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27) - 한·미 해병대는 닮은꼴
인천상륙작전과 원산·흥남작전 같은 대규모 연합작전을 통해 한·미 두 나라 해병대 사이에는 진한 형제애가 싹텄다. 국적은 다르지만 해병대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동지애를 가진 터에, 목숨을 걸고 같이 싸운 전우애가 겹쳐진 것이다.
그것이 계기였다. 지금 두 나라 해병대는 복식에서부터 전통과 정신문화에 이르기까지, 쌍둥이처럼 닮은꼴이 됐다.
복식은 얼룩무늬 전투복과 팔각모, 짙은 초록색 정복, 진한 베이지색 여름철 정복이 모두 같다. 정신세계의 공통점은 두 나라 해병들이 입에 담고 살 듯하는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영원한 동지애다.
‘최고’라는 자부심도 그렇다. 그것은 ‘불가능은 없다’는 강한 투지와 의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미국 해병대 모집공고에는 언제나 ‘소수 정예, 자긍심, 해병대’를 한데 묶은 유명한 말 “The Few, The Proud, The Marines”가 등장한다. 미국인들은 어려운 일에 맞닥뜨리면 “해병대로 보내라”고 말한다. “해병대에게 말하라”고 하기도 한다. 해병대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국민적인 인식에서 나온 말이다.
그것은 명예를 하늘같이 존중하는 해병대 전통에 뿌리를 박고 있다. 미 해병대원들은 ‘불명예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Death Before Dishonor)는 자긍심으로 뭉쳐져 있다.
미 해병대 정신을 잘 표현한 ‘어 퓨 굿맨’(A Few Good Man)이라는 영화가 있다. 강한 체력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훈련과 철통같은 정신무장이 어떤 군대를 만들어 내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완전무장 구보, 외줄 타기, 철조망 통과 같은 초반부의 장면들은 다른 군에도 다 있는 훈련과정이다. 그러나 이 훈련에서 낙오한 병사들에게 가해지는 징계는 완전히 다르다. ‘코드 레드’라는 얼차려가 있다. 철사 수세미로 몸 닦기, 담요 씌우고 여럿이 구타하기, 굶기기, 막사에 감금하기 같은 얼차려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훈련 중 총을 떨어뜨린 병사의 손에 접착제를 발라주는 장면도 나온다.
이런 정신문화는 한국 해병대에도 고스란히 전수됐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한때 해병대가 최고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타군에게 시비를 걸어 말썽을 일으키는 병사들이 있었다. 휴가나 외출 나가는 병사들에게 선임자들이 “귀대할 때 타군 모자를 못 빼앗아 오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하는 엄포를 놓았던 것이다. 해병대 출신인 한 유명 연예인은 현역 시절 223개의 모자를 빼앗았다고 자랑한 일이 있었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것도 닮은꼴이다.
“해병대가 이것밖에 안 되나?”
“이래서 해병대라고 할 수 있겠나?”
“해병대 명예를 걸고 반드시 해 내라.”
해병대 신병교육대 교관이나 조교들은 이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산다. 명예와 전통을 강조함으로써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주려는 것이다.
“누구나 해병대가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병대가 이런 말로 자부심과 긍지를 길러주는 것도 미국과 똑같다.
인천상륙작전 이래 베트남전에서 또 만나 형제애를 나눈 한미 해병대는 평시에도 수시로 연합훈련을 실시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가고 있다.
그래서 미 해병대원 가운데는 한국 해병대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 많다. 만나면 소주도 마시고, 폭탄주 ‘원샷’도 함께 한다. 2·3차도 같이 가고, 노래방에 가면 어깨동무하고 노래도 같이 부른다. 생선회를 즐기는 미 해병대원도 많다.
한국형 '영 마린', 해병대 캠프
우리 해병대 캠프는 얼핏 미 해병대의 '영 마린(Young Marine)' 이라는 제도와 유사해 보이지만 완전히 한국화하여 정착된 국민들의 인기있는 극기(克己)훈련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해병대사령부는 1997년여름부터 포항, 김포, 백령도 주둔부대에서 매년 여름과 겨울 두차례 민간인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4박 5일로 짜여진 일정에 따라 해병용사들과 같은 극기훈련을 통해 해병대에 대한 이해와 민군(民軍)간의 화합을 증진시키려는 프로그램이다.
그간 이 과정을 거쳐간 사람은 29개 기(期)에 걸쳐 총 9,484명이었다고 한다. 대부분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해병대 캠프가 인간의 정신력과 육체의 단련에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해병대사령부 인사처 인력개발과에 부탁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해병대 캠프 수료자 가운데 고교생이 무려 43퍼센트이고 중학생이 40퍼센트였다.
그 밖에 일반인 10퍼센트, 대학생 7퍼센트 순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가운데 여성이 20퍼센트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젊은 학생층과 여성에게 인기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 해병대의 앞날에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캠프에 입소하는 여학생들은 각 기별로 편성되는 5~6개 소대 중의 하나인 '여성소대'에 입소하여 별도로 짜인 스케줄에 따라 훈련을 받게 된다.
입소자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하는 일반 남자 성인 대부분이 타군 출신인 것도 흥미롭다. 먼저 해병대 캠프를 체험하고 30명의 사원을 차례로 입소시켜 극기훈련을 받게 한 육군 장교 출신의 중소기업체 사장도 있었다.
울산 현대(現代)의 여러 회사에서는 1997년 포항에 하계캠프가 처음 설치된 이래 1999년 동계캠프에 이르기까지 280명의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들을 차례로 입소시켜 극기훈련을 받게 했다.
그러한 결정은 현대정공,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현대강관(주) 임원으로 있던 김무일, 이우상, 정달옥, 권순식 씨 등 해병대 출신 임원들이 사원들에게 애사심과 충성심을 심어 줄 목적으로 기획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가족캠프가 병설되어 국민의 캠프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온 가족이 같은 기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프로그램의 체험을 통해 해병대를 이해하고 동질감을 느끼게 된 것은 해병대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다.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회고록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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