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18) 헌병수사과, 어느 대원의 자살
헌병대 수사과 앞에서
2.헌병대수사과
(1)어느 대원의 자살
(2)밤과 낮의 열기
(3)각양 각색의 대대장들
(4)해병대 긴바이
(5)자폭
(6)탈영
(7)난동
(8)본토 영어
(9)양주와 안주
(10)장군의 아들과 살인 사건
(11)20만 불은 누가 먹었나?
(12)씨레이션과 어느 중대장
(13)집단 강간 살인은 누가했나?
(14)짧은 인연
(15)만감의 교차
(1) 어느 대원의 자살
내가 막 8개월에 걸친 보병 전투부대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헌병대 수사과장으로 원대복귀 해 처음으로 접한 사건이 바로 이 소총 소대원의 자살 사건이었다.
1968년 9월의 어느 이른 아침이었다.
수사과 대원이 곤히 잠들어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방금 신고가 들어왔는데 보안부대에서 청룡부대 본부로 가는 길목 약 300m 거리의 해안가 어느 지점에 사병 한 명이 자신의 총으로 가슴을 쏘았는지 철모를 깔고 앉은 자세로 M-16의 총구에 몸을 의지한 채 그대로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즉시 수사계장을 대동하고 신고자와 함께 해안을 따라 그 현장으로 걸어서 출동을 했다.
이미 죽어 있는 사병은 새벽안개가 자욱한 해변의 모래 끝자락 그러니까 풀 섶이 육지를 향해 막 시작되는 지점에서 바다를 향해 얌전히 철모를 깔고 고개를 떨 군 채 앉아 있었는데 모래땅을 의지한 M-16의 개머리판과 왼쪽 가슴을 지탱하고 있는 총구가 그 시신의 자세를 흐트러지지 않고 떠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심장을 향해 총을 쏘았는지 그 후 코로부터 흘러 내렸던 많은 피가 밤새 해변의 찬 공기에 응고 되어 마치 딸기 쨈으로 만든 고무줄처럼 코에서부터 모래 바닥까지 이어져 그대로 정지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혹시라도 철모 아래 어떤 폭발물이 장치되어 있을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우선 로프를 가져오라는 지시를 했다.
먼저 사진을 찍은 후 오라를 걸어 약간 멀리서 시신을 옆으로 당겨 뉘여도 결국 폭발물을 장치한 흔적은 없어 수사계장에게 현장의 사진을 더 확보하도록 하는 한편 소지품 검사를 철저히 하고 또 소속부대가 어딘지도 확인해 보도록 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우선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자살이 분명 해 보였지만 결국은 부검을 하는 것이 필수적인 하나의 절차였다.
검찰관(그는 유명한 법조인으로써 명성을 떨쳤으나 정치 자금법 위반과 결부 되어 곤혹스러운 일을 당했지만 내 머리 속에는 매우 훌륭했던 사람으로 각인 되어있다) 서 중위와 함께 의무대로 옮긴 시신을 검시한 결과 결국 사인은 자신이 자신을 겨냥해 쏜 M-16 실탄 한 발이 죽음을 불렀던 것이며 그 사유에 대해서는 더욱 자세한 조사가 필요했다.
0대대 0중대 0소대 소총수였던 그 해병은 당초부터 부모를 일찍 여의고 당숙의 집에서 자란 사연이 많은 입장인데다 포항에서 얻은 심한 성병까지 겹쳐 깊은 고민을 하고 있던 중 당 일 간신히 전방부대에서 청룡부대 본부 의무실로 나와 치료를 마쳤는데 그 후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 그만 죽음을 택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전투에 여념이 없어 차마 치료를 자주 할 수 없었던 그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입장이었지만 그토록 죽음에 이를 정도의 개인의 신상에 무관심했던 0중대 중대장과 소대장에 대해 심한 질책을 했다.
당시 파월 되는 해병대 장병들은 흔히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는 위압감으로 포항에서 훈련을 받기 직전 또는 직후에 사창가를 찾는 일이 흔했고 우리가 부산에서 수송선을 타고 월남으로 이동 중에도 배안에서 어떤 대원이 심한 임질을 앓고 있다는 미 해군 위생병의 보고를 내가 직접 받았던 일이 있었다.
나는 전쟁터에 나가 있을 때나 가기 직전에도 여자를 함부로 밝히면 반듯이 사고가 나더라는 6.25의 전쟁을 직접 경험했던 집안 어른들의 주의가 다시 한 번 머리에 떠오르는 한편 내 자신 비위가 그렇게 약한 편이 아닌데도 그 사건이 있은 후로는 특히 딸기 쨈만 보면 그 자살 현장에 응고 되어있던 고무줄처럼 늘어진 피가 자꾸만 머리에 떠올라 매우 오랜 세월 동안 딸기 쨈을 회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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