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임관 비화와 전역식
(대위를 중위로 강등시킨 전역식)
해병학교 35기생 들의 2003년 7월 아다지오 모임에서 해병학교 35기 전역식 이야기가 나왔다.
해병대 사령부가 대위를 달고 중대장직을 1년 이상씩 하고 전역을 하는 해병학교 35기생 모두를 대위를 강등시켜 중위로 전역을 시킨 것이다. 임시대위라는 명분이다.
군인사법에는 임시 대위라도 1년 동안 사고 없이 업무를 수행하면 임시대위가 정식대위가 된다고 기재되어 있다. 사령부에서는 1년이 아니고 3년이라고 한다.
전역식에 나온 동기생들이 거세게 항의했음은 물론이다.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전역식도 못하고 전역 통지서에 중위라고 기재된 종잇장 하나들고 해병대 사령부 정문을 원망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나올 수밖에 없었다.
1971년 1월31일부터 2월28일 3월31일 4월30일이 전역한 해병학교 35기생들이 대위에서 중위로 강등되어 나온날이다. 해병학교 35기생은 지금까지 공식 호칭이 예비역 중위로 호칭되며 일생동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동기생은 월남전 참전 용사들이라 전투기간 1년은 평시 3년과 동일하게 군인사법에 인정되어 있는데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해병학교 35기생은 1966년 5월 소위로 임관되어 1969년 3월1일부로(보급병과는 1월1일) 중위에서 임시대위로 승급하였다.
이 당시가 35기생들이 월남 참전 1년을 마치고 귀국 하였거나 월남에서 전투를 수행중인 시절 이었다.
소위에서 중위 진급은 1967년 4월 15일(도서부대는 2월1일) 임시중위로 진급하였다.
현재는 소위에서 중위진급 년한이 1년이지만 그 당시에는 2년만에 중위로 진급하였다.
중위에서 대위진급은 3년이다.
월남 참전용사들에게 공로를 치하하여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은 못시켜 줄망정 대위를 중위로 강등시켜 전역을 시키다니 사령부의 몰상식한 처사는 해병대 용사들에게 해병대 사랑은커녕 증오를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타군에서 이런 상식이하의 행위를 하는 해병대 사령부를 보면 혀를 차고 기가 막히다고 할 것이다.
퇴직금은 안주더라도 계급은 대위로 수정하여 달라고 하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기생들이 사령부에 사법적인 제소를 한 적은 없다.
45년이 지난 중위강등 문제를 제기한 것은 동기생들이 이미 70이 다 넘었고 인생 마지막에 우리의 명예는 찾고 죽어야 한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아 실행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
내가 자전적인 “생각나는 대로 적은 나의 인생기” 라는 책에 ‘장교임관 비화와 전역식’ 이라는 글을 썼는데 이글을 후배가 보고 그렇게 억울할 수가 있느냐며 이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며 국가 권익위원회에 가 보란다.
요새는 개인의 억울한 문제를 풀어주기 위하여 국민의 편에서 많은 문제를 해결하여 준다고 한다.
또 다른 후배는 행정안전부의 민원해결실로 가보라고 한다.
해병대 사령부와 법적인 다툼은 모군과 논쟁을 불러 일으켜 감정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니 행정안전부로 가면 사법적인 절차 없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이 있을지 모르니 제반 서류를 다 갖추어 행정안전부를 찾아가 보란다.
어려울 수도 있으나 명확한 사건이니 쉽게 해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해병대 사령부의 실수가 명확하다는 뜻이다.
동기생들이 모두 힘을 합하여 본래의 자기 계급을 찾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국립묘지에 대위로 중대장을 했던 동기생 묘비에 중위로 새겨져 있는 묘비를 보면 피눈물이 흐르고 피가 거꾸로 솟는다.
우리 동기생 카페에 자유게시판에 게제하고 문집 란에 또 게제를 했는데 문집 편에서는 사령부를 꼬집었다고 제외되었다.
이에 카페 자유 게시판에 있는 글이며, 생각나는 대로 적은 나의 인생기라는 책에 게재되어 있는 글을 다시 옮겨본다.
장교임관 비화와 전역식
장교임관 비화
복무기한 3년
해병대 장교는 해간1기부터 시작하지만 실질적으로 30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귀신 잡는 해병의 신화를 창조한 선배 장교를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해간 30기를 모집 할 때부터 자격이 최고학부를 나온 정예장교를 만들기 위한 초석을 놓았기 때문이다.
예비역 해병장교 모임인 청룡회도 이런 맥락에서 청룡회 회원 자격을 30기 부터로 제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은 1기 부터로 수정하였다.
공군이나 해군 장교는 복무기한이 4년인데 비해 해병대 장교는 3년이라는 기간이 당시 젊은이에게는 대단한 메리트가 되어 일류대학의 엘리트가 대거 해병장교를 지원하게 되어 그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것이다.
육군은 자격이 고등학교를 나와도 되고 복무기한이 7년이라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에겐 육군간부후보생은 아예 입대할 대상에서 제외 되였다.
신사적인 교육
사령부에서는 이렇게 유능한 인재가 몰리니 황홀하여 30기 31기는 훈련을 공군이나 해군보다는 강하지만 신사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착오를 범하고 만다. 거세기 짝이 없는 해병대 사병은 전 국민이 다 아는 바인데 소대장이 대원보고 점잔케 명령을 하면 명령대로 잘 듣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대학교 나온 젊은이를 강하게 훈련시켜 기압들은 소위로 임관시켜 실무에 내 보내도 대원들한테 휘둘릴 때가 많은데, 대학교 다니며 다방에서 차 마시던 기분으로 대원들한테 임한다면 해병대사병 한 테는 씨알머리도 먹히지 않는 일이다.
고강도 훈련
32기부터 강도 높은 훈련이 시작 되여 33기 부터는 본 괘도에 오른다. 전 세계에서 제일 강도 높은 훈련이 해병학교에서 이루어지며 34기 35기로 이어진다. 그 중에도 34기는 겨울에 훈련을 받아 더욱더 힘든 훈련을 이겨내야 했다. 그 바람에 34기는 기초반 교육을 18기 해군사관학교 출신과 같이 받게 된다.
년2회 장교모집
사령부에서는 30기부터 매년 1회씩 대학졸업 직후에 해병간부후보생을 모집하여 33기까지 오다가 월남이라는 변수가 생겨 소대장 요원이 부족하니 그 계획을 변경하여, 34기부터는 대학 졸업시험 끝나자 마자 12월에 모집하고 35기는 3개월 후 졸업과 동시에 모집하는 1년에 2개 기수를 매년 배출하는 것으로 계획이 되였다.
모집계획 변경과 퇴교
이 계획대로 34기는 대학졸업시험이 끝나고 12월 하순에 진해 해병학교에 입교하여 해병대 간부후보생 훈련을 받게 된다. 34기 훈련 중에 사령부의 계획이 별안간 바뀐다. 35기는 3개월 후에 모집하지 않고 1년 후에 모집한단다.
훈련 중인 34기는 진해에서 기초훈련이 끝나고 상남으로 이동하는 날 예고 없이 훈련인원의 반을 싹둑 잘라 상남이 아닌 '고향 앞으로 가' 하는 퇴교 조치를 해 버린다. 그 많은 퇴교생을 모아놓고 '귀관들은 일생동안 34기 동기생으로서 서로 우의를 다지며...' 라며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소리를 하며 퇴교식을 하였다.
졸지에 퇴교생이 된 인원은 세대의 트럭에 실려 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해병학교 앞에 있는 경화역이 아니라 삼랑진역으로 향하여 출발하였다.
후에 사령부에서는 퇴교한 34기생이 소송을 하면 어떻게 대처하나 하고 무척 고민을 한 모양인데, 막상 퇴교를 당한 그 많은 34기생은 생지옥 같은 훈련에 하도 혼이 나서 해병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있었다. 기초훈련이 끝나면 일방적인 퇴교 조처는 불법인 모양이다.
계속된 사령부의 실책
여기서부터 사령부의 실책이 계속된다. 사령부의 돌발적인 계획 변경은 해병대의 월남파병은 확정이 안 되고, 장교들을 모집하면 구름 떼같이 몰려오니 모집하는 데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장교를 임관시키고 1년간 봉급을 주며 유지시키는데 비용이 많이 드니, 필요시에 바로 모집하여 충원하면 된다는, 사병 모집하는 식으로 판단을 내려 35기는 1년 후에 모집을 하게 되었다.
장교를 모집하여 소대장 요원으로 훈련을 시키고 전투에 배치하려면, 소대장이 자기 부대를 장악하고 지휘계통을 확립하며 자기 대원과 얼굴을 익히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이런 기초적인 문제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6.25시절 전선에서 투입한지 하루 만에 전사해 오는 '소모품 소위'의 비극을 사령부는 잊어버린 모양이다. 편의적으로 해병대식의 '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 부친 것이다.
대졸생의 마음을 못 읽은 사령부
여유를 부리던 사령부는 월남파병이 확정 되여 급박한 상황으로 초급장교를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급기야 36기를 모집하게 되고 연이어 3개월 만에 37기를 모집하는데 제동이 걸리기 시작을 하였다. 그래도 36기는 정예다.
대학교 졸업생이 해병대 오려고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졸업하고 바로 모집하는 시기가 지나면 실력 있는 젊은이를 모집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실력이 쳐지는 젊은이라도 오면 행복하겠는데, 소대장으로 월남파병하면 생명이 위태롭다는 말이 시중에 떠돌면서, 오려던 젊은이도 발길을 돌리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1년 전의 장교 모집할 때를 생각하면 '아 옛날이여' 하며 땅을 쳐도, 장교 모집 할 때의 몇 십대 일로 선발하던 시기는 다시 오지 않게 되었다.
하사관 장교, 고졸 장교
장교 모집에 고민을 하던 사령부는 36기부터 많은 하사관 출신들을 해병학교 간부후보생에 입교시켜 장교를 보충하더니, 39기는 아예 하사에서 상사까지만 모아 간부후보생 훈련을 시켜 하사관만으로 장교를 임관시키게 되었다.
하사관이 여유가 있어서 장교로 임관시킨 것이 아니고 현역부대에서는 하사관이 모자란다고 사병 중에서 몇 명씩 차출하여 하사관학교에 보내라는 공문은 계속 내려오고 있을 때이다.
엄격한 상하 계급과 기수를 생명으로 아는 해병대가 하사관의 각 기수를 무시하고 장교로 동기생을 만들었으니 해병대의 기강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으로 끝났다면 다행이나 장교 모집이 힘드니 아예 장교 모집 조건을 41기 이후에는 고등학교 출신으로 하향 조정하여 똑같이 훈련받고 임관시켰다.
모자라는 위관장교 충원과 월남전 소대장 요원확보를 위하여 계획을 세웠던 34기 모집할 때의 계획대로 대학졸업생을 년 2회씩 모집하였다면 이런 하사관이나 고등학교 출신자를 장교로 임관시키는 불상사는 일어나지도 않고 장교의 질은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했을 것이다.
예산에 책정된 장교들 봉급을 횡령하려는 심보만 없었더라도 해병 장교의 질을 이렇게 하락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졸 장교의 대접
고졸출신 장교가 임관되어서 현역에 왔을 때 사병들에게 어떠한 대접을 받았는지 알기나 하는가. 대학교출신의 같은 장교는 고졸자와 동급이라고 창피함과 사령부에 대한 울분이 교차하고, 수군거리는 대원들은 우리하고 같은 고졸인데 장교 행세를 하네 하고 업신여기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대원들에게 '군대는 계급이다' 라며, 고졸출신 장교에게 절대적으로 명령 복종을 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력 있고 멋있고 기압 들고 보급 잘 받는다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해병대의 장교 인기는 급락하기 시작하였다.
일년에 한번 모집하던 장교를 세네기수 씩 배출하다보니 같은 소위가 선후배를 헷갈리는 불경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2년 만에 중위로 진급하니 자기가 알면 동기생 모르면 선배라는 간단한 공식이 사라졌다.
상의 없는 병과 변경
33기 34기 35기 중에서 34기가 인원이 훨씬 적다. 입교 인원의 반을 퇴교시킨 34기는 임관된 인원도 전투병과는 거의 없고 특과병과 뿐이다. 35기는 대조적으로 특과병과가 적다.
일예를 들면 경리장교에 18명을 모집하고 한 명만 경리고 나머지는 전투병과로 변경시켜버렸다. 보급도 모집인원의 반수가 전투병과로 변경 되였다. 모집할 때의 약속은 간데없고 본인과 상의한번 안하고 병과를 변경시키는 신의 없는 일을 사령부는 서슴없이 저질렀다.
예비역 유명인사
실력 있고 유능한 장교를 배출하여 현역에서 근무하다 만기 전역을 하더라도, 예비역으로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사회 각 분야에서 유능한 인재가 되여 두각을 발휘하고 모군에 유익한 일을 도와줄 수 있는 희망이, 저급의 장교를 배출함으로서 사라져 버렸다.
사회에서 유명인사가 되면 예비역이지만 자기가 근무하던 모군에 얼마나 큰 보탬이 되는지 생각이나 해 봤는지 모르겠다.
예비역끼리의 연대감도 강화되고 예비역 상호간 상부상조할 수 있는 여건도 쉽게 성숙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간과하지 못한, 이런 안목 없고 무지한 사령부의 고급장교나 사령관이 어떻게 무적해병이나 해병신화를 만들어 냈는지 의아할 뿐이다.
우리가 우습게 알았던 ROTC를 보라. 32기가 ROTC 1기와 대학교 같은 학번이다. ROTC는 지금 사회적으로 그 위치가 공고하며 실력단체로 부상하였다.
35기 전역 신고
기왕 말하는 김에 35기 전역 때의 상황을 짚어보자.
35기는 행운기수며 사고기수다. 35기가 임관하자마자 후배기수가 줄줄이 들어와 선배 대접을 톡톡히 받고, 다음해 2월 1일에 임시 중위로 진급이 되었고 또 1년이 좀 지나서 임시 대위로 진급이 되여 기분이 상승 되였다. 물론 몽땅 월남전에 끌려가는 기수이기도 하다.
기초반 시절에는 김해 공군 비행학교를 습격하여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해병들에게는 영웅대접을 받고 현역에서는 기압들은 소대장으로서 인정을 받고 후배장교들 한 테는 겁나는 기수로 부각 되였다.
3년 복무하기로 서약하고 입대한 이런 35기가 월남전쟁 덕분에 군 복무는 곱빼기로 하고, 전역을 하러 사령부에 가니 전역증서가 대위가 아니라 중위로 기재 되였다.
월남 전투에 참가하고 대위로 중대장을 다 마치고 최소한 대대나 연대참모 이상을 다 거친 역전의 용사를 임시 대위라 중위로 전역을 해야 한단다.
이런 싸가지 없는 사령부를 믿고 목숨을 걸고 명령복종하며 전쟁터에서 열심히 뛰어 다닌 군 생활을 생각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고생했다고 한 계급 올려 주지는 못할망정 임시대위 3호봉을 깎아서 중위로 만들어 전역을 시키다니 타군에서 보면 소도 웃을 노릇이다.
퇴직금을 착복하려는 사령부의 얄팍한 상술이 이런 결과를 빚었다. 이런 썩어빠진 사령부의 고급장교와 사령관이 있으니 해병대가 없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오전에 35기 전역식 신고를 받으려다 35기 전역자 들의 강력한 반발로 신고식도 못하고 오후에 흐지부지 중위로 적힌 전역 종이쪽지 한 장 받고 나왔다.
전역증서 들고 와서 동사무소에 신고하니, 35기는 일생동안 중위로 주민등록증에 기재하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대위로 중대장을 마친 역전의 용사를 국립묘지에 들어가면 묘비에 중위로 나오는데 자존심 상하고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무능한 고급장교와 사령관이 사령부에 진을 치고 있으니 35기 전역하고 얼마 안 있다가 해병대가 해군에 흡수 통합되는 말하자면 사라지는 수모를 겪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사령부가 썩지만 않고 무적해병의 정신만 살아있었다면 어떠한 정치적인 정략이 있더라도 해병대는 사수하여 떳떳한 해병대 사령부가 건재하게 살아 있었을 것이다.
기압든 군대
40여년이란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은 해병대 사령부가 반쪽의 권한은 행사하고 있고 장교의 질도 매우 향상되어 있으나 전체의 군기는 옛날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기압이 빠져있다.
강한 군대는 혹독한 훈련과 강한 정신으로 무장된 기압든 군대지, 민주적으로 훈련받고 자치적으로 병영생활을 하는 군대는 연약한 군대로 전투에 나가면 백전백패다.
해병대는 기압들은 부대를 만들어 팔각모와 빨강 명찰의 자긍심을 갖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긍지와 자존심이 마음에 각인될 것이다.
현대전의 전략
해병대는 구시대적인 상륙작전만 고집할 것이 아니다. 전자정보전인 현대의 군 전략은 적 후방에 침투하여 TAOR을 형성하던지 결정적인 목표에 기동타격을 하여 적을 함몰시키는 작전으로서 이런 작전에는 특수부대로서 해병대가 최적이다.
일상적인 보병훈련에서 탈피하여 고공 심해 산악의 특수 훈련을 강화하여, 전자전인 현대적인 무기에 부응하여 전술을 펼친다면 소수 정예로서 최대의 승전을 올릴 것을 확신한다.
출처 : Daum 카페 해사사, 남문605기(이 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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