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 1진의 기억 -(15) - 소대장(청룡 장교 최초의 희생) 전사.
일주일이면 투이호아 작전을 끝내고 동바틴으로 온다던 본대가 돌아 오기는 커녕 많은 희생을 치루면서 조국에서 지원병력이 미쳐 오지 못해 행정병까지 투이호아 전쟁 터로 들어와 들은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
첫 전투에서 소대장의 전사였습니다.
청룡1호 작전은 우리가 월남 온 이래 처음으로 제대로 베트콩과 싸우는 전투였는데 우리 나름의 정보도 없었고 단지 미군이 주는 한정된 정보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으며,
또한 전투 경험이 너무 없었던 데 반해 베트콩에게는 사전에 우리의 움직임이 너무 다 드러나 우리의 작전에 대비하여 완벽하게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싶었습니다.
판랑에서의 첫 전투가 의미를 두기에는 너무 미약해서 베트콩의 저항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투이호아 전투에서 좀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사실은 전혀 예상 밖의 대규모 저항에 부닥친 우리는 처음 경험하게 되는 대규모 교전이라 더더욱 베트콩의 매복이 정확하게 어느 지점인 줄도 모르고 막연하게 소탕전으로 진격했는데 예상 밖으로 강력한 반격이 날라왔던 겁니다.
전투 경험이 없으면 대원들은 물론 소대장과 중대장까지도 엄청 당황하게 됩니다,
여간 침착하지 않으면 나중에 서로간 보기도 민망스러울 행동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두 번 경험하면서 상황판단에 점차 익숙해져 적절한 대처 요령을 체득해 가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전투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6중대 2소대의 경우에도, 바위 산 아래 턱에 이르자 강력한 반격에 부딪쳐 전진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쪽으로 응사가 빗발쳐 오기 때문에 뒤에서 아무리 “앞으로!” 하고 소리 질러도 아무도 못 나가는 겁니다.
그러나 좌우 부대가 일정한 속도로 진격하기 때문에 반격이 없거나 적은 부대는 계속 밀고 나가는데 한 쪽 만 못 나가면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보조를 맞춰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멀리 뒤에서 망원경으로 보고 있던 대대 및 여단 작전 본부에서는 연속 진격을 다그치는 명령이 험악하게 무전기를 때립니다.
어쩔 수 없이 소대장이 앞으로 나서 앞장 서서 소대원들을 “따라 오라”고 소리 지르며 앞으로 나서지 않으면 한 발짝도 전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흔히 소대장들이 하는 이야기로, 전쟁 터에 나가면 포탄이나 총탄이 “쏘위 쏘위 쏘위” 하면서 날아 온다는 것입니다.
적의 입장에서도 당연히 누구보다 지휘자를 노리겠지만, 총탄이 쏟아지면 소대장이 앞에 나서서 “따라 오라!”고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아 갈 생각을 않는다는 거지요.
특히 전투 경험이 없을 때에는 더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투 경험이 쌓이면 대원들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제 소대장이 얼마나 고맙고 귀중한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해병 전첩비 앞 - 투이호아 시내)
이 날 염 상병(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이 소속된 분대가 앞으로 나아가자 가까운 거리에서 응사가 날아와 염 상병 뒤에 따라 오던 병사가 두 명이나 연속 쓰러지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벼가 허리 높이 만큼 자라 있는 논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 몸을 숨기면서 황급히 논 바닥을 파 내려가 얼굴만 물 위에 내놓고 있었습니다.
뒤에 따라오던 2 소대는 당연히 소대장이 앞장 설 수밖에 없었는데, 논 바닥에 숨은 염 상병이 앞을 바라보니 겨우 10여 미터 앞에 있는 바위 뒤에서 총을 든 베트콩 한 놈이 목을 쓰윽 빼올려 내려다 보고는 바위 뒤로 몸을 숨겨 조준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윽고 이 놈이 조준 사격을 했는데 10여 미터 앞에서 소대장을 향해 발사를 한 것이었습니다.
워낙 가까운 거리라 이 총탄은 소대장의 철모를 뚫고 그대로 명중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대장이 쓰러지자 소대는 당황해 어쩔 줄 모르게 되고, 곧 철수 명령을 받고 서둘러 철수해 갔습니다.
그러나 논바닥 가운데 있던 염 상병은 꼼짝 할 수가 없었습니다.
베트콩이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을 봤기 때문에 움직였다가는 자신도 총탄 세례를 면치 못할 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캄캄해 질 때까지 13 시간 너머 논바닥에 숨어 있다가 캄캄해진 다음에야 엉금엉금 논바닥에서 기어 나와 본대를 찾아 나섰는데 어디 있는지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리 저리 헤매다가 밤 9시 경에야 어찌 어찌 3 대대 병력을 만나게 되었고 그 다음에 본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본대에 도착하자마자 염 상병은 그 자리에 기절해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이 전투가 끝난 뒤 염 상병은 충무 무공 훈장을 받고 7월에 제 1진으로 귀국할 때까지 붕타우 휴양소에서 경비병으로 근무하다가 귀국했습니다.)
출처 : 파월 제1진 청룡부대 2대대 해병158기 이장원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아! 청룡이여 제1권 캄란에서 호이안까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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