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21) 해병대 긴바이

머린코341(mc341) 2015. 6. 7. 21:54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21) 헌병 수사과, 해병대 긴바이

 

수사과 집무실에서 

 

어느 중대나 마찬가지로 한 두 어 달 정도 방어에만 열중하거나 야간매복에만 열중하다 막상 전투를 하는 작전에 임하게 되면 마치 운전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며칠 쉰 다음 다시 운전을 할 때의 기분처럼 매우 어색하고 설게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청룡부대(여단)의 정예라는 00중대는 1968년 1월 추라이에서 호이안으로 이동 한 후로 줄곧 청룡(여단)부대 본부의 외곽방어를 하기에 급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구정휴전을 틈타 많은 월맹 정규군과 지방 베트콩들이 우리 해병대 지역에 산재되어 우리와 접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청룡부대(여단) 본부에서는 항상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정예중대인 00중대로 하여금 계속 외곽 방어만을 하도록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 개월이 흐른 뒤에는 평정도 어느 정도 되어가는 중이라 대대 급 작전일 경우는 00중대도 함께 참가를 하기 시작 했는데 그래도 청룡부대 본부의 야간 방어를 위해서는 다른 중대들과는 달리 작전을 하다가도 오후가 어느 정도 되면 먼저 철수를 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이러다보니 00중대는 본의 아니게 전투력이 떨어지게 되었던 것은 물론 대대작전이 있을 때도 참가하는 데만 의의를 두었을 뿐 실질적인 전과는 달리 거둘 방법이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상부의 기대는 전연 그러한 처지를 아랑곳 하지 않았고 계속 전과가 없는 중대장으로써는 항상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개미도 여왕개미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병정개미가 있듯이 00중대에도 중대장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고민을 풀어주는 부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1968년 11월의 어느 날 청룡본부 담당의 수사관으로부터 수사보고서가 한 건 올라왔는데 그 내용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말하자면 노획품 창고에 00중대가 적을 사살하고 노획했다는 노획소총이 한 정 들어왔는데 총의 종류는 M-16이며 총 번을 조회해 보니 바로 00중대 자신들의 총이라고 했다.

 

물론 베트콩들도 미군들로부터 노획한 M-16소총을 소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지?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거기다 더 아연했던 것은 연이어 담당 수사관이 알아서 보내 온 00중대의 그 총과 연계 된 전과에 대한 엉터리 시나리오였다.


나는 청룡부대 외곽에 있는 00중대장 0 대위를 즉시 불렀다.

 

0 대위는 자기 동기생 중 가장 빨리 중대장을 나간 사람이며 내가 임관 후 기초반 교육을 받았을 때 우리 소대장을 했던 사람일 뿐 아니라 내 친구들의 친구였기 때문에 나는 이미 내가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부터 서로가 아는 사이였다.


늠름한 몸매에 새까만 얼굴을 하고 권총을 찬 채 뚜벅뚜벅 헌병대 수사과로  걸어 들어오는 0 대위가 내 눈에 띄었다.

 

“수고가 많구먼.”

 

문으로 들어 선 그에게 내가 앉은 채 먼저 인사를 하자

 

“응. 바쁘지?” 하는 말만 하고는 편하게 의자에 앉으라는 내 손짓도 아랑 곳 없이 그저 서 서 서성거리기만 했다.

 

“우선 앉아서 땀이나 좀 닦으시지”

 

미소를 지으며 내가 던지는 말에는 그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야, 수사과장. 이거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

 

안 절 부절 못하고 있는 그에게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언성을 약간 높였다.

 

“이봐라 중대장. 내가 받은 보고로는 00중대 중대원이 다낭에 나가 미군의 총을 슬쩍 긴바이(남의 것을 훔친다는 해병대의 비어) 한 모양인데 그래 그걸 자기 총과 구별을 못 해 긴바이한 미군 총은 자기가 갖고 자기 총은 전과한 총이라고 보고를 해? 명색이 그 이름을 자랑하는 00중대의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 또 거기다 시나리오를 만들어 전과 보고까지 올렸으니 원...”

 

0 대위는 서성거리다 잠시 앉았던 의자에서 다시 벌떡 일어나더니 또 내 앞을 서성거렸다.

 

“야, 이거 어떻게 하지? 그래 어떻게 해?"

 

나는 아무래도 되도록이면 빨리 분위기를 바꾸어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는 좀 더 목소리를 높이면서 단호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야, 정신 차리고 좀 가만히 앉아 있어. 내가 어떻게 해볼게. 아직 헌병대장에겐 보고도 안 했어”


물론 나는 소총 소대장의 애환을 이미 경험했던 사람이지만 지금 내 앞의 0 대위는 소총 중대장으로써의 애환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만약 내 스스로가 최 일선의 전투를 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법에 따라 혹은 규정에 따라 처리를 해 버리면 그 뿐이겠지만 사투를 벌리는 사람들에게는 곧잘 말 못할 사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나로서는 내 스스로의 판단이 옳건 옳지 못하건 간에 사건으로는 처리를 하지 않기로 이미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0 대위가 보는 앞에서 노획품 창고를 담당하는 수사관과 통화를 했다.

 

“아, 하 중사! 노획품 사건은 불문에 붙이고 00중대에서 직접 누가 올 테니까  미군 총과 00중대 총을 서로 바꾸어 주도록 창고에 얘기를 잘 하고 노획품  대장의 총 번호도 수정하도록 해줘”

 

전화를 끊고 나자 0 대위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야..... 고맙다”하고는 내 앞에 자기 손을 불쑥 내밀었다.

“중대장이나 잘 마쳐, 그래도 너거 동기생 중에는 선두주자 아이가”

하고는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나는 들어 올 때의 모습과는 달리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0 대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보통 때와는 매우 다른 믿음직스러움을 느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