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28) 헌병 수사과, 집단 강간 살인은 누가했나?
사건 현장까지 경호를 맡은 월남군
11월 초순경 주월 사령부에서 해병대 청룡 헌병대로 전통(전언 통신문)이 한 장 날라 왔다.
호이안의 외곽에 위치한 프리 파이어 존(무차별 사격 지역) 내의 한 마을에 청룡부대 대원들이 집단 강간을 한 후 여섯 명의 여자들을 모두 살해하고 달아났다는 주민들의 진정에 따라 주월 사령부 범죄 수사대에서 직접 조사를 나가니 협조가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우리로서는 여태껏 전연 들은 바도 없는 아닌 밤중의 홍두께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지도를 펴놓고 그 지역을 살펴보았다.
제일 가까운 부대라야 3대대 소속의 1개 중대였는데 거리가 너무 먼데다 그 곳은 말 그대로 프리 파이어 존이라 사실은 주민이 거주해서는 안 되는 곳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다음 날 비행기로 날라 온 주월 사령부 예하 육군 범죄수사대의 김 대위에게 대략적인 지형과 전황에 대한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 헌병대에서는 나와 호이안 파견대장 그리고 청룡부대 본부 통역장교인 소령 한 분을 수행 할 것이라는 것과 월남 정규군 1개 소대도 호위를 하게 하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한편 그 곳은 적진이나 마찬가지니 우리 모두가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말도 함께 일러 주었다.
그리고 출발 시간은 다음날 오전 9시로 모든 약속이 되어있다는 것도 전했다.
다음날 아침 막상 출발을 해 우선 호이안 헌병 파견대에 도착 했더니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오늘 새벽 2시경 디엔반 군청이 적의 기습을 당해, 나와 친했던 월남군 장교 뚜이 땀이 부상을 당해 후송을 갔다는 것이었다.
사이공 대학을 나온 영재로 마치 동생 같기도 했던 그가 부상을 당해 매우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미군 고문단실에 근무하는 미스 차우의 소식도 그에 못지않게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하기사 차우는 근무가 끝나면 자기 집으로 퇴근을 하기 때문에 무슨 변고야 없었겠지마는 나는 디엔반에 나가있던 헌병 파견대도 철수 한지가 오래라 이제 쉽게 누구로부터 더 자세한 사정을 물어 볼 수도 없는 처지라 그녀에 대한 그 이상의 소식에 대해서는 이미 단념을 했었던 지가 오래였다.
우리 일행은 기다리고 있던 호이안 파견 대장 홍상사의 안내에 따라 월남군 1개 소대를 호이안 북쪽의 어느 논두렁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만났다.
그들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 외곽에서 일렬로 늘어서 우리의 속도에 맞추어 호위를 하고는 있었으나 솔직히 나는 그들을 믿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매우 불안해했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제발 우리가 임무를 수행하는 중 총알이 날라 오거나 우리 일행 중 아무라도 지뢰나 부비트랩을 건드리는 일이 없도록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거의 30분을 걸어 들어가자 숲 사이로 다섯 채 정도의 초가가 보이고 그 초가 앞에는 20여명의 월남 여인들과 몇 명의 노인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막상 우리가 그 앞으로 다가갔을 때는 10여명의 여자들이 여섯개의 관 앞에서 땅을 치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고 다른 10여명 이상의 동네 사람들은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통역의 말에 따르면 3일 전 자정이 조금 넘어 청룡부대의 군복을 입은 사람 여섯 명이 이 곳으로 들어와 여자 여섯 명을 강간하고 그 후 그 여섯 명 모두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증거물로는 모두 17개의 M-16 탄피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주워 모았다면서 우리들 앞에 내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첫째 주민들이 주장하는 것이 사실일 수 있는 가능성과 둘째 포사격에 희생된 시신을 모아 관에 넣고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M-16소총의 탄피를 모아 어떤 보상을 받자는 허위 연출의 가능성과 셋째 이것을 빙자하여 현장 검증을 나온 군인들을 유인해 몰살을 하려는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먼저 김 대위에게 말했다.
김 대위는 내가 한 마지막 말에 그렇지 않아도 동그란 눈을 매우 크게 뜨며 잠시 불안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사고 지점으로부터 3키로 정도 떨어져 있는 0대대 0중대 진지로부터 별도로 전진 배치된 1개 분대 진지가 있긴 하지만 그 거리가 이 지역과는 거의 1.5키로나 떨어져 있어 말이 야밤의 이동이지 프리 파이어 존이라 밤이면 아군들의 포사격이며 중대 본부에서 쏘아대는 인치포나 박격포 등의 요란 사격이 있는데 어떻게 움직일 수가 있으며 또 적들이 출몰하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적이 설치한 지뢰와 부비트랩들이 사방에 깔려 있는데 어떻게 대원들이 용의주도하게 그러한 것들을 피해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겠냐는 반문을 했다.
또 대원들이 범행을 저질렀다면 돌아갈 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적들이 은거하고 있는 자신들의 지역인데 강간을 하고 주민들을 사살하는 것을 적들이 곱게 가도록 보고만 있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세 가지 중 한 가지가 분명할 것이나 이미 말했던 것과 같이 우리 청룡부대 대원이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고 그렇다면 나머지 다른 두 가지가 유력해지는데 현재로써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포격에 맞은 시신들을 모아 위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만약 우리가 관을 뜯고 시신을 검시하여 총에 맞은 것이 아니라 포에 맞은 사실을 밝혀내게 된다면 주민들은 허위가 드러나 보상을 받을 수 없으므로 다음 행동으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다고 설명을 했다.
김 대위는 묵묵히 생각을 하다 내게 물었다.
“구 중위, 그러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지금 여기서는 우리 대원들이 했다는 긍정적인 제스처를 하는 도리 밖에는 없어요. 그리고 보고서는 나중에 달리 작성을 하면 되니까요.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관을 열어 시신은 보되 만질 생각은 맙시다. 대충 살피고 빠져나가는 것이 상책일 겁니다.”
하고 나는 일초라도 더 있기가 싫어 일사천리로 대답을 했다.
김 대위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섯 개의 관이 있는 곳으로 다가 가더니 잠 시 잠시 뚜껑들을 열어 보고는 시신을 확인하는 척만 했다.
그리고 호이안 파견 대장인 홍 상사는 김 대위가 관을 열 때마다 따라 다니며 카메라의 셔트를 누르기에 바빴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나는 호이안 파견 대장에게 먼저 확인을 했다.
“홍 상사! 사진 다 찍었소?”
“네, 다 찍었습니다.”
“그럼 출발하지”
나는 이쯤하고 돌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김 대위도 아무 불평 없이 내 뒤를 따라 길을 나왔다.
나는 헌병대에 돌아 와서도 그것은 우리 해병대 청룡부대와는 무관한 사건임은 물론 오히려 어떤 효과를 노린 베트콩들의 연출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시신을 직접 본 김 대위도 포탄에 맞은 것으로 판정을 했기 때문에 사건 자체는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지만 나의 경우 이럴 때는 아예 한판 붙어보는 소총 소대장이 낫지 마음을 조여 가며 자칫 베트콩들의 유인이 있을 수 있는 그런 위험천만의 현장에는 다시 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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