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의 기적] 6. 기적의 시작
상암의 보병 집결지로 가려고 보병들과 함께 트럭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대위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오면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를 찾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니겠지.)
대위는 대답이 없자 군번을 부르기 시작했다. 대위는 나를 찾으려고 보병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 외쳤다. 나는 그제야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일어나면서 대답했다.
“옛! 제가 김금산입니다.”
“이 새끼! 있으면서도 왜 대답을 안해?”
대위가 닷자곳자 귀뺨을 힘껏 후려쳤다. 졸지에 뺨을 맞은 나는 정신이 얼얼했다.
“보급병이 보병 속에 들어 있으면 어떻게 하나? 따라와!”
나는 나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급 병과는 특과 중의 특과인데 통신이라면 모를까 내가 보급 병과라는 것은 코미디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위가 얼굴도 모르는 쫄병에게 장난을 칠 까닭도 없었다.
나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대위를 따라서 해병학교로 갔다. 해병학교는 보급병을 교육시키는 곳으로 동기생 29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지 않아서 입소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영문을 알지 못하고 동기들과 함께 해병학교에 입소했다.
(분명히 잘못된 거야. 나중에 잘못되었다고 하겠지?)
나는 찜찜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기적이라도 일어났다는 것인가?)
해병학교는 공부하는 곳으로 훈련도 없고 순검도 까다롭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동기들이 왜 보급 병과를 선망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훈련소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편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해병학교는 오 수병이 교육생 30명을 통솔했다. 훈련소로 치면 오 수병은 조교인 셈이었다. 오 수병은 반장을 뽑고 나서 나를 서무로 뽑았다.
서무는 기관병 밑에서 행정업무를 돕는 사람으로 교육을 받거나 잠을 잘 때 외에는 기간병과 함께 생활하고 또 불침번을 서지 않기 때문에 동기들은 모두 반장보다 서무가 되려고 했다.
그런 서무를 내가 차지했으니 나는 연속해서 이어지는 행운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보급 병과만 해도 감지덕지한 판에 30대 1의 경쟁을 물리치고 서무가 되었으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럴 수가 없어. 모두가 미쳐버린 거야.)
내가 오 수병의 심부름으로 대대본부에 갔다가 이 하사를 만났다. 이 하사는 대대본부의 PX장이었다. 이 하사가 나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왼쪽의 손 등이 동상으로 뼈가 내비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하사가 나의 손을 만지면서 말했다.
“이런 손으로 훈련을 받다니……, 너는 독한 놈이다.”
이 하사는 나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바쁘게 나갔다. 그가 약과 붕대를 가지고 왔다. 대대 의무대에 다녀 온 것이었다. 그는 나의 손을 소독하고 나서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아 주었다.
“내일부터 날마다 나한테 온다! 알았나?”
내가 이 하사에게 경례를 붙였다.
“넷! 이병 김금산! 알았습니다.”
오 수병에게 이 하사 얘기를 하자 오 수병이 나에게 말했다.
“너는 억세게 운이 좋은 놈이야.”
“?………….”
“네가 어떻게 보급병과를 받게 되었는지 알고 있나?”
“모릅니다.”
“그렇겠지. 나도 오늘 들었으니까…….”
오 수병이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병과분류를 담당한 최 중령은 나의 병과를 통신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개철수는 특과를 청탁 받은 소대원이 보병이 되자 나의 서류를 변조하여 보병으로 바꾸고, 돈을 받은 소대원을 통신으로 고치게 되었다.
빽도 없고 인사기록카드를 구경할 수도, 따질 수도 없는 훈병들을 대상으로 개철수는 자기 마음대로 병과를 뜯어 고쳤고, 그런 일을 관행처럼 행사해 왔다는 것이었다. 나의 경우도 문제가 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는데 엉뚱한 데서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최 중령이 보급병을 뽑아야 할 인원은 30명이었는데 착오로 29명을 선발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해병학교에 입소할 인원을 파악하다가 한 명이 부족하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보고를 받은 최 중령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훈병들이 임지로 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 중령은 훈병들의 인사기록카드를 다급하게 뒤적이기 시작했다. 부족한 1명을 당장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인사기록카드를 창황하게 넘기던 최 중령의 시선이 나의 카드에서 멈췄다. 그가 통신으로 낙점했던 통신병과가 지워져 보병으로 쓰여져 있는 황당한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수가…….”
최 중령은 대노하여 나의 병과를 보급으로 정정하게 되었고 명령을 받고 대위가 다급하게 나를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건으로 훈련소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소대장과 조교들이 단체로 기합을 받고, 개철수는 명예소대 표창이 취소되고 군법에 회부되어 1계급이 강등되었다. 나의 병과 문제로 훈련소가 온통 쑥대밭이 되었고 그 사건으로 훈련소의 부정과 비리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와 함께 훈련을 받은 훈병은 600명이어서 최 중령이 다른 소대의 카드를 뒤적거렸다면 개철수의 비리가 발견될 까닭이 없었다.
최 중령이 손에 짚히는 대로 뒤졌던 것이 바로 내가 소속한 14소대의 인사기록카드였으니 나로서는 행운의 신이 개입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나를 보호하는 행운의 신은 나를 보급 병과를 만들어 주기 위해 개철수를 희생 양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오 수병이 말했다.
“너한테는 기적이 따라 다니는 것 같다.”
나는 알 수 없는 혼돈에 빠졌다.
“제가 서무가 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 수병이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기관병은 보급병이 해병학교에 입소할 때가 되면 인사청탁을 수도 없이 받는다고 했다. 오 수병은 해병학교로 발령을 받아 이번에 처음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도 수도 없이 부탁을 받고 돈 유혹까지 받았다고 한다.
오 수병은 강직한 사람이어서 모두 뿌리치고 인사기록카드를 뒤적이다가 내가 그의 고등학교 1년 후배라는 것을 발견하여 나를 서무로 발탁했다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 수병에게 경례를 올렸다.
이 하사는 자비로 시중에서 약을 사다가 나의 손을 치료해 주었다.
“나한테 하루만 늦게 왔어도 너는 손가락을 잘라야 했을 것이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날씨가 풀리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해동까지 기다린다고? 지금이 2월 초순인데?”
진해의 날씨는 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이 하사의 치료 덕분에 동상이 낫기 시작하여 2주가 지나자 손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제가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너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남을 도와주면 돼!”
“이 하사님의 말씀을 제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은인인 이 하사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거수경례를 붙였다.
해병학교는 장교 후보생들을 훈련 시키고 있었다.
나는 장교들이 받는 훈련을 종종 구경하곤 했다. 그들이 받는 훈련은 우리가 받았던 훈련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혹독했다. 그들은 빳다를 맞을 때 신음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사병들은 엄살을 피기도 하고 “잘하겠습니다.”를 연발하면 기합이 누그러지기도 했지만 그들은 장교가 된다는 사실과 사병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자존심에 먹칠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PX출입이 금지되었고 훈련소 밥을 규정대로 먹으면서 사병보다 3배나 더 긴 훈련을 견디고 있었다. 밤마다 그들이 맞는 빳다와 기합을 받는 소리가 밤 하늘을 진동시켰다.
내가 밤 늦은 시간에 장교들의 훈련소를 지나갈 때였다. 보초를 서고 있던 장교 후보생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먹을 것이 있으면 좀 줄래?”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 그가 돌아섰다.
“미안하다. 너무 배가 고파서 그만…….”
그는 장교의 체면을 잃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는지 씩씩하게 돌아갔다. 나는 사라져가는 그의 뒷 모습을 향해서 중얼거렸다.
(장하다. 대한의 남아여! 다시는 자존심을 굽히지도 말고 눈물도 보이지 말아라. 그대들이 장교로 있는 한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이 되리라.)
나는 해병학교에서도 동기들의 꿀꺽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훈련도 없고 기합도 없었지만 훈련소에서 배어 있었던 타성이 남아 있어서 교육생들은 항상 배고픔을 느꼈다.
동기들이 밤마다 먹어대는 것은 훈련소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고 그때마다 나는 수료식 날 먹지 못했던 호떡을 생각하면서 잠을 자야 했다.
4주간의 교육이 끝나고 수료식 날이 되었다. 외출이 허락되었다. 교육생 27명이 외출을 나가는 바람에 3명이 30명 밥을 먹게 되었다. 1인당 10명분 밥이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얼마나 배 부르게 먹고 싶었던 밥이었던가?
나는 실컷 먹어서 맺혀 있었던 한과 원을 모두 풀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허리띠를 풀고 먹기 시작했다. 함께 밥을 먹던 2명은 5인분 밥을 먹고 나가 떨어졌지만 나는 11인분 밥을 먹어 치웠다.
그런데도 배가 부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 먹으려고 했지만 밥이 목구멍까지 차 있어서 더 이상 밀어넣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배가 부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 먹고 싶은 생각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먹지 못한 밥을 아깝다고 생각하면서 짬빵통에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허리를 구부리기만 하면 목구멍까지 차 있는 밥이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화제는 고사하고 소금도 먹지 못하고 맨 몸으로 소화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해병학교는 기합이 빠져서 돈이 있는 교육생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불침번을 대신 서 줄 교육생을 찾았고, 배가 고픈 교육생은 불침번을 서 준 대가로 돈을 받기도 하여 한 사람당 500원이라는 공정금액까지 정해져 있었다.
교육생들은 나에게 불침번을 서 달라고 청하기도 하고, 심지어 불침번 명단에서 빼주면 1만원을 주겠다고 유혹도 했지만 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성격이 고지식한 나로서는 비굴할 수도 없고 비리와 야합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날 만은 도리가 없었다. 나는 밤을 새우게 된 것이 아까워서 불침번을 대신 서 주었고 그 대가로 4명으로부터 500원씩 2,000원, 지금 돈으로 치면 8만원을 벌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많은 밥을 먹었지만 설사는 고사하고 아프지도 않고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이튿날 아침에는 1인분 밥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우기까지 했다.
나는 입대하기 전에는 2끼의 식사를 3끼로 나누어 먹을 정도로 식사량이 많지 않았다. 체격도 왜소한 내가 양도 많은 군대 밥을 11인분이나 먹고서도 거뜬하게 소화시켰으니 어떤 누가 나의 거식증을 믿으려고 할 것인가?
교육수료가 임박하자 동기들은 배치될 부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군생활을 편하게 하려면 병력이 적은 곳에 배치가 되어야 하는데 해병대에서 병력이 가장 적은 부대는 도서부대이고 도서부대는 백령도에 있었다.
백령도는 군 작전상 최전방으로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을 때도 백령도를 점령하지 못한 전략의 요충지였다. 백령도는 해병대의 자존심이었다.
백령도는 육해공군이 모두 주둔하고 있는데 해병대는 1개 대대가 주둔하여 3개 중대는 백령도에 주둔하고, 1개 중대는 연평도에서 주둔하고 있었다.
도서부대는 휴가가 많고 길어서 동기들은 모두 도서부대에 배치 받으려고 돈과 빽을 동원하여 눈티나는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는 부대 배치에 관심이 없었다. 관심을 가져 봤자 소용이 없기도 했지만 어디에서 근무하건 2년을 채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30명 중에서 8명이 도서부대로 차출되었는데 그 8명 중에 내가 포함되었다. 동기들은 모두 나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동기 중에는 원 스타가 나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귓속말로 말하는 자도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내가 누구나 부러워하는 도서부대에 배치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 수병도 내가 도서부대로 배치된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 계속되는 기적과 행운……….
어떻게 나에게 기적과 행운이 계속될 수 있었을까?
나는 행운의 신에게 감사할 겨를도 없이 곤뽕을 어깨에 걸머메고 8명과 함께 경화역으로 갔다. 도서부대로 가기 위해서는 서울을 경유하여 인천으로 가서 백령도로 가는 연락선을 타야 했다.
출처 : Daum 해사사 카페, http://cafe.daum.net/rokmarinecorps/6bOu/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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