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창설기-천자봉과의 인연
진해 동천에 우뚝 솟아 있는 천자봉은 다음과 같은 전설을 지니고 있는 상서로운 영봉이다. 일설에 의하면 아득한 옛날 함경도 이(李)씨 한 사람이 조상의 시신을 묻을 명당혈처를 구하러 팔도를 편력하던 중 가파른 산줄기가 바다에 접해있는 웅동 북방의 만장태(일명 병산) 기슭에 마음이 이끌리는 암혈이 눈에 띄어 주씨성을 지닌 하인을 시켜 선친의 시신을 그 암혈에 이장했는데,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상전이 죽자 가문에 대한 욕심이 동한 하인 주씨가 자기 선친의 시신을 그 암혈 근처에 있는 다른 암혈에 이장한 결과 그로부터 먼 훗날 이씨 문중에서는 이성계가 나고 주씨 문중에선 주원장이가 '나 이씨는 조선조의 왕이 되고 주씨는 명나라의 천자가 되었다'고 하는데, 현재 웅천지방에 살고 있는 주씨들은 바로 그 후손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설과 함께 옛부터 천자봉이라고 불려왔던 봉우리는 만장대라고 하는 그 봉우리(일명 병산)를 말함이었다고 하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산상에 떡시루 형상의 거대한 바위(높이 80척, 둘레가 40척 가량 되는)가 내려앉아 있는 시루봉(△620)을 천자봉으로 착각하여 그렇게 불러왔다는 전설이 있는데, 해병대가 이 영봉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기 신병들의 수료식이 거행된 날 신현준 사령관 이하 전장병이 1기생들의 수료를 기념하기 위해 평소 외경심을 가지고 우러러 본 그 영봉을 동반한 것이 그 첫 인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날 그 영봉을 등반했던 장병들은 찬란한 아침해가 그 봉우리 어깨 너머로 솟아오를 때 말할 수 없이 장엄하게 우러러 보인 그 영봉 밑에서 정복자 연(然)한 통쾌감과 호연지기를 만끽하며, 한 폭의 그림처럼 조망되는 장복산 남쪽 기슭 일대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진해 시가지와 멀리 하늘 자락에 맞닿인 진해만의 푸른 물결과 또 그 물결 속에 점점이 박혀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을 감회 깊게 바라보면서 패기만만한 장부들의 기개를 떨쳤는데, 그렇게 맺어졌던 그 천자봉과 해병대와의 인연은 그해 8월 하순경 해병대의 주력부대가 진주로 이동한데 이어 그 해 12월 말경 해병대의 전병력이 제주도로 이동하게 됨으로써 영 영 단절되는 듯 했으나 6.25전쟁이 일어나 진해에 해병교육관이 창설되면서 그 인연이 재 접목되어 신병훈련소를 비롯해서 하사관학교와 해병학교 등 각 교육기관에서는 '천자봉구보' 를 필수과목으로 편성하여 모든 피교육자들로 하여금 뻔질나게 등반하게 함으로써 정복자 연한 그 영봉과 기상과 웅지를 영혼과 육체 속에 배양하는 도장이 되게 했다.
그리고 1964년 10월에 입대했던 158기 신병들은 그들의 수료를 기념하기 위해 그 봉우리 아랫부위에 돌 조각을 주워 모아 해병혼이란 세 글자를 한 자씩 떼어서 한 평 남짓한 크기로 조형해 놓았는데 훈련소 연병장에서도 또렷하게 잘 보였던 그 인상깊은 그 후 수없이 갊아 든 그 모든 피교육자들의 뇌리에 지워질 수 없는 영상물처럼 인각되어 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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