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19) 밤과 낮의 열기

머린코341(mc341) 2015. 6. 1. 05:30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19) 헌병수사과, 밤과 낮의 열기

 

소총 소대장을 마치고 헌병대로 원대복귀를 한 후


가끔씩 흘러나오는 한 밤의 비명 소리는 잠을 설치게 했다.

하필이면 MIG(군사 정보 대)본부가 헌병대와 거의 붙어있었던 터라 베트콩들이나 그 용의자들에 대해 고문을 할 때면 으레 그 비명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었고 특히 여자의 비명 소리가 조용한 적막을 깰 때는 더욱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한 번은 밤늦게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더 참지를 못하고 자정이 가까웠는데도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런닝셔쓰에 바지만 주워 입은 채 내 전령을 데리고 아예 그 현장으로 가 구경을 했다.


MIG의 그리 크지 않은 부대 안에 들어서서도 별로 달갑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은 눈에 뜨이는 몇몇의 대원들 모두가 검은 월남인들의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전연 해병대 대원들이라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을 뿐더러 아예 계급장이 없다보니 누가 사병이며 누가 하사관이며 장교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었던 것이 매우 기분에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와 내 전령이 런닝셔쓰 차림으로 한 밤중에 남의 부대를 불시에 불청객으로 방문을 하게 된 것이 또한 예의가 아닌 줄은 알았으나 그래도 MIG대원들은 평소 나를 보아왔는지 대충의 눈인사는 하는 것 같아 나도 눈으로만 잠시잠시 답례를 했다.


내가 우리 청룡부대의 MIG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8개월 전쯤 그러니까 1968년 1월말 경부터 시작 되었던 적의 구정공세 직후 내가 막 5대대 27중대 소총소대장이 되어 치열한 전투를 하고 다녔을 때 떠돌고 있었던 소문 때문이었다.


당시 적의 치하에 들어갔던 호이안 시내에 우리 MIG요원 두 명이 적정을 살피기 위해 은밀히 투입 되었는데 운이 없게도 그들이 그만 포로로 잡혀 여러 월남인 용의자들과 함께 호이안 시청의 마당에 우선 수용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호시탐탐 탈출을 노렸던 두 요원은 함께 기회를 포착하고 담벼락을 넘어 탈출을 했는데 다행이 한 대원은 성공을 했으나 다른 한 대원이 그만 팔에 총을 맞아 실패를 하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정신적으로 자극 시켰던 것은 적들이 포로로 잡았던 그 MIG 대원 한 명을 총 맞은 팔에 붕대를 감게 하고 앞장을 세운 후 우리 청룡부대 각 중대가 주둔해 있을 만한 곳으로 종일 끌고 다닌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큰 정신적 충격을 주었고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한다는 절체절명의 심리를 더욱 고조시킨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그 당시 소총소대장으로써의 내가 가졌던 심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마 해병대 전 부대 대원들의 결심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을 한참 잊고 있었던 전투의 와중에 더욱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3~4개월이 지난 어느 날 포로가 되었던 바로 그 MIG요원이 뜻밖에도 0대대 앞에 월남인의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는 사실이며 더구나 돌아온 그 대원의 첫 일성이 “베트콩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라는 것이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펴졌던 것이다.


말하자면 적이 심리전의 일환으로 그 대원을 돌려보냈다는 결론이며 결과적으로 그 심리전의 노림수가 전연 지휘관들이나 지휘자들의 신경을 안 건드리고 사병들의 사기에 대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말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 때는 장교들이 그것을 걱정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다시 돌아온 그 대원은 어떤 수사기관에 의해 즉시 한국으로 보내졌었다는 후문이 있었으나 그 이상의 얘기는 알 수도 없었거니와 알 필요도 없었던 적이 있었다.


조그마한 방에는 요원 두 명이 한 사람의 남자 베트콩 용의자를 두고 심문을 하고 있었다.

두 요원 중 한 사람은 하사관 같아 보였고 덩치가 크게 보이는 다른 한 사람은 장교 같아 보였는데 두 대원의 특징은 모두가 살기가 등등한 가운데 눈에 핏발이 서 있는 것이었다.


별로 유창하게 들리지는 않았으나 월남어로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용의자에게 질문을 퍼부었고 대답이 시원찮을 때는 가끔씩 둘 중 한 사람이 번갈아가며 매우  납작한 동선가닥으로 만든 고문 도구의 손잡이를 쥐고 어깨며 등을 후려쳤다.

 

용의자는 그럴 때마다 손이 묶인 채 비명을 질러대며 아픔을 참느라 안간힘을 다 쓰고 있는 것이 매우 애처로워 보였다.


고성과 매질이 계속 반복 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순순히 자백을 하지 않아서였는지 여러 손가락에 엉성하게 생긴 가락지를 끼우고는 선이 연결 된 EE-8군용전화기의 발전기를 잠깐씩 돌렸다.

 

용의자는 그럴 때 마다 전기가 온 몸으로 통했는지 아예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으 으으~”하는 신음 소리를 뱉어가며 마치 연탄불 위에 올려놓은 오징어처럼 몸 전체를 반사적으로 오므렸다.

 

잠시 후 나는 내 마음이 매우 혼란스러워 지고 있음을 느끼고 더 이상의 진행 장면은 보지 않은 채 그만 바깥으로 나와 버렸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한낮의 열기를 식힌 해변의 밤바람은 시원함을 더하는 것 같아 나는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헌병대로 되돌아 왔다.

 

침대에 누워 어영부영 잠을 청하던 나는 자정이 지났는데도 전화벨이 울리고 있어 매우 짜증스러우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네, 구 중위입니다”

“응. 아직 안자고 있었구먼, 나 0대대장이야”

“네, 주무시지도 않고 왼 일이십니까?”

 

나는 부드러운 그의 말투에도 긴장을 풀지 못 했다.

 

“아, 이 사람아 상황이 언제 있을지 모르는데 한 밤중이라고 잘 수가 있나?”

 

웃음을 띠고 하는 그의 말투에 나는 이제 사 겨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네, 그렇지요. 수고 많으십니다. 대대장님”

“실은 미안하네. 이 밤중에 전화를 해서. 내가 전화를 한 건 말이야 내일 참 오늘이 되었구먼... 점심을 우리 대대에서 나와 함께 할 수 있겠나 싶어 물어보는 거야”

“네, 특별한 일은 아직 없습니다. 출발 전에 전화를 드리고 열한시 반쯤 들어가겠습니다.”

“응, 알았어. 그럼 그 때 봐”

“네, 수고 하십시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웬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느낌이 별로 나쁘지는 않아 이유도 묻지 않고 쾌히 승낙을 해 버렸던 것이다.


0대대장은 누구 못지않게 작전 능력이 매우 뛰어난 분이라 평소 내가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대대장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볼 적마다 명당 집 자손이라고 농을 곧 잘 했다.

 

물론 그 당시는 아직 그가 월남에 오기 전의 일이었지만 내가 소대장을 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한 번은 수륙 양용차 위에 덩그렇게 앉아 작전 중 개활지를 지나다 200m 전방쯤에 있는 숲과 가옥이 있는 동네를 보고

“분명히 저 곳에는 스나이퍼(저격병)가 나를 노리고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옆 사람에게 말을 건 냈다.

 

왜냐하면 오른쪽에는 내 통신병의 안테나가 서 있고 왼편으로는 미 해병대 엥그리코맨의 무전기까지 안테나가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그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덩치 큰 내가 중대장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 할 것 같이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약 스나이퍼가 내 왼쪽의 심장을 향해 총을 쏜다면 거리가 만만찮아 총은 원래 약간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먹는 법이라 그렇다면 그 오차로 내 왼쪽 옆에 붙어있다 시피 한 엥그리코맨의 오른쪽 팔에 맞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잠시하고 사방을 한번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타당!’ 하는 총소리와 함께 내 옆에 있던 엥그리코맨의 오른팔이 공중으로 '획~ ‘ 치켜져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총알이 벌써 팔을 관통 했던 것이다.

 

순간 수륙 양용차 위에 타고 있던 나와 대원들은 잠시 엎드려 적정을 살핀 후 곧 뛰어내려 뒤따라오던 대원들과 함께 숲 속에 있는 가옥들을 향해 집중사격을 가하며 돌진해 들어갔는데 역시 스나이퍼가 재빨리 달아난 후라 아무 소용이 없었던 적이 있었다.


후일 그 소문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여러 가지 떠돌던 얘기들을 들었던 0대대장은 그 때부터 나를 볼라치면 으레 대전차 지뢰가 터져도 살아남았고 스나이핑에도 살아남은 사람이니 그게 바로 명당 집 자손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농담을 가끔씩 했다.


다음 날 0대대 식당에서 점심을 얻어먹은 나는 대대장을 따라 자기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 크지 않은 방안에 에어콘이 있긴 했어도 방안에 미리 준비된 와인을 먹어서인지 얼굴에 흐르는 땀을 자주 닦아야만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대대장은 잠시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낭에서 맥주나 술은 얼마든지 미군들로부터 얻어 낼 테니 그 다음의 처리를 내가 책임지고 원만하게 처리 해 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빙그레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미 해병대 CID 대원인 헤스란 놈의 패거리들이 우리 청룡부대를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실 상 헌병대에서 조차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이 녀석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고 또 이 녀석들은 사진이나 무비카메라로 현장을 아예 찍고 돌아다녔기 때문에 만약 이 녀석들에게 걸리는 날에는 나중의 감당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리고 내가 다낭에서 처음 헤스란 놈을 만났을 때도 그러한 사진들을 잔뜩 보여주면서 일일이 설명을 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 더욱 난처했다.


대대장은 내가 가타부타의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계속 미소만 짓고 있자 다음에는 나를 나무라듯 “야~ 너는 갖다 주어도 아예 못 먹을 사람이야...” 하고는 넌지시 약을 올렸다.

 

그러나 결국 우리 두 사람은 “생각을 한 번 잘해봐”라는 말과 “네, 알겠습니다.”라는 짧은 말로 만남의 마무리를 했고 그 후 나는 이것을 아예 없었던 일로 묻어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나는 0대대 대대장과 한 번도 서로 통화를 하거나 대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는 못 했으나 3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분에 대한 존경심은 결코 변함이 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