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스텔스기 개발 야망 드러낸 日…“한반도가 위험하다”
일본 방위성이 공개한 차세대전투기 상상도. 높은 수준의 스텔스 성능이 적용됐다. 방위성 제공
일본 정부가 자국 주도로 첫 국산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나 러시아 등이 개발 중인 6세대 전투기에 필적할만한 기체를 국산화하겠다는 야망을 실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재 일본 항공자위대가 운용 중인 F-2 전투기는 미쓰비시 중공업이 생산한 것으로 2030년대에는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일본 정부는 F-2의 공백을 대체하면서 국내 전투기 개발 및 생산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신형 전투기 개발을 추진해왔다.
일본이 도입하고 있는 미국제 F-35A 스텔스 전투기보다 우수한 성능을 지닌 6세대 전투기를 만들려는 계획이라는 평가다. F-35A에 독자적인 스텔스 전투기가 더해지면 동아시아 하늘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일본 항공자위대 F-2 전투기가 괌 앤더슨 미 공군기지에 착륙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美 스텔스기보다 우수할 가능성 높아
일본 정부는 1조5000억엔(약 17조5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 신형 전투기를 만들 계획이다. 올해 안에 기초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는 상상도만 나와 있는 수준이지만 영국 주도로 개발이 진행 중인 6세대 전투기 템페스트나 러시아의 5세대 전투기 SU-57처럼 높은 수준의 스텔스 성능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공군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폭격기와 정찰기, 전투기를 잇따라 투입하며 미국, 일본을 압박하고 있다.
J-20과 FC-31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한 중국을 상대하려면 우수한 성능을 지닌 전투기가 필요하다. 제공권 장악을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공중전 능력이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스텔스 기술과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적외선 탐지능력 등을 갖춰야 한다.
중국 해군 함정을 먼 거리에서 공격하는 데 필요한 장거리 순항미사일 운용능력도 필요하다. 중국 해군은 ‘중국판 이지스함’으로 불리는 아시아 최대 크기의 구축함인 055급을 취역시켰으며, 이미 보유 중인 2척 외에 새로운 항공모함을 건조하고 있다.
중국 공군과 해군항공대, 해군 구축함의 방공능력을 피해서 공격을 감행하려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에 버금갈 정도로 멀리 날아가는 순항미사일을 장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F-2의 퇴역이 시작되는 2030년대 중반에 후속기를 도입할 방침으로, F-2와 같은 수량인 90기를 배치하는 방안을 상정하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이 개발한 X-2 기술실증기가 비행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일본은 미쓰비시 중공업이 기술실증기로 만든 X-2 전투기가 있지만, 독자 개발을 진행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미군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외국과의 개발 협력을 추진할 방침이다.
미국의 외교안보전문매체 디플로맷에 따르면, 일본 방위성은 2018~2019년 글로벌 방산업체에 정보요청서(RFI)를 보냈다. 방위성의 정보요청서에 대해 영국 BAE 시스템즈, 유럽 에어버스, 미국 록히드마틴과 노스롭그루먼, 보잉이 회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유력한 회사는 록히드마틴이다. 록히드는 F-22의 설계에 F-35A 전자장비를 장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냉전 시절 막바지에 개발된 F-22는 세계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로 평가받는다.
최신형 기종인 F-35A는 스텔스와 더불어 전자장비 성능이 우수하다. F-22의 하드웨어와 F-35A의 전자장비가 결합하면 F-22보다 우수한 전투기를 만들 수 있다. 다만 록히드마틴이 제시하는 개발비가 과도하다는 문제가 있다.
노스롭그루먼은 과거 F-22에게 밀려났던 YF-23을, 보잉은 F-15를 개량한 것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한 세대 이전의 기술이라는 점에서 채택 가능성은 작다.
영국 BAE 시스템즈가 개발 중인 6세대 전투기 템페스트 상상도. 롤스로이스 제공
BAE 시스템즈가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영국 롤스로이스 등과 합작 개발 중인 템페스트는 6세대 전투기로 우수한 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나 양산 시점은 2035년 이후로 예정되어 있어 일본의 수요를 맞추기 어렵다.
에어버스는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고 스페인이 참여한 가운데 2040년 상용화를 목표로 120억유로(약 15조6000억원)를 투입해 개발 중인 차세대전투기 유럽미래전투항공체제(FCAS)를 주도하고 있으나 BAE시스템즈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수요를 맞출 수 없는 실정이다.
◆‘반쪽 스텔스’ KF-X로는 맞서기 어려워
우리나라도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한화시스템, LIG 넥스원, 국방과학연구소(ADD)등을 중심으로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F-35A보다 낮은 수준의 스텔스 기능과 전자장비 성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되는 KF-X가 일본의 차세대전투기와 대등하게 맞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에어버스의 타이푼 전투기가 스텔스기를 요격하기 위한 맞춤형 전술을 사용하는 사례를 참고할 수도 있지만, 일본은 조기경보통제기와 전자전기, 공중급유기 등 지원전력을 충실히 갖추고 있어 이조차도 쉽지 않다. F-35A를 뛰어넘는 6세대 전투기 개발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국내에서도 6세대 전투기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해 5월 공군발전협의회가 ‘4차 산업혁명과 항공우주력 건설’을 주제로 연 학술회의에서 박기태 당시 공군본부 전략기획 차장은 6세대 전투기의 특징을 인공지능, 스마트 스킨, 극초음속 엔진, 레이저 무기탑재 등으로 제시하며 “KF-16 전투기가 퇴역하는 2040년 이후 전력공백에 대비해 6세대 전투기 개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차장은 극초음속 엔진, 적외선 및 광학 탐지 회피 스텔스 기능, 고용량 네트워크 기술, 유무인 복합운용 개념 등을 6세대 전투기 성능으로 분류하고 6세대 전투기 전력화 시기를 2035년 이후로 전망했다.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19(서울 ADEX 2019)' 미디어데이가 열린 지난해 10월 14일 오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 활주로에 KF-X 실물 모형이 계류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내에서는 6세대 전투기 개발이 매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KF-X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6세대 전투기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 기술과 예산 문제도 걸림돌이다. 6세대 전투기의 핵심은 인공지능과 전자전 기술이다. 인공지능으로 각종 정보를 융합해 조종사의 의사결정을 돕고 적의 공격을 무력화하는 전자전을 통해 아군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기체 외형보다 전자장비나 프로그램이 더 중요한 이유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은 이같은 측면에서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다. 4.5세대에 해당되는 KF-X 개발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6세대 전투기를 독자 개발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KF-X 개발 및 생산비는 18조원 정도다. 6세대 전투기는 KF-X보다 생산 규모가 적지만 연구개발비는 KF-X(8조8000억원)보다 많을 수도 있다.
예산 부담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공동연구개발 방식이 있지만, 선진국을 개발 파트너로 설정하면 독자 기술개발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외국 기술을 사오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
미국 노스롭그루먼이 공개한 6세대 전투기 상상도. 레이저로 적기를 공격하는 기능을 갖췄다. 노스롭그루먼 제공
일각에서는 6세대 전투기 개발이 어렵더라도 관련 준비는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중국, 러시아, 일본이 첨단 전투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추세에 대응해 2040년까지 유지할 전력을 활용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수한 성능을 지닌 항공무장을 새로 도입하거나 비(非)스텔스기로 스텔스기를 격추할 수 있는 전술, 스텔스 탐지 기술 등 적은 비용으로 전투력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은 채 시간을 낭비한다면, 한반도 일대에서 우리나라 비행기가 안심하고 날아다닐 공간은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늘의 지배권을 잃어버리면 안보도 지킬 수 없다. 지금부터 준비를 서둘러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세계일보]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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