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3기 김세창

청룡 투혼의 위대한 승리-푸옥록(phuoc loc) 30고지 전투( 5 )

머린코341(mc341) 2015. 2. 6. 02:21

청룡 투혼의 위대한 승리-푸옥록(phuoc loc) 30고지 전투( 5 )

4. 검은 묘비들 사이로 흔들리는 적들의 그림자들

무전기 2대가 함께 있는 경우 한 번의 수류탄 공격으로 파손되는 위험이 있어서 옆에 있던 2명과 함께 본부반에 떨어져서 합세하도록 하고, 나는 혼자서 무전기를 곁에 두고 사격을 유도하였다.


중대 본부반에 중대장과 가까이 있어야 했는데 그 위치에서는 전방 주시가 되지 않아 3소대장 쪽으로 약간 전진하였다.


빗물이 눈으로 들어가서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보면서 사격을 유도하다보니 비탈 전면에 있는 공동묘지 비석들이 여기 저기 많이 보였다.

 

바람이 불어 조명탄이 흔들흔들 하며 조명을 비추니 비석의 그림자도 같이 일렁대고 있어서 아주 혼란스러웠다.

 

더구나 조명탄이 4개나 5개가 하늘에 떠서 빛을 내기 때문에 비석들은 하나하나 마다 여러 개의 그림자를 만들어서 더 많은 적으로 환각하게 되어 더욱 어려웠다.


그런데 그사이 사이로 수십 명의 적들이 오리걸음으로 접근해오는 것이 보였고 비석을 방어벽처럼 기대서 사격을 가하기 때문에 더욱이 위기감이 돌았다.


일단은 3소대 전면 넘어 작은 고개로 적들이 계속 접근하고 있다고 직감하고는 먼 뒤쪽 화집점에서 부터 줄이기 50과 좌로100 또는 우로 100정도로 간단한 명령만 되풀이 하였다.


너무도 가까이 10미터 이내에서 적들이 다가오므로 나 역시 M2 칼빈소총으로 응사를 하였다.


한동안 무전으로 포탄을 유도를 하면서 총을 쏘다 보니 방금 전까지도 곁에 있는 줄 알았던 전창우 소위가 없었다,

 

아니 아무도 없이 맨 앞에서 혼자서 총을 쏘고 있었던 것이다.

 


몸을 돌려 다시 사격을 하려는 데 너무나 놀라서 가슴이 철렁하였다.


이런 난처한 일이 어떻게 일어난단 말인가? M2 칼빈소총이 고장서 노리쇠가 움직이지 않았다.


소대원들은 육박전 후에 급히 후진하고 나 혼자 있는 상황에 총까지 고장이 났으니 내가 이동할 때 누가 엄호를 해줄 병사가 없었다.


우선 권총을 꺼내어 눈에 보이는 적들에게 연발사격을 하고는 5미터 정도 뒤로 몸을 날렸다.

 

그래도 내가 최전방이었다.

 

엄폐물이 없어서 우선 후방에 놓여있던 61미리 박격포탄 박스 3개를 엄폐물로 삼고 엎드렸다.

 

거의 15m 나 후진을 한 셈이다.


61미리 박격포탄은 중대본부위치에 있었으니 진지를 많이 점령당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칼빈총 노리쇠를 군화 발바닥으로 재빠르게 밀었다 당겼다 세 번을 반복하였다.

 

사격하던 칼빈소총이었기 때문에 총열이나 윗덮개가 어찌나 뜨거운지 손으로 잡기가 어려웠다.

 

발바닥으로 노리쇠를 미는데 손으로 잡을 곳이 마땅하지 못해서 무척 고생을 하였다.


노리쇠 홈에 묻어있는 진흙이 고장원인이었다.


정말 죽을힘을 다해서 노리쇠를 발로 찼다. 얼마나 다급한 상황이었는지 그래도 순식간에 처리를 하였지만 그 시간에 얼마나 초조하였던가?


세 번째 발로 차서 뒤로 밀은 후에 노리쇠를 당기니 실탄이 밖으로 나오면서 장전이 확인되었다.


다시 전방에서 오리거름으로 계속 다가오는 적들에게 총을 쏘다보니 다시 3소대원들이 서너 명이 내 곁으로 전진해왔다. 자기들 전방에서 내가 총을 쏘니까 같은 소대원인줄 알고 힘을 내어 전진 방어를 하려고 온 것이다.

도대체 관측반원들은 어디로 갔나? 아무도 포병관측병은 안 보였다.


뒤돌아 보니 1소대 쪽에서도 여전이 총격전은 버러지고 있으나 처음 공격해오던 때 보다는 다소 격전상태가 누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다행이 3소대 후방인 1소대 쪽에서는 적탄이 내가 있는 쪽으로는 오지 않았다.

내가 있는 1소대전면 능선에서 4~5미터 바로 밑에 있는 관목이 줄지어 있는 곳에서 또 같은 호각 소리가 들리는 걸 확인하였다.


누구의 개인호 인지 모르나 그곳에 엎드려 잠시 동정을 살피는데 잠시 후에 또 호각소리가 들리고 우박처럼 수류탄이 날라 왔다. 터지고, 또 터졌다.


적과 너무 근접하다보니 적이 던진 수류탄들이 전부 내 머리위로 날아가 빈 공간인 1소대와 3소대 거의 중간에서 많이 터지는 걸 알게 되었다.


호루라기 소리와 동시에 수류탄이 여기저기서 터지자마자 그 직후에 벌떡 일어서서 구부린 자세로 작은 나무와 수풀을 겨냥해서 연발로 한 탄창을 다 쏘아대었다.

 

정말 미친 사람처럼 겁도 없이 마구 연발로 사격을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뒤로 포복을 하며 후퇴를 하였다 왜냐하면 다시 소대원들이 후퇴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M2칼빈 실탄 한 탄창을 발사한 거리가 적과 20미터도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 제대로 적들을 파악하고 지향사격을 한 것 같았다.


“ 꽈~ 꽈~ ”하는 여자들의 비명소리와 당황하는 굵은 남자들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찰나(刹那)같은 순간의 생각이었지만 진해 덕산사격장에서 처음 명중을 알리는 스파타(탄착표시판)가 올라왔을 때 느꼈던 희열이 휙하고 스쳤다.


숲에서 호각 소리도 잠잠해졌다.


무언가 결정적인 와해의 기미가 있는 듯이 보였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고 으스스 추위가 몰려오면서 오줌이 마렵다는 걸 인식하였다.


온 몸이 진흙과 빗물로 다 젖어 있었다. 간간히 총알은 날아오지만 호에 엎드린 채로 해포 7중대와 교신을 하다가 허벅지에 따뜻한 물이 흐르는 걸 느꼈다.

 

잠간이지만 긴장이 풀리면서 실례(?)를 하였다.


허참 ! 세상에 엎드려서 총을 쏘며 소변을 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런 중에 전방을 주시하다보니 아주 신경이 쓰이는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바로 곁에 무언가 “퍽, 퍽”하며 하늘에서 바로 내 곁에 떨어지는 물체가 있었다.


얼른 불빛에 보니 4.2인지 조명탄이 터지면서 낙하산을 감쌌던 손바닥 두 개만한 하얀 반원형 알루미늄조각이었다.

 

그것들이 곁에 계속 떨어졌는데도 다른 폭음 때문에 듣지를 못했나보다.

800미터 상공에서 떨어지는 그 쇳조각에 맞으면 죽을 것 같았다.


하늘에서 “펑”하며 조명탄이 번쩍 빛을 발광하면서 터지면 아주 기분 나쁜 소리로 “후루루루 후루루루”하는 소리를 내며 계속 곁에 떨어지고 있었다.


미도파에 상황을 설명하였다. 아마도 사거리조정을 한 모양이었다.

잠시 후에 다시 소대원들이 내 앞으로 포복으로 가는걸 보고는 나도 소대장 곁으로 포복을 시작하였다.

아 ! 나도 지쳤나보다. 앞으로 전진이 되지를 않았다. 두 팔로 힘을 써보며 오른발을 뒤로 밀어도 미끄러지기만 하였다, 왼발에 마비가 왔나보다. 왼발을 당겨도 그대로다.


그래서 왼발을 내려 보았다.
아니?
월남 온지 며칠도 안 되는 월남 신병이 내 발목을 움켜쥐고 벌벌 떨고 있었다.

 

공포에 떨고 있는 그 수병에게 할 말이 없었다. “야! 내 발 놔! 둘이 붙어있으면 둘 다 죽어, 어서 분대장 찾아가!” 작은 목소리지만 호되게 명령을 하였다.

 

(만일 그 신병이 이 글을 읽는 다면 내게 전화라도 해주길 바랍니다.

사실은 사과를 해야 합니다. 쌍욕을 했으니까.)


앞으로,
다시 뒤로,


그리고 앞으로 개싸움처럼, 하이에나처럼 처절하게 적들과 뒤섞인 것이 몇 번이었나?
후퇴라야 10미터 전후. 다시 전진해야 먼저 번 그 자리였다.

 

출처 : 청룡부대 선배님의 월남전 참전수기 '아! 청룡이여 제1권, 캄란에서 호이안까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