!”
그럼에도 헌병들은 총구를 내리지 않았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집무실로 뛰어들어가 보니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 중령이 있었다. 배신감을 느낀 장 사령관이 소리쳤다.
“야, 이놈들아! 이게 도대체 무슨 짓들이야? 연행해 갈려면 나를 연행하던지, 아니면 나를 쏠 일이지, 도대체 장군님들에게 무슨 무례한 짓이야!”
“사령관님, 죄송합니다.” 신 중령이 머리를 숙였다.
“이게 누구 명령이야? 부단장은 누구 명령을 받게 되어 있는가?”
“보안사령관님의 명령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부터 제가 사령관님을 모시겠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던 장 사령관이 말했다. “나쁜 놈 같으니, 좋다! 전두환이에게 가자.”
현관으로 내려간 장태완 사령관의 눈에 차 두 대가 보였다. 보안사 요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타시지요. 제가 사령관님을 저희 보안사령관님이 계시는 곳 까지 모시겠습니다.”
장태완 사령관이 타자 보안사 요원은 옆 자리에 탑승했다. 그렇게 진압의 마지막 선봉이던 장태완 수경사령관 또한 보안사로 연행되었다. 1979년 12월 13일 새벽 4시 17분의 일이었다.
[뻘글 집합소] 201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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