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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官軍이 기려야 할 인천상륙작전

머린코341(mc341) 2014. 9. 27. 08:05

民官軍이 기려야 할 인천상륙작전 (문화일보, 2014.09.12)
  
오는 15일은 인천상륙작전 64주년이 되는 날이다. 6·25 전쟁 기간에 대한민국 국군은 크고 작은 여러 차례의 작전을 수행했지만 인천상륙작전만큼 극적이고 통쾌한 순간은 없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우리는 적에게 빼앗긴 수도 서울을 3개월 만에 탈환하는 계기를 잡았다. 수세(守勢)에 몰린 전세를 공세(攻勢)로 전환시킨 전략적 쾌거였다. 연합국 전력은 8개국 함정 261척, 지원 병력 포함 7만여 명이 작전에 참가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상륙군 부대는 미 육군 7사단과 미 해병대 1사단이었다. 여기에 한국군 부대로 신현준 대령이 지휘하는 해병대 1개 연대와 백인엽 대령이 지휘하는 육군 17연대가 각 사단에 배속됐다. 한국 해병대가 수도 서울 탈환작전에 참여하게 된 것은 손원일 당시 해군 참모총장의 강력한 요청을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의 도박이었다. 그러나 그 도박은 실현 불가능한 게 아니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인천이 비록 상륙 장소로는 불리하지만 전략적 의미는 매우 컸기 때문이다. 낙동강을 최후의 보루로 밀고 밀리는 전투 중에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해 서울을 탈환한 것은 적의 사기와 전투의지를 크게 위축시켰다. 맥아더 자신도 인천상륙작전 계획을 반대한 미 해군 제독들과 합참에 “인천의 승산은 5000분의 1”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인천 해역의 빠른 조류, 지원 함정들이 함포사격 하기에도 불리한 얕은 수심, 상륙함정이 접안해야 하는 해안의 여건은 최악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맥아더는 우군이 상륙하지 못할 곳이라는 북한 전쟁지도부의 약점을 역이용한 것이다. 위기를 호기로 역전시킨 것이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카드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공산화됐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김대중·노무현정권 시절 종북 좌파들은 대한민국을 누란의 위기에서 구해준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해괴한 행패를 부렸다. 주한미군도 철수해야 한다고 아우성이었다. 우리는 오히려 인천상륙작전의 정신을 더욱 고양하고 축하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 연합군, 국군 참전 영웅들의 정신을 더욱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상륙작전은 미래에도 꼭 필요한 해군의 가장 중요한 작전 중 하나다. 미래에 독도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북한 유사시 투입될 병력도 해병대 상륙군이다. 그런데 현재 추진하고 있는 상륙작전 발전계획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우리 해군에 믿을 만한 상륙함정은 2007년 배치된 독도함 한 척뿐이다. 그것도 한 척뿐인 독도함에 아직 상륙군을 이송할 기동 헬기도 없다. 국방부는 2020년에 두 번째 독도함을 건조한다고 한다. 중국은 랴오닝항모를 실전에 배치해 서해를 주름잡고, 일본은 헬기 항공모함을 건조한다고 야단이며, 북한은 고속 상륙함을 추가 건조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 강국 1위인 대한민국은 상륙군을 이송할 함정과 탑재 헬기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기왕 2020년으로 계획돼 있다면 내실 있고, 기동성이 우수한 헬기를 탑재할 수 있는 상륙함을 건조해야 한다.

 

매번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 기념식에 참석해 보면 군이 행사를 주관하고 인천시장과 서울시장은 손님이다. 주객이 전도(顚倒)된 느낌이다. 9·15 인천상륙작전과 이어지는 9·28 서울수복은 정부 차원의 행사가 돼야 하며, 시장이 주관하는 민·관·군(民官軍) 축하 행사가 돼야 마땅하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인천과 서울이 재탄생된 역사적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점점 잊어져 가는 전승기념일을 기억하고 전쟁 영웅들을 기리는 일은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에 대한 우리의 당연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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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일보, 윤 연/前 해군작전사령관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9120103373719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