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 1진의 기억 -(13) - 첫 전투.
조국을 떠난지 2달.
캄란만 동바틴 해변 안전지대에서 월남전 적응훈련을 받으며
언제 실전을 치룰지 늘 긴장하며 지내던 11월.
주월 미군 사령부에서 우리에게 가벼운 실전 경험의 작전을 주어
첫 전투 명령이 떨어졌읍니다.
사이공 쪽으로 내려가는 중간에 “판랑” 이란 도시가 있습니다.
이 곳의 까투산이라는 고지에 베트콩이 있다는 정보를 주면서 소탕하라는 작전입니다.
이 고지는 1954년 프랑스군이 “디엔비엔푸”에서
호치민의 독립군에 의해 대패하고 월남 식민지를 포기하고 돌아가던
그 전쟁 때에 프랑스 군 8개 대대가 대패한 고지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까투산 전투에는 2대대만 투입되었는데
내가 마침 2대대 소속이라 이 전투에 참가했던 것입니다.
2대대가 판랑으로 이동하고 드디어 첫 전투를 해 보게 되었습니다.
올려다 보이는 까투산은 크고 작은 바위로 뒤덮여
프랑스 군대가 대패할 만큼 요새로 보였습니다.
최초의 전투 작전이라 오윤진 대대장 이하 전 장병이
과연 어떤 전투가 전개될까 전전긍긍하며
산 아래로부터 긴장된 가운데 신중하게 훈련한대로 고지를 향해 진격했습니다.
(판랑시 북동쪽 저멀리 까투산이 보인다 - 후 청룡 수기 자료))
출전에 앞서 오윤진 대대장은
-- 지금까지 단련된 대한 해병대의 위상을 세계에 알릴 첫 전투에
-- 여러분과 참전하게된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 는 요지의 출전 독려사를 하는듯 했으나
솔직히 실탄과 수류탄등 연습용이 아닌 실전 무기를 받아든
전쟁터의 쫄병에 머리속은 정리와 질서를 잊고 대열이 움직이는 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였음을 부인하지 않겠읍니다.
실전의 대대병력은 배속 부대까지 합쳐 인원이 많기도 하려니와
긴장 속에서 소대장과 선임하사관도 보이질 않고 분대장의 신호에 따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낮은 포복과 엄폐 은폐물을 잘도 찾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며 전진을 하였읍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
나중에 다른 전우들의 영웅담은 밤새는줄 몰랐지만
내가 속한 분대는 베트콩 구경도 못하고
중간에 절이 한곳에 있는데 승려만 만났는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무전을 치는등
첫 경험은 그렇게 우려보다 쉽게 끝났읍니다.
(천자봉의 후청룡 수기의 자료 사진)
-- 판랑 동북쪽 6키로 까투산(319 M)은
-- 프랑스의 대 부대가 8차례나 대 공격을 하였으나 실패 하였고
-- 월남군의 수차례 공격도 실패했던 험한 돌산으로
-- 18년 동안이나 베트콩의 요새였던 까투산은 해병대에 의해 간단히 탈환되었다 -- 는 기록을 나중에 보았읍니다.
주월 미군사령부와 월남군이 주는 정보에 의거 작전지역을 베트콩 점령 비율로
“적화 80%” 또는 50%, 30% 등등으로 표시했는데
이런 전투 작전을 통하여 그 정보의 정확도를 확인해 보는 과정일 수도 있는데
이곳은 아마도 정보의 예상보다는 적화 비율이 좀 낮았던 곳이 아니었나 생각되었습니다.
(청룡 전우님들과 후청룡들께서 까투산을 소개한 뒤로 -
까투산 앞을 지나는 한인들이 잠시 머문다하니 고맙습니다)
첫 전투를 치룬 날
그밤은 잠 못 이루는 밤이었읍니다.
슬그머니 - 조국 고향쪽을 향해
첫 전투에서 죽지않고 살았으며 꼭 살아서 가겠다고 다짐을 해 보는 밤이었읍니다.
한국 해병대를 시험해본 - 주월 미군사령부는
드디어 - 시련의 땅 - 투이호아 평정 작전을 던져주었읍니다.
출처 : 파월 제1진 청룡부대 2대대 해병158기 이장원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아! 청룡이여 제1권 캄란에서 호이안까지' 중에서
'★월남전 참전수기 > 해병158기 이장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룡 1진의 기억 -(15) - 소대장(청룡 장교 최초의 희생) 전사. (0) | 2015.01.12 |
---|---|
청룡 1진의 기억 -(14) - 아 !! 투이호아 - 투이호아 여 !!!!! (0) | 2015.01.12 |
청룡 1진의 기억 -(12) - 월남 상륙. (0) | 2015.01.07 |
청룡 1진의 기억 -(11) - 월남으로 가는 거대한 수송선. (0) | 2015.01.07 |
청룡 1진의 기억 -(10) - 출전 명령 !!!!! (0) | 2015.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