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197기 김금산

[해병대의 기적] 5. 폭식증

머린코341(mc341) 2015. 1. 6. 03:45

[해병대의 기적] 5. 폭식증

 

가입대 생활이 끝나고 입대식이 치러졌다. 연병장에 5개 중대, 15개 소대, 600명이 집합했다. 훈련소장이 축사를 했다.

 

“귀하들은 자랑스러운 대한의 남아로……….”

 

점심 때 돼지 고기국과 반찬으로 깍두기가 나왔다. 말로만 고기국일 뿐 고기를 한 점도 구경할 수 없었다. 기름만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훈병들은 그런 고기국과 깍두기를 훈련이 끝날 때까지 더 이상 구경하지 못했다. 훈병들은 모두 보리밥과 도루묵 국으로만 연명을 해야 했다.

 

훈병들은 모두 허기가 졌다. 반찬도 없는 밥이었지만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웠다. 훈련소에서 근무하는 기관병들은 밥을 많이 먹지 않아서 남긴 밥을 으례 짬빵통에 버렸다. 훈병들은 짬빵통에 버린 밥을 주먹으로 퍼먹기도 했다.

 

그 때마다 기합을 받곤 했지만 훈련기간 동안 짬빵통 밥을 퍼먹는 훈병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짬빵통 밥을 먹는 훈병들을 볼 때마다 먹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지만 참지 못하면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참아내곤 했다.

 

내가 수채 구멍에서 뒹굴고 있는 엄지 손가락 만한 멸치를 물에 씻어서 먹은 적이 한번 있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서가 아니라 몸에 종기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종기가 났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비타민 부족이 원인이 아닌가 하여 멸치 속의 비타민이 탐이 나서 먹었던 것이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에서는 종기가 계속 생겨났다. 옷에 가려진 부위는 종기가 터지면 나았지만 손 등에 난 종기는 추위 때문에 낫지 않았다. 종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동상으로 변했다. 나는 동상을 면하려고 소변을 볼 때마다 오줌으로 손을 씻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동상에 걸린 훈병이 많아지자 해군 하사들(의무실)이 와서 합동으로 치료해 주었지만 멀겋게 생긴 물약을 한번 발라주는 것으로 그만이었다. 나의 손에 동상이 심해지자 10손가락 끝 마디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해동이 되어 낫기를 바라면서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가장 힘든 일은 얼은 손으로 팬티 줄을 묶고 바지와 상의의 단추를 끄르고 꿰는 일이었다. 손가락에 마비가 와서 감각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소변을 볼 때마다 끌러야 하는 바지 단추는 나를 엄청나게 고통스럽게 했다. 단추 하나를 꿰는데 5분도 더 걸려서 나는 바지 단추를 하나만 뀄다. 그것도 봉사가 문고리 잡듯이 더듬거리면서 꿰어야 했다.

 

여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훈련이 고된 탓도 있었지만 입대식 전 날에 맞은 주사 때문이었다. 훈병들은 영문도 모르고 주사를 맞았는데 소대원들 말에 의하면 성욕을 억제하는 주사였다고 한다. 그 주사 때문이었는지 나는 입대하여 교육을 마칠 때까지 2개월 동안 한 번도 성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손가락이 마비된 나는 M1 소총을 손으로 쥘 수가 없었다. 나는 체격이 작아서 무거운 M1 소총이 큰 부담이 되었다. 그런 총을 손으로 쥐지도 못하고 손바닥으로 치켜들어야 했기 때문에 나의 동작이 소대장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소대장은 나를 고문관으로 취급하여 기합을 많이 주었다. 그러다가 동상이 심한 것을 보고 의무실에서 약을 구해다 주기도 했지만 동상은 조금도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은 동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취침할 때마다 곁에서 들려오는 먹는 소리였다. 훈련소는 훈병이 돈을 쓰지 못하도록 중대에 예금하게 했지만 훈병들은 소대장과 내통하여 중대예금을 찾기도 하고, 집에 연락하여 소대장과 조교 앞으로 돈을 보내게 하여 찾기도 하고, 기관병을 통해서 돈을 건네 받기도 했다.

 

나는 그럴 형편이 되지도 않았지만 형편이 되었다고 해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입대할 때 마음에 다졌던 대로 무일푼으로 군대생활을 마치겠다는 생각에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취침시간에 먹는 것은 규칙위반이었다. 그렇지만 거의 모두가 모포를 둘러쓰고 숨을 죽이고 먹었다. 그렇지만 목구멍을 넘기는 소리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나는 식당에서 먹는 밥으로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꿀꺽거리는 소리가 항상 나를 괴롭혔다. 절대적인 고통은 견딜 수 있었지만 상대적인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꿀꺽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호떡을 생각했다. 호떡을 좋아하지 않았는 데도 배 고픈 생각이 날 때마다 설탕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호떡이 생각나곤 했다. 나는 호떡을 먹다가 설탕물이 손에 묻어 끈적거리는 손을 바지 안창에 대고 닦는 꿈을 꾸기도 했다. 나는 훈련이 끝나면 호떡을 실컷 사서 먹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잠을 자곤 했다.

 

돈이 없는 나는 PX에 갈 일이 없었다. PX는 나에게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PX 분위기가 궁금해서 한 번 들어가 보았다. PX는 아비규환이었다. 빵이 PX병 손에서 훈병 손으로 넘어가기 무섭게 옆에 있던 훈병들이 손을 뻗어서 빵을 강탈하고 있었다. 빵을 빼앗으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의 사이에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빵을 사는 자는 빵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PX병으로부터 빵을 받자마자 품 속에 집어 넣었지만 10개도 넘는 손들이 그의 품 속을 파고들어 빵을 뜯어 가기까지 했다. 빵을 사는 자는 절반을 빼앗기고 절반 정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해병대의 훈련소 모습이었다.

 

PX가 지옥을 방불하고 있었지만 훈련소에서는 상관하지 않았다. 훈련소는 PX를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공존공생하는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빵을 사는 자들은 절반을 허기진 자들에게 지불하는 세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지옥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다가 PX를 나왔다.

(인간은 얼마나 더 사악해질 수 있는 것일까?)

(나의 인내심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나는 호떡을 생각하면서 병사로 돌아왔다.

(훈련이 끝나면 호떡을 한도 끝도 없이 먹고 밥을 원도 없이 먹으리라.)

 

나는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는 꿈을 꾸다가 팬티 바람으로 집합하라는 고함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불침번을 보던 훈병이 졸다가 조교에게 들켰던 것이다.

 

향도가 기합을 면하려고 소대원들로부터 돈을 걷었다. 소대장과 조교에게 뇌물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소대원은 모두 돈을 냈지만 향도는 나와 몇 명에게는 돈을 걷지 않았고 소대원들도 묵인했다. 소대원들은 면제받은 훈병들이 돈을 쓰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대장은 나를 달가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훈병들은 소대장과 조교에게 심부름 값을 지불하면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지만 나에게서는 그런 기대를 할 수도 없고, 설상가상으로 동상까지 앓아 동작이 굼뜨게 된 것이 소대장의 비위를 더욱 거슬리게 했던 것이다.

 

소대장은 나를 고문관으로 취급하여 걸핏하면 빳다를 쳤다. 그러다가 소대장이 나의 진가를 인정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소대장의 목표는 우리 소대를 명예소대를 만드는 일이었고, 명예소대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했다. 평가는 제식훈련, 총검술, 태권도, 총기 다루기, 수류탄 투척, 장애물 통과, 사격 등으로 구분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이 사격이었다. 군인이 사격을 잘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소대장은 사격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사격 연습이 끝나고 실제 사격으로 들어가자 나의 사격 솜씨가 소대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나타나자 소대장이 말했다.

 

“굼벵이도 재주가 있다고 하더니………….”

 

사격 평가를 받는 날 나는 사격을 못하는 소대원들을 대신해서 총을 쏘아 주어야 했다. 나의 오른쪽 턱이 주먹만하게 부어 올랐다. M1 소총은 반동이 커서 턱으로 개머리판을 밀착시켜서 쏘는 데도 총을 많이 쏘다 보니 턱이 성할 수 없었다.

 

소대장의 극성과 나의 사격 솜씨가 발휘되어 우리 소대의 사격 점수가 15개 소대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날 밤, 소대장은 기분이 좋아 자유시간에 파티를 열어주었다. 술이 없었을 뿐 소대원들은 오래간만에 고기 냄새를 맡았다. 소대원은 웃고 떠들었고 금기의 대중가요를 부르기도 했다.

 

소대원은 오랜만에 소대장의 웃는 얼굴을 구경할 수 있었다. 여흥이 무르익고 있을 때 소대장이 돌연 고함을 질렀다.

 

“총원! 팬티 바람에 연병장에 집합!”

 

소대장의 변덕이 도진 것이었다. 소대원들이 투덜대면서 집합했다.

 

“오락군기가 그것밖에 되지 않나?”

 

소대원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잘하겠슴닷!!!"

 

"꼬라박아!"

 

모두 꼬라박았지만 원산폭격은 더 이상 기합이 되지 않았다. 원산폭격을 많이 하다 보니 모두 이골이 났기 때문이었다. 소대원들은 꼬라박은 자세에서 휴식을 취했고 심지어 코를 골면서 자는 자도 있었다. 소대원들은 원산폭격을 할 때마다 코를 고는 자의 머리통을 구둣발로 차서 깨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동작 그만!”

 

소대장은 소대원들을 모두 물 속으로 밀어넣었다. 소대원들은 얼음을 깨고 물 속으로 들어가 목을 내밀었다.

 

나는 물을 뿌리는 것보다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견딜만 하다고 생각했다. 물 속에서 나온 신병들이 사시나무 떨 듯이 떨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구보를 실시한다. 실시!”

 

“실시!!!”

 

소대원은 모두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정리하고 구보를 시작했다. 14소대 소대원은 귀신 잡는 해병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해병대는 70%가 보병 병과이고 나머지 30%는 특과 병과로 구성된다. 특과는 통신 수송 병기 포병 의무 보급 작전 헌병 방첩 의장대 등으로 모두 보병을 지원하기 위한 병과다.

 

훈련병들은 모두 특과를 원했다. 특과는 보병보다 훈련이 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끗발이 좋은 병과이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특과는 보급이었다. 보급은 군대에서 필요한 물자를 담당하기 때문에 물자를 취급하다 보면 콩고물이 많이 떨어질 수 있는 병과였다.

 

훈병들은 모두 보병만 아니면 괜찮다면서 특과를 받으려고 빽을 동원하고 뇌물을 쓰기도 했다. 나는 특과를 꿈도 꾸지 않았다. 빽도 없고 돈도 없는 내가 특과를 바라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기 때문이었다.

 

훈련이 끝날 즈음에 병과를 분류하기 위해 최 중령이 소대원과 개별면담을 실시했다. 소대원들은 형식일 뿐이라고 수군거렸다.

 

나의 차례가 되었다.

 

“무슨 병과를 원하나?”

 

나는 기대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통신입니다.”

 

“통신을 지망하는 이유가 있는가?”

 

“입대하기 전에 8개월 동안 통신학원을 다닌 적이 있습니다.”

 

최 중령이 물었다.

 

“수료증이 있나?”

 

“필요할지 몰라서 입대할 때 수료증을 한 통 떼어 가지고 왔습니다. 군복으로 갈아 입을 때 사복에 넣어 두었습니다.”

 

“알았다. 돌아가!”

 

내가 일어나 경례를 붙였다.

 

“훈병 김금산! 용무를 마치고 돌아갑니다.”

 

나는 통신 병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형식이었을 뿐이니까……….

 

해병대는 훈련 중에는 면회가 되지 않았다. 수료식을 1주일 남기고 집으로 편지를 보내는 것이 허락되었다. 수료식 날은 면회가 허락되므로 면회를 와도 좋다고 편지를 보내라는 것이었다. 나도 편지를 써서 보냈다.

 

1개월의 훈련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고생도 되고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견딜만 했습니다. 수료식 날 면회가 된다고 하는데 저는 면회를 원치 않습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받아야 하는 훈련을 받았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열심히 훈련을 받지 못하여 아버님과 어머님께 누를 끼친 것이 아닌가 하여 죄송하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실무로 배치될 때 시간을 낼 수 있으면 잠시라도 들려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옥체만강하시기 바라옵니다.

 

훈련이 끝나고 수료하는 날이 되었다. 소대장이 병과표를 가지고 왔다.

 

소대원들은 모두 가슴을 졸이며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수송, 누구 누구……, 병기, 누구 누구……,”

 

소대장이 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 말했다.

 

“호명하지 않은 소대원은 모두 보병이다. 이상!”

 

특과를 배정 받은 소대원들은 모두 환호했다. 나는 특과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막상 보병이 되자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수료식이 거행되었다. 소대장은 훈련소장으로부터 명예소대 표창을 받고 찢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른 소대의 조교들이 투덜거렸다.

 

“소대원들을 개 패듯이 다루니 명예소대가 될 수밖에……….”

 

수료식이 끝나고 면회가 허락되었다. 60% 정도가 면회를 왔다. 면회를 온 훈병들은 면회 오지 않은 훈병과 같이 나가서 함께 식사하기도 했다. 향도가 나에게 함께 가자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의 굶주린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면회 덕분에 면회 오지 않은 10명이 40명 밥을 먹게 되었다. 나는 4인분을 먹었지만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었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예금했던 500원을 찾았다. 나는 호떡을 사 먹고 싶었지만 외출이 허락되지 않아서 포기해야 했다.

 

나는 호떡을 먹을 수 없는 것이 못내 섭섭했지만 PX로 가서 처음으로 빵을 샀다. 500원(1만원 상당)어치가 20개였으니 상당한 양이었다. 4인분 밥을 먹은지 5분도 되지 않았지만 나는 빵을 한 순간에 먹어 치웠다.

 

그런데도 배가 부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빵이 20개가 더 있었다고 해도 그것도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말았을 것이다. 나의 배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밑 빠진 독으로 변해 있었다.

 

 

출처 : Daum 해사사 카페, http://cafe.daum.net/rokmarinecorps/6bOu/1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