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역사/해병대 전통·비화

진주 주둔기-급행열차를 세운 홍정표 소위

머린코341(mc341) 2015. 3. 22. 14:40

진주 주둔기-급행열차를 세운 홍정표 소위

 

이 비화의 주인공은 해병대 사령부 보급관 홍정표 소위였다. 그가 그와 같은 비상수단을 강구하게 된 것은 그 해(1949년)10월 26일 아침 서울에서 인수하여 진주로 운반해 오게 되 있던 무기 인수를 위해 그 전날 아침 열차편으로 삼량진으로 떠나게 된 그가 그 날 정오경 삼량진 역을 (무정차로) 통과하는 부산발 서울행 준급행열차를 타고 가기 위함이었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는 이런 기지를 발휘했다. 즉 진주역장에게 그 무기인수증을 제시하며 이 작전명령서에 적혀 있는 무기를 정해진 시각에 인수하여 운반해 오지 못하게 되면 군 작전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니 자신이 타고 가는 진주발 삼량진행 열차가 삼량진역에 도착하여 그 급행열차에 올라탈 때까지 약 1시간 동안 그 급행열차를 삼량진역에 정차시켜 놓으라고 했고, 결국 철도국에서는 그 작전명령서에 협조를 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일은 그 열차를 타지 않고서는 그 날 중으로 상경할 수 없었던 그 당시의 교통사정도 헤아려 볼 수 있게 하고, 또 공비출몰로 인해 치안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화제로 기억되고 있지만 보급관 홍정표 소위가 발휘했던 그와 같은 임기응변의 기지와 배짱도 참으로 놀랄만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 때 홍 소위가 수령해 오게 된 무기는 육군에서 제공해 준 것이었다. 대구회담 때 육군참모총장은 육군(피교대부대)이 보유하고있는 장비는 차량을 포함해서 전부 해병대에 인계해 주겠다고 했으나 (기관총과 박격포만은 그 병력과 함께 당분간 해병대에 배속시킬 것이라고 했고) 어떤 이유 때문인지 그 약속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육군 병기창으로 부터 공급받게 되었던 것인데, 그 목록은 권총(15정), 기관단총(28정), 경기관총(6정), 칼빈(257정), 중기관총(4정), 99식 소총(141정) 등이었다. 낡아빠진 99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던 해병들에게는 엄청난 장비가 아닐 수 없았다.

 

그러나 해병대에는 그런 미제 무기를 조작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사령부 고문관이 육군16연대(마산주둔) 고문관에게 요청하여 소수의 병기 취급 교관요원을 16연대 고문단으로 파견하여 연수교육을 받게 한 다음 그들에 의해 자체교육을 실시했는데, 자체교육을 하기전 부대에서 성능 시사회를 가졌을 때, 난생 처음 그런 신무기를 본 대원들은 99식 단발소총에 비해 열배 천배의 위력을 발휘하는 칼빈소총과 기관총의 가공할 위력에 얼마나 경탄을 했던지 마치 부쉬맨들처럼 시종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상경했던 홍 수위는 그 다음날 아침 남산에 있는 해군본부에서 이미 수령하여 용산역 화물차에 적재해 둔 그 무기를 직접 진주역으로 호송해 왔으나, 그 다음날 꼭두새벽에 공비내습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 무기들을 공비들에게 탈취 당할 뻔했다.

 

그 날(10월 26일) 밤 10시경 진주역에 도착했던 그는 무기를 부대로 운반하여 무기고에 입고시켜 놓고 진주호텔로 가서 손님을 접대 중인 부대장에게 귀대보고를 한 다음 약간의 술을 마시고 법원 뒤편에 있는 자기 집으로 가서 잠을 자고 있다가 그 이튿날(10월 27일) 1시 40분경 집 근처에서 일어난 요란한 총성에 놀라 잠을 깨고 보니 법원과 진양군청에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사범학교 쪽에도 불길이 솟고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래서 그는 급히 진주호텔로 달려가 때마침 호첼에서 나오고 있는 부대장과 같이 부대로 향했다.

 

 

출처 : 해병대 특과장교 2기, 예비역 해병중령 정채호 대선배님의 저서 '海兵隊의 傳統과 秘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