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24) 헌병 수사과, 난동
헌병대에는 장교가 헌병 대장과 나 밖에는 없어 보안과장까지 겸직을 해야 했다.
청룡부대(여단)본부의 바운다리가 워낙 크서 특공중대만으로 그 큰 외곽지역을 지키기에는 불안 할 때가 많았다.
지난 3월 쯤 내가 소총 소대장을 하고 있었을 때도 직접 1개 소대를 이끌고 서쪽 끝의 일부를 약 10여 일간 파견을 나와 지켜주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내 자신 여단 외곽의 지형과 대체적인 방어 상황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었다.
하루는 저녁 7시쯤이었는데 여단본부의 외곽 방어 진지 쪽에서 산발적인 총소리가 들리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와 즉시 나는 보안과 헌병들을 완전 무장부터 시키는 한편 보고를 했던 그 지역 담당 수사관에게는 현지에 직접 가서 좀 더 상세히 내용을 알아보고 다시 보고를 하라고 했다.
헌병대의 장교라고는 소령인 헌병대장과 중위인 나 밖에 없으니 자연히 나는 수사과장의 직책인데도 보안과장까지 겸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인데다 나를 빼고는 모두가 전투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고 보니 의당 위험한 일이 있을 때는 내 스스로가 앞장을 서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으므로 헌병대에서의 내 임무가 그리 쉬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얼마 후 다시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원래 배치되어 있는 특공중대 외 여단 외곽의 일부에 00중대가 임시로 들어와 배치를 붙었는데 00중대의 두 하사관이 술이 만취되어 낮에 작전을 나가서도 작전은 아랑 곳 없이 총을 마음대로 난사를 했는가 하면 지금 배치를 붙은 곳에 돌아 와서도 소대장에게 행패를 부리고 총을 아무 곳에나 마구 난사를 하고 있어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이럴 때의 솔직한 내 심정은 그 곳으로 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껄끄러웠다.
곧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다시 소총 소대장이 된 기분으로 되돌아 간 나는 백차 두 대 중 선두 차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출동을 했다.
그리고 먼저 심리적인 효과를 노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두 대 모두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헬리콥터에서 때어 붙인 엄청나게 밝은 적색비상등을 계속 번쩍여가며 현장이 가까운 제방 아래까지 갔다.
나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서도 멀리까지 번쩍이는 비상 적색경보 등만은 산 속 문제가 생긴 곳에서도 내려다 볼 수 있게 계속 켜 놓으라는 지시를 했다.
그것은 일단 범죄자들로부터 심리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였다.
이미 현장의 아래 편 길가에는 구경을 하는 여러 대원들과 헌병대와 보안대 요원들이 웅성거리며 무리를 지어 있었는데 그 속에 섞여있던 중위 한 사람이 불쑥 내 앞으로 닥아 와 인사를 하고는 방금 현장에서 내려 온 부중대장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우선 이런 사고가 있는 중대의 장교들을 못 마땅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던 중 마침 그를 만나게 되었던 터라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대했다.
“야! 너가 부중대장이야? 해병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
“네, 죄송합니다. 평소 두 하사관들은 저의 말을 잘 듣는 편입니다. 어느 정 도는 달래다 왔습니다만 다시 한 번 올라가 설득을 해 보겠습니다”
계급은 같은 중위였지만 그는 여전히 내 앞에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인물도 좋고 체격도 매우 좋아 보이는 부중대장이 믿음직스럽기는 했으나 아직도 현장에서는 소대장이 인질처럼 자유롭지 못한데다 상대가 모두 총을 난사하는 놈들이라 우선 그들을 다시 설득하러 가는 그에게도 더욱 정신을 가다듬어 라는 뜻으로 강도를 높여 말을 해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봐, 우선은 부중대장이 책임을 져! 가서 설득이 안 되면 죽든지 살든지 해야 돼. 정신 바짝 차리고 최선을 다해!”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고 되돌아서 뚜벅뚜벅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부중대장의 뒷모습이 잠시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나는 내대로 설득이 실패 했을 때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만약 난동을 부리는 두 사람만 있다면 생명에 개의치 않고 이미 배치시킨 헌병들로 하여금 바로 집중 사격을 가해 제압을 하는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을 했으나 우선 소대장이 위태로운 지경에 있어 일단은 부중대장이 올 때까지 초조한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누군가가 “나온다!” 하는 소리를 질러 웅성거리던 사람 모두가 어두운 숲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문제의 두 하사관들은 부중대장에게 설득을 당했는지 총을 모두 부중대장에게 맡기고 우리가 진을 치고 있는 길 아래로 모자도 군화도 벗어 버린 채 뚜벅 뚜벅 맨발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내심 죽이고 싶은 마음이 울컥했으나 많은 사병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그들을 싣고 모두 헌병대로 철수 한 뒤 내가 그들 앞에 직접 나섰다.
그 이유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학대당한 소대장의 상처 난 얼굴을 보고 두 범죄인들을 그냥 두어서는 결코 해병대를 위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소총 소대장을 했던 사람이라 더욱 분노가 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소대장을 구타하고 인질로 잡아 총을 겨누고 행패를 부렸다고? 이건 해병대 역사에 없었던 일이야, 이 개 새끼들아!"
그 후 나는 이미 내 스스로 이성을 잃은 잠시 동안의 시간을 보안과 상사들이 큰 소리를 내며 나를 말려서야 겨우 알아차릴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 중 한명은 의식이 없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엠불런스 불러!" 상사 한 사람이 대원들에게 고함을 쳤다.
나는 두 사람 중 한사람이 이미 숨을 거둔 것으로 판단을 하고 바로 청룡부대장실로 찾아 들어 가 자초지종을 보고하고 해병대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내 의지를 전하고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는 말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나 내 집무실로 들어 온 나는 아직은 성급한 발걸음이 될 것도 같은 느낌이 들어 일단은 의무대의 차후 보고를 지켜보는 것이 낫지 않을 까 싶어 잠시 대기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특히 전투 중대에서는 소대장이 무너지면 40여명 대원들의 생명 모두가 위태롭게 되는 이 전쟁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내심 두 하사관들을 압도하지 못한 소대장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한 시간 가량 시간이 흘렀을 때 의무대에 따라갔던 대원들이 나에게 보고를 했다.
그것은 엠불런스로 실려 갔던 한 사람이 죽지 않고 깨어났다는 안도의 보고였고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그저 허탈하기만 했다.
구속을 시킨 뒤 알았던 사실이지만 두 하사관들은 원래 수색대 출신인데다 모두 고아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자란 불우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리고 구치소에 있는 동안 헌병대 대원들이나 나나 그들과 차츰 친하게 정을 주며 지내다 보니 두 하사관 모두 형제 같은 기분이 들었고 우연찮게 두 사람 모두가 제도사를 능가할 정도로 차트를 매우 잘 그리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구속되어 있는 동안 헌병대의 모든 차트를 다시 정리 해주는 등 무척 많은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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