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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억지 : ‘군사력’ 구축과 ‘신뢰’ 구축 병행을 통한 해양안보 시너지 창출

머린코341(mc341) 2020. 3. 24. 09:17

[한국해양전략연구]스마트 억지 : ‘군사력’ 구축과 ‘신뢰’ 구축 병행을 통한 해양안보 시너지 창출


KIMS Periscope 188호(한국해양전략연구소 발행)

KIMS Periscope 188호

한국해양전략연구소 발행


대한민국 해군의 이지스구축함이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근해를 항해하고 있다. 국방일보DB.


A 국가가 B 국가의 관할해역 인근 상공으로 군용기를 보낸다. B 국가는 A 국가의 정확한 의도를 모르기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전투기를 출격시켜 강력히 대응한다.


A 국가의 군용기는 일단 퇴각하지만 며칠 후 다시 해당 해역 상공으로 접근해 초계작전을 수행하고 B 국가는 다시 전투기를 출격시키면서 긴장이 고조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군사적 갈등의 장기화 조짐마저 나타난다. 이에 B 국가는 최첨단 군사력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유사시 이를 과감히 투사할 의지가 있음을 내비친다.


즉, 상대국의 행동에 대응할 막강한 군사력과 단호한 의지가 있음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며 상대방을 압박하고 나서는 것이다.


B 국가는 능력(Capability), 신뢰성(Credibility), 전달(Communication)로 대변되는 억지의 삼박자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A 국가가 B 국가의 수준 높은 군사력과 불굴의 의지를 간파한 후 계속 군용기를 보낼 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손해가 많다고 여겨 그 행동을 중단하면 억지가 달성되어 결국 아무도 원치 않는 전쟁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반대로 A 국가도 첨단군사력을 더욱 강화하여 B 국가의 능력과 의지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 계속 군용기를 보낸다면 아무리 군사력을 강화해도 안보는 더욱 더 불확실해지는 안보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A와 B 국가는 군사적 대결이 극한으로 치닫게 될 수 있다.


한편 A와 B 국가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 두 국가 모두가 전쟁까지는 원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안보딜레마에 빠진 두 국가는 군사적 대치가 가열되면서 의도치 않게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이는 군사력 강화만으로는 억지를 달성할 수 없는 경우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황이다. 따라서 군사력 강화가 안보딜레마로 전이되지 않도록 하는 또 다른 기제가 필요하다. 신뢰구축조치(CBMs: Confidence Building Measures)가 바로 이 기제의 하나로 작동될 수 있다.


2019년 7월 23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동해 상공에서 연합작전을 벌이며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넘어섰다. 급기야 러시아 군용기는 독도상공으로 근접하며 영공까지 침범했다.


한국군은 적시에 전투기를 출격시켜 경고사격을 통해 이 군용기를 퇴각시켰다. 그런데 21분 뒤 다시 한번 군용기가 영공을 침범했고 한국 전투기는 다시 한번 경고사격을 가해 러시아 군용기를 퇴각시켰다.


한국군은 상대방이 정해진 경계선을 침범하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억지의 삼박자를 적실하게 잘 구사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외국 군용기가 아 관할해역 인근 상공에서의 초계비행을 증가하고 있고 주변국 해군은 함정을 아 해역 인근으로 보내 해양영향권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빈번해지면서 역내 해양안보가 불확실해지고 있다. 따라서 해양안보를 지켜내고 해양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교한 정책발굴이 요구된다. 물론 이러한 정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국의 군사력을 막아낼 수 있는 실질적 군사력 구축에 매진하여 물리적 억지를 달성하는 것이다.


나아가 평소에도 이러한 군사력을 시의 적절하게 현시함으로써 상대방이 아의 강력한 대응의지를 인식하도록 하는 지략도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전통적 억지 메커니즘이 통하지 않을 경우도 가정하는 정교한 지략을 통해 혹시 모를 작은 안보의 빈틈도 메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양 신뢰구축조치가 절실하다.


억지가 상대방을 물리적으로 강압하여 안보를 달성하는 것이라면 신뢰구축조치는 서로 간에 자발적으로 소통하여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오판의 위험성을 줄여 안보를 달성하는 것이다.


신뢰구축조치는 서로 간에 완전히 믿는 환경이 구축된 후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서로를 믿지 못하기에 신뢰구축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뢰가 없기에 오판의 위험성도 크다는 가정하에 시작하는 것이 신뢰구축조치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기에 믿어 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보려는 시도라는 의미다.


‘신뢰’는 상대방을 일단 믿어보려는 의지의 발현이다. 상대방을 완전히 믿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일단 믿어 봄으로써 의도치 않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여보고자 노력해보는 것이다.


일방으로 이루어지는 신뢰는 위험하다. 하지만 쌍방 간 ‘신뢰의 균형(balance of confidence)’이 이루어지면 ‘믿어보려는 의지’가 ‘믿을 수 있는 현실’로 바뀔 수도 있다.


“강대국 경쟁(great power competition)”을 벌이고 있는 거친 안보환경 속에서도 미국과 중국은 신뢰구축조치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기울여 왔다.


2014년 중국당국은 당시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칭다오 방문 시 야심차게 전력화를 하고 있던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미 고위관료 중에는 처음으로 공개했다.


나아가 남중국해에서 해군 간 대치가 격화되고 있는 시점인 2016년에는 존 리차드슨 미 해군참모총장이 중국을 방문해 우성리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사령원을 예방하고 랴오닝함에도 오르면서 해양 신뢰구축조치를 이어갔다. 이러한 사례는 양국의 군 당국 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해군력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평가될 수 있다.


육지와 달리 바다에서의 경계는 모호한 경우가 많다. 바다는 내수, 영해 등 육지처럼 확실히 경계를 제시할 수 있는 영역 이외에도 배타적경제수역과 대륙붕 등 보다 먼 해역까지도 포함되어 있어 관할권이라는 개념을 품고 있는 독특한 영역이다.


한·중 간 배타적경제수역에 대한 경계획정이 아직 되어있지 못한 것도 바다를 둘러싼 경계모호의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사례다. 경계의 모호성으로 인해 충돌의 빈도도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바다다. 충돌의 빈도를 낮추고 나아가 오산(miscalculation)과 오인(misperception)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신뢰구축조치가 절실하다.


세부적으로는 선언적 조치, 소통적 조치, 제한적 조치, 협력적 조치 등 다양하지만 크게 투명성(transparency)을 높이고 소통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안보 불확실성(uncertainty)을 낮추는데 그 취지가 있다.


우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당사국 간 직통전화가 단순 설치를 넘어 상시 운용 가능토록 소통태세를 잘 유지해야 한다.


직통전화가 위기 바로 직전 오판을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면 중장기적으로 신뢰를 구축하는 장치로서 해군 대 해군 혹은 공군 대 공군 회의 확대, 함대 간 교류, 공군조종사 간 부대 교환방문 등을 통해 상호 간 소통의 분야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지스함, 항공모함 등 최첨단 함정 진수식이나 전투기 전력화 행사 시 상호 간 대표단을 초청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


물론 신뢰구축조치가 조금씩 성과를 거두면 단계적으로 함대급 이상 훈련이나 공군 공중훈련 시 사전통지하여 훈련정보를 상호 간 공유하고 나아가 상대국의 연락장교를 자국 군사훈련에 초청하는 등 훈련의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상대국 군용기나 군함이 긴장도가 높은 해역이나 상공에서 훈련, 경계 등 임무 시 사전에 서로 정보를 알려주는 제도적 장치도 구축한다면 크게 안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리적 억지개념과 달리 신뢰구축조치는 자발성에 기반을 둔 비물리적 억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신뢰구축조치는 억지달성에 시너지적으로 기여하게 해 주는 “스마트 억지”의 핵심적 메커니즘을 제공해 준다. 단, 한 가지 빠져서는 안 되는 함정이 있다.


신뢰구축조치 없이 물리적 군사력에 의해서만 억지를 달성하는 데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신뢰구축조치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점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반길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약력
반길주 박사(raybankj@gmail.com)는 해군사관학교 졸업(51기) 후 국방대학교 안전보장학석사(국제관계 전공) 및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정치학박사(국제관계 전공) 학위를 취득했다. 해상보직으로 255편대장 · 속초함장 등을 역임하였고 육상보직으로 합참, 유엔사에서 전력기획, 정전체제 관련 업무 등을 담당했다.


국내·외 관련자료
· Tom Nichols. “Iran’s Smart Strategy.” Defense one, January 10, 2020.
· Stephen Kuper. “At-sea nuclear deterrent submarines top priority for US Navy.” Defence Connect, December 12, 2019.
·Melanie W. Sisson. “IT’S TIME TO RETHINK NATO’S DETERRENT STRATEGY.” War on the Rock. December 6, 2019.
· Ralph A. Cossa. “Asia?Pacific Confidence-Building Measures for Regional Security” A Handbook of Confidence-Building Measures for Regional Security. March 1, 1998.
  

* 본지에 실린 내용은 필자 개인의 견해이며 본 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국방일보] 2020.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