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일기/해병197기 김금산

[해병대의 기적] 7. 폭식증과의 전쟁

머린코341(mc341) 2015. 1. 6. 03:56

[해병대의 기적] 7. 폭식증과의 전쟁

 

훈병들이 훈련소 밖으로 나온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구보훈련을 받으려고 나오고, 냇가에서 세탁하려고 세탁물을 배낭에 매고 단체로 나오기도 했다.

그 때마다 나의 눈에 비친 바깥 세상은 모두 신기하고, 지나가는 여자들이 모두 환상으로 보이곤 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의 의식과 생활습관이 180도로 바뀌었고, 훈련이 끝날 즈음 나는 귀신을 잡는다는 해병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길들지 않은 맹수가 되어 있었다. 훈련소에서 받았던 4주간의 훈련과 기합은 악밖에 남지 않게 했고

나에게서 생겨난 악은 나의 내면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도깨비에게 잠을 깨우게 했다.

 

그것은 두 얼굴의 사나이에서 박사가 분노를 일으킬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튕겨져 나오는 헐크와 같은 것이었다.

 

훈련소에서 외출이 허락되었다면 훈병들은 모두 사고를 쳤을 것이다.

훈병들은 모두 굶주린 맹수들이 되어 세상 사람들을 상대로 이유 없는 반항을 벌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훈련소는 훈병들에게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고, 실무교육을 받는 동안에 훈병들은 분노를 삭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나도 해병학교에서 받았던 4주간의 교육으로 어느 정도 헐크를 잠재울 수 있었다.

 

나와 동기들이 서울행 열차에 올라탔다. 열차 끝에 매달려 있는 2개의 군용칸은 귀대하고 휴가를 가는 장병들로 가득차 있었다. 육군을 보자 나의 무의식에서 잠자고 있었던 헐크가 갑자기 눈을 떴다.

(땅개들은 우리가 어떻게 훈련을 받았는지 알 까닭이 없어. 놈들은 1식3찬을 먹고 가벼운 칼빈총으로 훈련을 받았겠지?)

 

나는 훈련소에서 1식1찬을 먹고, 돼지가 장화를 신고 지나간 고기국을 먹게 된 것은 해병대에 비리와 부패가 만연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폭발시키지 못하고 꾹꾹 누르고 있었던 분노가 이유도 없이 터져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동기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장갑 속에 들어 있는 면장갑을 빼고 피장갑을 손에 끼었다.

나도 동상자국으로 보기 흉하게 파여 있는 손에 피잡갑을 끼었다.

 

작대기 1개 짜리 해병 8명이 군용칸에 들어섰다.

빨간 명찰이 군용칸에 들어서자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육군 장교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피했다.

그들은 모두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장교들의 표정을 묵살했다.

군용칸에는 해군과 공군도 있었지만 그들도 귀기가 흐르는 해병들의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차창 밖을 내다보는 일에 열중했다.

그 때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희희덕거리는 육군들이 있었다.

해병이 일제히 그쪽으로 향했다.

 

“모두 일어나!”

 

마주 앉아 있던 육군 6명이 빨간 명찰을 보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희만 앉아서 갈 거야? 교대로 앉아야 할 것 아니야?”

 

그들은 군소리도 없이 자리를 내 주었다. 해병 한 명이 뒷자리에 대고 소리쳤다.

 

“우리가 8명인데 어떻게 6명이 모두 앉을 수 있나? 너희들은 예의도 모르냐?”

 

뒷자리에 앉아 있던 6명이 모두 일어나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 중의 한 명이 아니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해병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왜? 꼽나?”

 

지목을 받은 육군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그는 병장계급을 달았고 체격이 건장했다. 해병의 주먹이 명치를 파고 들었다.

병장이 ‘아이쿠’ 하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이 새끼가 엄살을 부리기는……, 똑바로 서!”

 

병장이 똑바로 섰다.

 

“입 다물어!”

 

주먹이 다시 병장의 아구로 날아갔다. 병장이 뒷걸음을 치면서 두 손으로 턱을 감쌌다.

 

“이 새끼가……, 똑바로 서지 못해!”

 

병장이 손을 내리자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열!”

 

“차!”

 

“열!”

 

“차!”

 

병장은 식은 땀을 흘리며 구령에 맞춰 열중쉬어와 차려를 계속했다.

다른 칸에 있던 육군 헌병이 소란 소리를 듣고 들어오다가 훈련을 마치고 일선으로 배치중인 신병들이라는 것을 알고 뒤돌아 섰다.

해병을 건들여 봤자 골치가 아플 뿐이기 때문이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해병들이 달려들어 헌병을 패기도 하고 해병을 붙잡아 해병대 헌병에게 넘겨 주어도 해병대 헌병은 “앞으로 조심해!”라고 주의를 주고 놓아주기 일쑤였다.

 

해병대는 사병들의 사기를 죽이는 일을 회피했다.

육군이 숫자를 믿고 해병에게 대들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 해병대는 “땅개에게 당했다.”는 소식을 한 사람에게 알리기만 하면 해병은 모두 자기 일로 생각하고 열차에 탄 해병 모두에게 알려서 패싸움에 참여했다.

 

육군이 숫자가 많지만 단결력이 없어서 해병을 건드리는 것은 벌집을 쑤시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해병은 두 세명만 있어도 으례 군용칸을 점령했고, 해병대는 그것을 전통으로 생각했다.

해병 8명은 육군으로부터 술을 얻어 먹기도 하고 곤조가도 부르면서 잠재의식에 쌓였던 분노를 식히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도착하자 인솔하는 박 수병이 18시까지 인천파견대에 도착할 것을 명령하고 8명에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5시간의 여유가 있게 되어 나는 집에 들릴 생각을 했다.

내가 버스에 올라타자 안내양은 나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질려서 차비를 받을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나는 길들지 않은 야수였다. 내가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맨발로 달려 나왔다.

나는 밥을 먹어서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실컷 먹어야 한다면서 급하게 밥을 지어 밥상을 차렸다.

나는 씹을 것도 없이 머슴 밥처럼 수북하게 담은 하얀 쌀밥 2그릇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다.

 

“쯧쯧, 얼마나 굶었으면…….”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고 아버지는 나의 밥 먹는 모습을 외면했다.

나는 10그릇도 더 먹을 수 있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걱정할 것이 염려가 되어 그만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숟가락을 내려놓는 나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내가 시간에 맞추어 인천파견대에 도착했다.

인천파견대는 도서부대 전출입과 휴가 장병들의 대기소였다.

이 곳에서 나의 동기들은 연평도로 배치 받기 위한 암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8명 중에서 2명이 연평중대로 편입되기 때문이었다.

 

동기들은 아는 사람에게 연락하여 파견대장에게 청탁하기도 하고 돈을 건네기도 했다. 파견대장이 화를 냈다.

 

“쫄병 새끼들이 기합이 빠져서 편한 곳만 찾는단 말이야.”

 

파견대장은 군번이 제일 빠른 자와 제일 늦은 자를 손 들게 했다.

나는 말단 중대여서 군번이 제일 늦었다.

군번이 빠른 기 일병과 내가 손을 들자 파견대장이 말했다.

 

“너희 둘이 연평도로 간다.”

 

나에게는 알 수 없는 기적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여 600명 동기들은 모두 연평중대에 편입되는 2명이 되기를 원했고,

그처럼 치열한 경쟁을 돈도 빽도 없는 내가, 그것도 보병에서 보급으로 바꾸면서까지 연평도로 배치 받게 되었으니 그것은 기적의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나에게 그런 기적이 이루어지게 되었을까? 과연 우연이었을까?

동기 6명이 백령도로 먼저 떠나고 나와 기 일병은 파견대에서 4일 동안 대기했다.

인천과 연평도를 왕래하는 연락선 황룡호는 작고 낡아서 바람이 불고 해무(海霧)가 끼면 출항하지 않았다.

나와 기 일병은 황룡호를 10시간이나 타고 밤 늦게 연평도에 도착했다.

나와 기 일병이 주계로 인도되었다.

 

주계의 김 상병은 쫄병에게 밥을 퍼주는 일이 귀찮아서 배식하고 남았던 밥과 국을 바케스째 내놓았다.

 

“고생을 했으니 실컷 먹어라.”

 

나와 기 일병이 숟가락을 들고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기 일병은 먹다가 말았지만 나는 계속 먹었다.

나의 숟가락이 바케스 밑바닥을 긁는 소리를 내자 김 상병이 깜짝 놀라 바케스를 빼앗았다.

 

“쫄병 새끼가 짜구가 나겠어.”

 

나는 바케스를 빼앗는 김 상병이 섭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튿 날 주계반장 김 중사가 나와 기 일병을 중대장에게 인솔했다.

기 일병이 선임이어서 2명을 대표하여 중대장에게 보고했다.

 

“보고합니다. 기우남 외 1명은 연평중대 배치명령을 받고 도착했기에 보고합니다.”

 

“좋아!”

 

중대장이 인사기록카드를 뒤적이며 물었다.

 

“너희들 병과가 모두 보급인가?”

 

“그렇습니닷!”

 

중대장이 김 중사에게 물었다.

 

“우리 중대에 보급병과가 있나?”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배치하는 것이 좋겠는가?”

 

“주계가 원래 보급병과 부서입니다.

그 동안 보급병과가 없어서 보병으로 채웠는데 이번에 보충이 되었으니 주계로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구만. 김 중사가 잘 돌봐 주도록 하게.”

 

“알았습니다.”

 

나와 기 일병이 주계로 배속되었다.

 

“보고합니다. 기우남 외 1명은 주계로 배속되었기에 보고합니다.”

 

고참들이 기 일병과 나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김 상병과 박 상병이 가장 기뻐했다.

그들은 주계에서 제일 쫄병이었는데 그들 밑에 새로운 쫄병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최고 고참 박 병장이 말했다.

 

“야들에게 무엇을 맡긴다?”

 

다음 고참 윤 병장이 말했다.

 

“화부(火夫)와 기름병을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화부는 중대병력의 취사용 밥솥과 국솥을 기름으로 불을 때는 일이고, 기름병은 각 부서에 기름을 나누어주는 일이었다.

 

“김 상병과 박 상병이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으니 이제는 고생을 면할 때가 되었지.”

 

김 상병과 박 상병이 박 병장에게 경례했다.

 

“감사합니다. 박 수병님!”

 

“그런데 누구를 화부로 시킨다?”

 

박 병장이 기 일병과 나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다가 기 일병을 골랐다. 기 일병이 화부가 되고 내가 기름병이 되었다.

 

“오늘부터 인계해.”

 

“알았습니다.”

 

기 일병과 나는 기름때를 묻히면서 날마다 기름과 씨름을 해야 했다. 기 일병은 항상 불만이었다.

 

“니기미 씨팔! 보급 병과 받으려고 돈 주고 빽 썼더니 화부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나?”

 

내가 기 일병을 달랬다.

 

“우리가 주계에서 근무하게 되었으니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잖아?

그리고 훈련도 덜 받게 되고 말이야……. 어디 그뿐인가?

우리가 쌀밥을 구경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우리 같은 쫄병에게 이만한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복으로 생각해야지.”

 

연평중대의 밥은 쌀과 보리가 반반이어서 훈련소 밥보다는 훨씬 좋았지만 주계 고참들은 흰 밥을 먹는 것이 전통이었다.

 

기일병과 나는 쫄병이어서 어쩌다가 한번씩 쌀밥을 먹게 되었지만 보리밥이라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되어

원을 한도 없이 풀 수 있게 되었다.

 

기 일병은 2-3인분 밥을 먹다가 1주일이 지나자 1인분 밥으로 줄었으나

나는 매 끼마다 4-5인분 밥을 1개월 동안이나 계속해서 먹었다.

그런데도 배탈과 설사는 고사하고 살이 찌지도 않았다.

 

1개월이 되자 아랫 배가 약간 나왔을 뿐, 밥을 훨씬 덜 먹는 기 일병이 나보다 훨씬 배가 더 나왔다.

연평도에 전입한지 1개월이 되었을 때였다. 중대에 비상이 걸렸다.

중대 전체가 완전무장하고 연병장에 집합하라는 나팔소리와 함께 주계도 2명을 차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박 병장이 투덜거렸다.

 

“중대가 모두 밥을 굶겠다는 거야 뭐야? 주계도 차출을 하니 말이야.”

 

주계는 중대 식사를 담당하고 있어서 훈련이나 교육이 있을 때면 으레 면제가 되었다.

 

주계에서 한 명이라도 빠지면 식사를 공급하는 일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윤 병장이 말했다.

 

“중대 본부에서 주계에 신병 2명이 배속된 것을 알고 있나 봅니다. 신병들을 내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와 기 일병이 완전무장하고 집합했다.

 

신삥 소위 1소대장의 인솔로 구보가 시작되었다.

중대병력이 선착장까지 내려갔다가 산 중턱에 있는 중대로 돌아오려고 언덕길을 올라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에게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한 발짝을 내딛을 때마다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나는 훈련소에서 구보를 수도 없이 많이 했다. 수료 직전에는 16Km 완전무장 구보가 있었다.

그 구보는 소대원 절반이 낙오했을 정도로 혹독한 훈련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낙오하지 않았다.

손이 얼어서 M1 소총을 손바닥으로 받치고 가슴에 끌어안고 뛰면서도 구보를 끝까지 견뎌낸 것이 나였다.

(고작 왕복 4km밖에 되지 않는데?)

 

내가 악을 쓰며 버텼지만 소용이 없었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점점 더 무거워져서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나를 지배하는 신이 뛰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만 땅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다.

나는 중대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신삥소위에게 빳다 20대를 맞았다.

 

이 사건으로 나는 중대에서 체력이 약한 쫄병으로 알려지게 되어 중대에서 실시하는 훈련과 사역에서 해방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기합이 빠진 것을 폭식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폭식증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밥을 더 먹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지만 1인분을 먹기만 하면 숟가락을 놓기 시작했다.

허전함과 섭섭함이 교차하고 밥을 더 먹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과감하게 숟가락을 놓곤 했다.

 

그렇게 1개월이 지나자 나의 폭식증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1개월이 더 지나자 정상 식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의 의지가 내면에서 충동거리고 있었던 본능을 이겨냈던 것이다.

 

 

출처 : Daum 해사사 카페, http://cafe.daum.net/rokmarinecorps/6bOu/1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