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26) 헌병 수사과, 장군의 아들과 살인 사건
월남전 시절 우리 청룡부대는 육군 제 100 군수지원단(십자성부대) 예하 제11 군수지원 대대로부터 주된 보급을 지원 받고 있었다.
즉 병기나 포탄은 물론 대부분의 보급물자를 육군의 제11 군수지원 대대가 다낭의 미군 보급창이나 한국으로부터 직접 싣고 들어오는 수송선을 통해 수령을 해 오면 청룡부대 근무중대에서는 필요량을 신청하여 지원을 받았고 근무중대는 다시 각 부대 단위로부터 신청을 받아 지원하는 그러한 시스템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제11 군수지원 대대의 지엠씨 차량들은 월남 제2의 도시 다낭으로 매일 아침 이동을 해 미군들로부터 또는 한국으로부터 직접 수송되는 많은 물자들을 어둠이 깔리기 전까지 1번 도로와 538번 도로를 통해 실어 나르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다.
이러다보니 그 트럭들은 보급품을 실어 나르기 위해 분주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제 11 군수 지원대대의 대원들도 업무를 위해 자연히 다낭에 머물면서 미 해병대 군수 단이 있는 부대로 들락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를 물동이로 퍼붓다 시피 하던 우기 철이 겨우 끝이 난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청룡부대의 다낭 헌병파견대로부터 청룡헌병대 수사과로 살인사건이 났다는 전통이 하나 날라 왔다.
내용을 보니 가해자는 바로 육군 제11 군수지원 대대의 하사며 피해자는 미 해병대의 초소 근무자였다.
나는 순간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군 형법상 초병에 관한 법은 매우 엄중했기 때문이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육군하사가 미 해병대 초소 근무자와 통행의 문제로 승강이를 하던 중에 화를 못 참아 자신의 권총에 실탄을 장진 한 후 가슴 높이 정도로 열어 놓은 초소의 창문턱을 권총으로 치는 통에 그만 총이 발사되어 초소안의 초병이 즉사를 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우리 헌병대 수사과는 이것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살인으로 다루게 되었는데 문제는 육군 제11 군수지원 대대에도 육군 범죄수사단 파견대가 나와 있어 사이공에 있는 주월 사령부로 보내는 전언 통신문의 내용이 각각 일 수가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즉 우리로써는 의당 사실 그대로의 보고만으로 끝을 낼 수 있었지만 육군 범죄 수사단 파견대의 입장은 되도록이면 허위보고를 해서라도 피의자와 제 11 군수지원 대대장을 옹호 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제11 군수지원 대대장인 원 중령의 입장이 말이 아니게 된 것은 귀국도 얼마 남지 않은 판국에 귀국 후에는 바로 대령으로 진급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육군 범죄수사단 파견대 역시 우리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살인이라는 죄명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 제기가 없었지만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고 제발 상부의 보고만은 잠시 보류해 놓고 가능한 한 융통성을 찾아보자는 애걸의 제안이었다.
나이 많은 돋보기 채 준위가 나를 만나러 와 통사정을 하는데도 나는 딱 잘라 거절을 했다.
물론 나는 그가 군수지원 대대장 원 중령의 심부름으로 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터벅터벅 모래 땅 위를 밟으며 되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더욱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런 후 얼마 뒤에는 원 중령이 직접 나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처음에는 귀찮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대원을 시켜 여단장님 실에 결재를 받으러 갔다는 거짓말을 해 피할 수가 있었으나 잠시 후 다시 전화를 걸어 왔을 때는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장, 나 어떻게 좀 도와줄 수 없겠소?"
키는 작지만 검고 당차게 생긴 사람의 목소리가 마치 힘없는 모기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차마 박절하게 거절의 뜻을 바로 전하지 못 하고 한 번 생각을 해보겠다는 정도의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원 중령. 그는 ㅇ 장군의 아들이었다.
물론 6.25동란 시절 헌병 총사령관을 하면서 정치문제로 잠시 국민의 이목을 집중 시켰던 분이기는 했지만 그것을 떠나 대한민국의 국군을 창설하는데 이바지 했던 원로 중의 한 사람이었음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원 중령 역시 한 때는 헌병 장교였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고 또 내 역시 육군 헌병학교에서 신세를 지면서 교육을 받았던 사람이라는 것이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나는 더 늦기 전 새로운 결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결국 만난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국군의 원로인 ㅇ 장군을 한 번 더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이윽고 나는 전화로 원 중령에게 채 준위를 다시 우리 수사과로 보내 달라는 말을 전했다. 얼른 눈치를 차린 원 중령은 미리 고맙다는 말을 진심 어린 목소리로 전했다.
우리 수사계장은 범죄 수사대 채 준위가 임의로 만든 보고서가 너무나 터무니없이 작성 되었다고 이만 저만 불평을 하지 않았다.
“이러 나 저러나 봐주기는 마찬가진데 그 대로 해주시오”
책임은 어디까지나 내가 질 것이라는 각오가 이미 서 있는 나로서는 흔들릴 수가 없었다.
마침내 해병대와 육군은 사이공의 주월 사령부로 보내는 보고서를 서로 조율해 오발사고라는 일치 된 허위 보고로 마무리를 짓고 말았다.
저녁때쯤 원 중령이 내게 전화를 걸어 왔다.
“구 중위, 귀국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기다릴 테니 꼭 한번 오시오”
원 중령은 간곡한 어투로 내게 당부를 하다시피 했다.
이미 헌병대장과 여단장까지 결재 된 내용을 아예 바꾼 후 허위로 주월 사령부로 사건을 보고한 것이 내가 저질렀던 일인데 곰곰이 생각 해 보면 내가 보아준 행위 그 자체가 사실은 사건이라면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혹시라도 원 중령이 자기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처럼 여기지는 않을까 두려워 그 후로는 원 중령의 제11 군수지원단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한 달 후 짚 차를 타고 서로 길을 마주보고 지나치다 내가 인사를 하자 원 중령이 얼마큼 지나갔던 차를 세우는 것이 백 밀러로 보였다.
나도 즉시 차를 세우고 기다렸더니 후진을 해 다가와서는
“구 중위, 왜 한 번 안와요? 귀국도 곧 해야 할 텐데”
마치 나무라듯 얘기하는 그의 말투가 더 없이 다정함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는 무엇인가는 나에게 꼭 보답을 해주어야겠다는 진심이 서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네, 한번 가겠습니다!”
짤막하고 큰 목소리를 남긴 채 나는 얼른 다시 차를 몰았다.
계속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초심에 흔들림이 없음을 깨닫고 저절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크게 혼자서 웃어 보았다.
“나는 당신 아버지를 생각하고 큰일을 저질렀지 알량한 당신 부대의 그 물건들이 탐이나 그랬던 것은 결코 아니야. 만약 이 일로 내가 당신에게 신세를 진다면 내 모든 뜻이 물거품이 되는 거야”
“하기사 내 동기생들이 나를 쪼다구라고 부르는 것을 당신은 알 리가 없지”
운전대를 잡고 질주하던 나는 뻥 뚫린 청룡도로가 그 어느 때 보다 더 시원히 뚫려있음을 새삼 느끼며 속도를 더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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