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15) 대 용궁작전의 숨겨진 얘기

머린코341(mc341) 2015. 5. 9. 18:09

보전 협동 작전

 

1968년 6월 11일에 감행한 우리 청룡부대의 용궁작전은 늘 상 해오던 중대 단위의 작전과는 다른 대 공격작전이었으며 단시일에 승리로 이끈 매우 특징적이며 효과적인 작전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성과를 지금에 와 다시 자축을 하자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뒤안길에서 전개되었던 마치 코미디 같은 한편의 진실을 얘기하려는 것이 의도라면 의도라 하겠다.


물론 그 당시 나의 위치가 제 5대대 27중대 1소대장이었기 때문에 중위에 불과한 내 계급이나 소총소대장인 내 직책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할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나는 그 어떤 장교들 못지않게 이미 적의 구정공세를 시작으로 연속 된 5개월간의 전투들을 치룬 다음이었고 특히 용궁작전이 벌어졌던 디엠반 빈수안 지역은 적의 대대적인 은거지였기 때문에 나는 이미 이 지역에서 수차례 적들과의 접전을 했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이 작전의 바로 첫 공격에서도 여단장은 물론 2명의 대대장과 7명의 중대장 그리고 19명의 소대장들과 800여명의 대원들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최 일선에서 공격을 했던 두 명의 소대장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어떤 직책의 사람들보다 더 적나라하게 용궁작전의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얘기들은 아래의 순서에 따라 구분을 하여 전개하려하며 이 사실을 얘기하는 나의 의도가 결코 우리 스스로를 폄하하자는 뜻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동시에 다만 승리의 뒤안길에 묻혀 있었던 진실을 전하려 할 따름이라는 것을 미리 말해 두고 싶다.

 

(1) 작전의 개념
(2) 평소의 적정
(3) 1차 공격의 실패
(4) 2차 공격의 중단과 3차 공격

 

(1) 작전의 개념


용궁작전이 있기 전 5월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막 내가 소대를 이끌고 우리 근무 중대의 동북방 숲 속으로 야간 매복을 위해 살금살금 진입을 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바로 우리가 매복을 할 예정지 부근에서 “쏴아~ 쏴아~” 하는 매우 짧고도 큰 소리와 함께 짙은 오렌지 불빛이 하늘로 치솟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다낭 비행장을 향해 발사한 소련제 장거리 로켓이 분명했는데 나도 말로만 들었지 적이 로켓포를 발사하는 장면을 직접 보기는 이 때가 처음이었다.


월남 제 2의 항구 도시 다낭은 미 해병대의 전방 주력부대를 위한 모든 지원부대는 물론, 미군의 전투 비행단이 있었기 때문에 특히 전투 비행장에 대한 적들의 로켓포 공격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로켓이 발사 된 이 지역 일대를 좀 더 얘기 하자면 적들의 구정공세가 있었던 직후 지난 2월쯤에도 우리 27중대가 적의 일개 공병중대가 있다는 중심부로 바로 겁 없이 수륙 양용차를 앞세우고 들어갔다가 마치 두부를 칼로 잘라 놓은 듯한 적들의 교통호를 보고 깜짝 놀랐던 일이 있었고 급기야는 수륙 양용 차의 체인이 지뢰에 끊어지는 통에 야음이 오기 전 수리를 마치고 얼른 그 곳으로부터 빠져 나오느라 매우 당황 했던 적이 있었다.


더구나 징을 울려대던 적들의 갑작스런 기척은 순간적으로나마 우리를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 시켰고 또 내가 지휘하는 1소대가 첨병 소대가 되어 개활지를 먼저 건넜을 때는 불시에 적의 공격을 받아 논바닥에 노출 된 채 완강한 반격으로 숲 속의 적들을 제압했던 아슬아슬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는 0대대의 0중대가 그 동북쪽 언저리에서 미 해병대 작전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블라킹(차단 작전)을 나갔다가 의외의 기습을 받아 중대 병력 중 거의 일개 소대 병력이 적들로부터 낭패를 당한 적이 있었다.

 

중대장이 총상을 당하고 소대장도 한 명이 전사를 했던 불운의 전투였으나 문제는 우리의 용감성이 결여 되었던 결과는 결코 아니었고 그 것은 대나무 숲에서의 무전기(당시는 2차 대전 때의 C-10을 사용) 불통과 갑작스런 공격에 포복 반격을 하다 그 예민했던 M-16소총의 약실에 모래 먼지가 끼는 통에 그만 총알이 나가지 않아 생겼던 일이었다.


결국 작전의 개념은 이러한 청룡부대와의 악연을 철저히 응징함은 물론 그 지역 적들의 대대적인 지상 및 지하 은거 지들을 철저히 분쇄하고 장악함으로써 다낭 비행장을 표적으로 하는 로켓포의 발사를 저지 시키고 부차적으로는 철조망을 가설해 계속 로켓포의 유효 사정거리를 적들로 하여금 주지 않겠다는 것이 미 해병대와 한국 해병대의 야심 찬 기대였다.

 

(2) 평소의 적정


작전이 시작 되던 날 우리는 아침 일찍 공격선으로 집결하기 위해 도보로 중대 진지를 떠났다.

 

미 해병대 수륙 양용 차 두 대를 앞세우고 터벅터벅 따라가는 우리는 그 날의 공격작전이 크게는 걱정 되지 않았다.


5대대 3개 중대와 0대대 3개 중대 그리고 특공 중대까지 모두 7개 중대의 병력이 공격선에 집결을 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만하면 적들도 아무리 방어를 굳건히 하고 있다 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쉽게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월맹 정규군들과 지방 베트콩들이 뭉친 병력들의 결사 항쟁이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마음 한 구석에 깔려있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총탄이 난무하는 장면이 떠오르곤 하여 되도록이면 걱정을 지우려 애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공격선이 있을 먼 하늘을 바라보며 왠지 이상한 생각이 잠시 들어 관측 장교 이 소위를 불렀다.

 

“이 소위, 어떻게 포사격 하는 소리가 영 안 들리는 것 같아. 이 중요한 작전에 말이야”

“아까 이미 했는데요 뭐, 못 들었습니까?”

 

이 소위는 나를 힐끗 쳐다보며 되묻고 있었다.

 

“야, 이럴 때는 좀 많이 퍼부어야  하는 것 아냐?”


나는 사실 매우 불만스러웠다. 그래도 명색이 적이 완강히 버티고 있는 대 작전이라면 충분한 포격과 폭격으로 미리 불바다를 만들어야 보병들의 희생이 적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야, 얼마든지 공짜로 주는 포탄인데 그래 아껴서 가져갈래? 포병들은 전부 기합들이 빠졌어!”

“하, 그런 말 마십시오. 짜빈동 전투도 우리 포병들이 결국은 적을 다 잡은 거 아닙니까?”

“야, 그건 보병이 죽도록 고생해서 몰아 놓은 거 포병들이 이삭 주은거지 뭐”

 

이 말에 이 소위는 기가 찼는지 껄껄껄 웃었다.

 

“짜빈동 전투 때 관측 장교님이 구 중위님 대학 동기라면서요?”

“응, 말만 들었어. 나보다 먼저 임관했다는데 해병대 와서 한번도 본적은 없어”

“구 중위님은 또 이 대위님하고도 학교 동기라 그러시고... 그러면 좀 더 일찍 해병대로 왔으면 적어도 소대장은 안하고 있을 거 아닙니까?”

“응,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내 족보가 좀 이상하다 이거지? 원래 내 인생이 완행인생이라 그저 그런 것이라고 생각 하면 돼”

 

이 소위와 나는 고향이 같아 평소에도 별로 허물이 없는 얘기들을 가끔씩  나누었는데 나는 오늘따라 묵묵히 걷는 것 보다는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걷는 것이 더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라보이는 전방에는 미 해병대 팬텀기 두 대가 폭격을 잠시 하는 것이 보였으나 그 것도 우리가 작전을 할 지역으로부터는 약간 벗어난 것 같아 미 해병대의 또 다른 작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몇 개월 전 우리 5대대 단독으로 이 지역에서 대대작전을 했을 때는 우리 포병대대의 포 지원은 물론 미 해병대 팬텀기들의 에어스트라이크와 전투함의 함포사격까지 모두 동원해 공격을 했던 일이 되살아나 내가 자꾸 지원 사격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있지는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번 용궁작전의 대상 지역은 대략 디엔반 군청을 기점으로 북동쪽으로 가는 1번 국도의 4키로 정도의 지점과 디엔반 군청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538번 도로의 3키로 정도의 지점을 끝으로 L자를 만들고 그 끝과 끝을 이어서 그 가운데 들어오는 지역이 적들이 평소 장악하다 시피 하여 준동하고 있는 지역이며 주로 다낭을 향해 로켓이 발사되는 곳도 이 지역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으로써는 피 아간에 서로가 양보하기 힘든 지역이었다.


그리고 적들은 우리 청룡부대에 밀리면 1번 국도의 북동쪽으로 넘어가고 미 해병대에 밀리면 1번 국도의 동남쪽으로 넘어 들어와 우리 5대대와 1대대 지역으로 이동을 했다.


더욱이 동북쪽 해안 가까운 곳에는 미 해병대와 자 매 결연을 맺은 나병환자 촌이 있어 특히 베트콩들이 숨을 수 있는 성역의 역할을 했고 또 적들은 행동반경을 더 넓혀 해안가 5대대 본부와 큰 사구를 남북으로 하나 두고 경계를 하고 있는 큰 마을까지 들락거리기 때문에 사구의 끝자락 5고지에 자리를 한 27중대가 항상 예의 주시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형편이었다.


이럴 즈음 관측장교 이 소위는 중대장이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내 옆을 냉큼 떠나 버렸기 때문에 나는 섭섭하면서도 좀 더 작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적들이 자신들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곳을 쉽게 내 줄 것인가?

 

평소 적들은 마치 그 심장부에서 피가 뻗어 나가듯이 야간이면 이동을 해 538번 도로를 공격하는가 하면 우리 근무 중대도 25중대도 27중대도 심지어는 청룡부대(여단)본부까지도 집적이거나 공격을 해온 전력이 있지 않았던가?


내가 자꾸만 불안해 지고 있는 것은 대대장 이상 최고 지휘관까지의 분위기가 혹시라도 해병대의 7개 중대가 일시에 밀어 붙이는 작전에 누가 감히 맞서랴? 하는 자만의 심리가 혹시나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선 우리 포병대대의 지원 포사격과 미 해병대의 공중 폭격이 너무 소홀하게 처리했다는 사실이 내 마음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적정에 대한 최근의 어떤 정보도 가질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이 지역에서의 작전을 통해 얻었던 경험으로는 적들이 자신들의 심장부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리게 될 것이나 우리의 대대적인 공세에는 쉽게 무너지거나 은밀히 도주를 할 것이라는 매우 안이하고도 아전인수 격인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하면 한편으로는 미리 아군의 포사격이나 공중 지원이 너무 미흡하게 느껴져 결코 안심할 일은 아니라는 걱정스러운 면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3) 1차 공격의 실패


숲과 숲 사이 300미터가 약간 넘는 개활지를 하나 사이에 두고 동남쪽에는 우리 청룡부대의 7개 중대가 횡대로 펼쳐져 있었고 서북쪽 방향으로는 적들이 숲과 개활지를 갈라놓은 2미터가 약간 넘어 보이는 높이와 200미터 길이의 제방을 자신들의 외곽 방어선으로 하여 진을 쳐 우리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우리는 특공중대만 두 대의 미 육군에서 파견 된 탱크를 앞세우고 다른 모든 중대가 두 대씩의 미 해병대 수륙 양용 차를 앞세웠기 때문에 수륙 양용 차의 수는 모두 열 두 대가 되었다.


그러나 맨 좌측에 위치했던 특공중대는 제방이 끝나는 부분으로 진격해 들어가야 했으므로 제방 너머의 깊숙한 곳까지 계속 탱크를 진입 시킬 수 있었으나 다른 모든 중대는 적이 버티고 있는 제방의 높이 때문에 그 앞까지만 수륙 양용 차를 이용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탱크와 수륙 양용 차 모두 합해 열네 대의 기갑 차들이 우리 앞에 횡대로 널어서 그 위용을 자랑하듯 요란한 소리로 엔진을 튠업 해가며 분주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과히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내가 승차해 지휘할 수륙 양용 차 위에만 원래 있어야 할  경기관총 대신 바로 쓰지도 못할 106미리 직사포와 포탄이 실려 있어 나를 매우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더욱이 날씨가 워낙 뜨거워 포탄 케이스에서는 이미 콜 탈이 끈적끈적하게 녹아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적의 로켓이나 실탄이 잘 못 맞아 함께 자폭하는 꼴이나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섰다.

 

그러나 그 육중한 106미리 직사포를 지금으로써는 내려놓을 시간이 없어 그대로 싣고 전진을 하기로 했는데 이것은 후에 공격을 하는 동안 두고두고 나를 걱정스럽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H-아워(공격 개시 시간)는 09시 30분이었다.

 

우리 27중대의 우측에는 25중대가 맨 끝으로 있었고 우리 좌측으로부터는 26중대와 0대대의 3개 중대가 차례로 있었으며 맨 좌측에는 특공 중대가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맨 우측 25중대 수륙 양용 차 두 대가 H-아워(공격개시시간)도 되기 전인데도 우렁찬 굉음을 내면서 먼저 앞으로 갔다 뒤로 물러났다 마치 맹수가 먹이를 보고 달려들 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어 역시 이 지역에서 몇 달 전 적에게 당했던 복수를 하기 위해 무척 칼을 갈고 있구나 싶은 인상을 받았다.


오전 09시 30분. 일제 공격의 신호가 떨어졌다.

 

우리 27중대의 우측 수륙 양용 차에는 1소대장인 내가 전령과 통신병 그리고 7명의 대원들과 함께 상단에 탑승을 했고 내 좌측은 항상 차분한 2소대장인 김 소위가 우리 1소대와 같은 형대로 승차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중대장은 3소대의 선두에 자리를 잡고 내가 탑승한 수륙 양용 차의 후미를 따라 소대장들을 통제하며 전진을 할 참이었다.


공격 신호와 함께 우리 27중대의 수륙 양용 차 두 대는 뒤에서 병력들이 따라 올 수 있도록 천천히 출발을 시작했고 차츰 속도를 높여 나가려던 참에 나는 우리 중대의 좌측과 우측의 다른 중대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의외로 나와 2소대장 김 소위의 수륙 양용 차만 처음 횡대로 섰던 7개 중대 대열에서 벗어나 앞으로 전진 하고 있고 나머지 모든 중대는 그대로 공격선에서 더 앞으로 계속 전진하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맹수가 포효를 하듯 튠업을 해가며 횡대의 모든 탱크와 수륙 양용 차는 앞으로 나가는가 싶으면 뒤로 물러서고 뒤로 물러섰는가 싶으면 앞으로 나갈 듯한 모습만 취하지 막상 공격선으로부터 계속 전진을 하고 있는 수륙 양용 차는 우리 밖에 없었다.


나는 무엇인가는 잘못 된 것이라 생각하고 얼른 내가 탄 수륙 양용 차의 기갑병에게 즉시 후진해 뒤로 물러서라는 명령을 하는 한편 중대장에게 보고를 했다.

 

“중대장님. 공격 시간인데도 모두 전진하지 않는데요?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만 전진하고 있어 잠시 뒤로 빼고 있습니다.”

“구 중위, 아니야 그래도 우리는 전진을 해야지! 우리가 계속 가면 다른 중대도 뒤따라 올 거야”

 

순간 나는 어리석은 판단이라는 느낌도 들었으나 어디까지나 명령이었기 때문에 “네, 알겠습니다.”하고는 미 해병대 기갑병에게 다시 전진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막상 100미터쯤 전진을 하다보니 아직도 7개 중대 중 오로지 우리 27중대만 전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고 내 좌측에서 나보다 조금 더 앞으로 전진을 했던 2소대의 수륙 양용 차는 이미 적의 집중사격을 받다가 잠시 후에는 로켓포를 맞았는지 흰 연기가 수륙 양용 차의 상단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위에 탔던 대원들의 꼿꼿했던 머리가 모두 아래로 구부러져 잠시 꼼짝도 않는 것을 보는 순간 드디어 필사의 전투가 다시 시작 되었구나 싶은 생각으로 빠져 들었다.


2소대의 수륙 양용 차가 로켓을 맞고 잠시 멈추어 서 있을 때도 우리는 계속 앞으로 전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 앞쪽으로부터 집중 사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쀼~웅 하던 꼬리가 긴 총알의 지나치는 소리가 이제는 순식간에 “뿅 뿅 뽕” 하는 매우 짧은 소리로 바뀌어 나는 이미 많은 총알들이 내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더... 조금 만 더... 수륙 양용 차가 제방과 더욱 가까운 거리에 가면 재 빨리 하차를 해 일단 제방에 몸을 숨길 수가 있을 텐데...“ 하고 생각 했을 때였다.

“아이쿠~”하는 소리가 내 옆에서 들려 얼른 돌아보니 내 전령인 윤 해병이 배를 움켜쥐며 고꾸라져 있었다.

“소대장님, 맞은 것 같습니다.”

 

나는 항상 믿음직스러웠던 윤 해병의 가련한 목소리가 어쩐지 기분에 거슬렸다. 아마 위기에 처한 소대원 모두를 지휘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라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이미 적의 외곽 방어선인 제방이 20미터도 채 남지 않은 것 같아 나는 응사에 열중하던 대원들과 수륙 양용 차의 뒤를 따르던 대원들을 보며 얼른 제방으로 이동해 바짝 몸을 붙이라고 명령을 했다.

 

윤 해병도 수륙 양용 차에 남지 않고 나를 따라 뛰어 내려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함께 제방에다 몸을 붙인 윤 해병은 총알이 배를 덮고 있는 방탄조끼의 아랫부분과 겉옷을 비스듬히 치고 지나가 큰 상처는 모면 했다는 말을 하고는 아직도 허리를 바로 펴지 못한 채 숨을 크게 쉬어 보였다.


먼저 제방에 몸을 붙인 나는 즉시 수신호로 수륙 양용 차는 물론, 뒤에서 우리를 뒤따르던 3소대 병력과 그 속의 중대본부 병력을 모두 되돌아가게 하고 로켓을 맞고 제방으로부터 조금 멀리서 엉거주춤하고 서 있었던 2소대 수륙 양용 차로 눈을 돌렸다.

 

뒤늦게 우리 옆자리로 붙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 오는 2소대 대원들은 적들이 쏘는 집중 사격에 더러는 총을 맞아 뒹굴고 더러는 제방으로 뛰어 와 몸을 숨기기도 하는 것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 잠시 스스로 쾌감이 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순간적인 느낌이었지만 나는 내가 왜 이런 이상한 쾌감을 이런 순간에  느끼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마음속에 남겨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내라는 존재 자체가 남과는 달리 절체절명의 순간을 이미 벗어났다는 상대적인 만족감이나 성취감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인간 본연의 심성에 존재하는 선 이외의 악이라는 그늘진 어떤 심리로부터 오는 것일까?


나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제방에 이미 붙은 1소대와 2소대 대원들은 제방 너머로 계속 수류탄을 던져 넣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방에 몸을 붙이고 있는 우리 소대가 어떻게 도로 무사히 물러나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이런 와중에서도 여유를 가지기 위해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다.

 

온지 얼마 안 되는 1분대장 김 하사가 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보자  매우 불안한 모양이었다.

 

“소대장님! 제방을 넘어 얼른 공격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뭐, 공격? 우린 지금 고립되어 있어!”

 

나는 무모한 그의 판단이 객기처럼 들렸다.

 

“가만있어! 잠시 뒤 내가 신호를 하면 모두 출발했던 쪽으로 죽어라 후퇴 하는 거야.”

“그러면 빨리 나가야죠.”

“야, 무조건 후퇴하면 뒤통수 맞아죽어! 잠시만 기다려“

 

나는 담배를 몇 모금 더 빨아 당긴 후 꽁초를 집어 던지고는 그제서야

 

“야, 모두 들어! 하나, 둘, 셋 하면 수류탄 가진 거 모두 제방 안으로 던져! 그리고 동시에 50m 전방 가로로 막고 있는 논두렁까지 뛰어서 일단 몸을 숨겨! 그리고 또 하나, 둘, 셋 하면 다음 논두렁까지 뛰고 그것을 반복한다.”

 

내 말이 떨어지자 수류탄을 남기고 있던 대원들은 즉시 수류탄의 핀을 뽑았다.  내가 “하나, 둘, 셋!”하고 크게 소리를 쳤다.

 

우리는 수류탄을 던지자 말자 뛰기 시작했다. 실로 모두가 사활을 건 줄달음이었다.

 

이미 폐허가 되고 바싹 말라있는 논두렁은 우리가 몸을 숨기기에는 너무 낮았으나 그래도 한결 없는 것보다는 나은 은폐물이 되어 주었다.

 

다시 “하나, 둘, 셋!” 귓전으로 비켜가는 총알 소리는 으레 들어야만 하는 소리 같았다.


드디어 모두가 적의 집중 사격을 점점 멀리하며 무사히 아군들이 대기하고 있는 공격 출발선까지 빠져 나올 수가 있었다.

 

우리는 모두가 일어 설 수가 없을 정도로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고 더위에 숨이 차다 못해 입에다 거품을 물고 의식이 가물거리고 있는 대원들도 더러 있었다.


통신병이 중대장의 무전을 받으라고 아직 숨이 가빠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나에게 수신기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손으로 드러누운 채 수신기를 팽개치고는 다시 하늘을 쳐다보며 숨을 고르기에만 열중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일어난 뒤 나는 바로 중대장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중대장은 상기된 얼굴을 하고 대대장과 무전기를 통해 매우 흥분된 어조로 긴 통화를 하고 있었다.


고립 되었던 중대원들 중 다행히 전사자는 없었지만 2소대에서는 부상자가 여섯 명이나 생긴데다 어리석게도 다른 중대들은 진격을 하지도 않았는데 1소대장인 나와 2소대장인 김 소위에게만 먼저 들어가라고 명령을 했던 것이 중대장으로써는 못내 후회스러웠던 모양이었고 그보다는 공격 시간이 되었는데도 명령을 어기고 움직이지 않았던 다른 중대장들이 몹시 원망스러웠던 모양이었다.

 

나는 내대로 화가 풀리지 않아 무전을 끝낸 중대장에게 불평을 했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저 개새끼들은 오늘 우리 중대가 싸우다 피 보는 거 구경 나온 새끼들입니까?”


중대장은 차츰 흥분해 가는 내 목소리에 덩달아 더 흥분을 하며

 

“대대장한테 이러면 우리 중대는 즉시 철수 하겠다고 했어. 나쁜 자식들...”

 

평소 과묵하던 중대장의 폭발 된 흥분과 성난 얼굴이 오히려 나를 진정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여섯 명의 중상자를 낸 2소대장 김 소위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하늘이 도우셨는지 내가 지휘하는 1소대는 전상자가 한 명도 없었는데 운 없게도 2소대에서만 여섯 명이나 부상자가 생겼으니 2소대장의 기분이 알만도 했다.


잠시 후 헬리콥터를 타고 처음부터 작전을 지켜보고 있었던 여단장(청룡부대장)이 대대장들에게 불호령을 내렸다.

 

“야, 이 자식들아. 해병대 역사에 이런 건 없어! 니들이 해병대야? 30분 후 5대대 27중대만 빼고 모두 다시 공격 한다. 두고 볼 거야!”


나는 그 당시 대대장으로부터 중대장에게 흘러나온 얘기를 직접 전해 들었던 것 중 일부만을 표현 하는 것이지만 여단장의 성격으로 보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꾸중이 대대장들에게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지은 죄가 컸던 대대장들은 또 죽일 듯이 중대장들을 다그쳤을 게 뻔했다.

 

우리는 나무 그늘 아래서 이제는 우리를 제외한 6개 중대가 횡대로 펼쳐 완강한 적의 방어선을 뚫는 실전을 구경하는 관람자가 된 셈이었다.

 

그래도 나는 막상 공격의 대열을 다시 가다듬고 있는 다른 중대원들의 모습에서 매우 측은함을 느끼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살기가 등등한 모습을 새삼 발견할 수가 있었다.


소설에서나 읽을 수 있었던 살기라는 것이 생사를 건 일전을 앞두고 풍겨 나오는 저러한 것이로구나... 그리고 그 숱한 전투를 할 때마다 나로부터도  저러한 살기를 다른 사람들이 느낄 수가 있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작전을 마친 후 어느 대원이 어느 순간에 내가 너무 무서워 보였다고 해 웃고 말았던 적이 있었는데 인간은 누구나 절체절명의 순간에 접어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되는구나 싶었던 적도 있었다.


드디어 또 다시 공격 신호가 떨어졌다.

 

이번에는 열 대의 수륙 양용 차와 두 대의 탱크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순식간에 앞으로 돌진해 제방에 코를 박다 시피 했고 수륙 양용 차의 상단에서 제방을 뛰어 넘는 해병들과 제방 앞에 다른 대원을 엎드리게 한 후 등을 밟고 뛰어 넘어 들어가는 해병들의 기세는 과히 해병대다운 장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특공중대가 공격하는 맨 좌측 제방의 끝머리는 모래가 약간 언덕을 이루고 있었는데 모두가 벌 떼처럼 넘어 들어가던 중 한 대원이 적탄을 맞았는지 총을 쥔 손을 힘없이 뒤로 내 팽개치며 경사진 언덕 아래로 쓰러져 구르는 모습은 바로 영화의 한 장면 같아 보였다.


이제 개활지에는 수륙 양용 차만 우리 쪽으로 되돌아오고 있을 뿐 모든 공격부대가 제방 안으로 넘어 들어가 그 넓은 개활지가 썰렁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 이렇게 쉽게 끝이 나는 것을...”

 

우리는 그 동안 흥분 했었던 기분을 모두 털어 버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채 10여분쯤이나 지났을까?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 할 안타까운 장면이 멀리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제방을 넘어 들어갔던 모든 대원들이 마치 벌 떼처럼 도로 제방을 넘어 필사의 후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적의 완강한 내곽 방어로부터의 역공에 견디지 못해 도로 후퇴하는 것이라고 추측을 했다.

 

특히 맨 좌측의 특공중대 쪽에서는 함께 들어갔던 두 대의 탱크 중 한 대가 빠져 나오지 않았다.


**뒤늦게 빠져 나오게 된 탱크의 지휘자는 동두천에서도 근무를 했던 적이 있다는 뚱뚱하고 덩치가 크며 화를 잘 내는 흑인 육군상사였는데 그 후 소문에는 이 전투에서 실명을 했다고 들었다 **


결국 이렇게 하여 쉽게 생각했던 1차 공격은 실패로 끝이 났고 우리 27중대는 명령에 따라 다음 날 공격을 위해 중대의 임시 진지를 지금의 공격선으로부터 약 1km 정도의 동북쪽 방향으로 옮겼다.

 

(4) 2차 공격의 중단과 3차 공격


우리 27중대가 다시 자리 옮겨 야영을 하게 된 곳은 방어를 하기에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지형지물도 방어하기에는 별로 적합하지 못 한 것 같았고 특히 나무가 별로 없어 왠지 불안하고 게름직한 느낌이 들었다.

 

전령과 통신병이 나와 함께 소대 본부를 이곳으로 할까 저 곳으로 할까 하고 잠시 망설이고 있는 사이 갑자기 ‘꽝!’ 하는 소리가 불과 30여 미터의 전방쯤에서 들려 왔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왁자지껄한 대원들의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소대장님! 부비트랩이 터졌습니다!”하고는 어떤 대원이 내 앞으로 뛰어 오며 보고를 했다.

 

나는 폭발음의 크기로 보아 많은 소대원이 죽거나 다쳤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매우 염려스러웠다.

 

현장으로 가 부비트랩에 부상을 입고 주저앉은 채 위생병을 기다리고 있는 두 대원을 보니 다행히 모두 팔과 손에만 파편으로 다친 경상자들이었다.

 

아마 왕고참인 쌍둥이 녀석이 키 낮은 소나무에다 은밀하게 매달아 놓은 수류탄 부비트랩을 잘 못 건드려 옆에 있던 대원까지 부상을 당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즉시 중대장에게 약간은 과장 된 보고를 하고는 미 해병대 엥그리코맨에게 메드백(사상자 수송) 헬리콥터를 불러 달라고 하여 다낭으로 후송을 시켜 버렸다.


지난 1월 30일 경 구정공세가 막 시작 되어 27중대가 호이안의 시가전에 투입 되었을 때 불행히도 외곽의 어느 지역에서 우리 1소대는 소대장 이하 3개 분대장과 몇몇 대원들이 모두가 죽거나 부상을 당했던 끔찍한 전투 피해가 생겼었다.

 

그러나 내가 소대장으로 부임한 이후 6개월 동안은 그렇게 많은 작전과 전투를 하고 다녔어도 유일하게 우리 소대만은 아직 죽거나 다친 사람이 한 사람도 생기지 않았었는데 이제 다시 부상자가 생기다니 혹시라도 무슨 새로운 조짐은 아닌가 하고 나는 매우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 사실은 새로 부임한 대대장이 와서부터는 왼 만한 경상자들은 대대본부에서 자대치료를 하도록 했기 때문에 나는 혹시라도 부상을 당한 두 대원을 자대 치료를 하라는 지시가 있을까 싶어 우선 중대장에게 하는 보고부터 약간은 과장을 했던 것이며 또 두 대원 모두 귀국도 얼마 남지 않은 터라 좀 더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어 그 동안의 노고에 보답하고 싶어 모두 다낭의 미군병원으로 후송을 시켰던 것이다.

 

어제의 작전이 피곤해 일찍 잠에 빠져서인지 다음 날은 이른 아침에 잠을 깼다. 아직은 해가 뜨기 전이라 시원하기는 했으나 그 보다는 오늘의 작전 명령이 어떻게 떨어질지가 더 걱정이었다.

 

만약 어제 공격에 성공을 했더라면 지금쯤은 걱정할 일도 없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하는 생각을 하니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지고 모두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또 다시 적진을 향해 공격을 한다면 이번에는 또 어떤 위험이 내게 닥칠지 알 수가 없는 일이라 매우 마음이 무거웠다.

 

실은 신임 중대장이 새로 부임해 처음으로 경험을 해보는 큰 작전이라 내가 계속 1소대장으로 따라 나오긴 했지만 중대 내에서의 서열도 내가 중대장 다음이라 만약 내가 참가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면 이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아도 무방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 지역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또 중대장이 심적으로나마 나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나로서는 이번이 내 일생의 마지막 작전이라는 의미와 중대장을 도와야겠다는 순수하게 느껴지는 그 의리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었다.


드디어 명령이 떨어졌다.

 

적의 교두보인 제방을 무산시키기 위해 이번에는 우회를 하여 제방이 끝나는 북동쪽으로부터 진입을 하되 바로 적의 심장부인 내곽을 목표로 공격을 한다는 것이었다.

 

선두는 3대대 11중대에서 맡기로 하고 우리 27중대는 그 뒤를 따라 바로 진입을 하기로 했다. 물론 우리 뒤에는 25중대와 26중대가 따랐지만 특공중대는 따로 다른 명령을 받았는지 아니면 너무 후미에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통 그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선두에 선 중대들의 진입이 예상 외로 잘 움직이지 않고 있어 진입 보다는 정지한 상태에서 사주 경계를 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잠시 후 3대대의 선두 중대인 11중대에서 지뢰와 부비트랩에 희생자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전달이 왔다.

 

이미 적들은 우리가 우회를 할 것이라는 작전에 대비를 한 탓인지 마치 농사를 지은 듯이 지뢰밭을 만들어 놓아 접근이 그렇게 용이하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는 선두 중대에서 11명의 희생가자 생겼다는 더 구체적인 소문이 들렸다.

 

급기야 대대 본부에서는 오늘의 2차 공격은 포기하고 내일 다시 정면 돌파의 3차 공격을 할 것이라는 전달을 해왔다.


1차 공격이 있은 지 3일 째 되던 날.

 

7개 중대는 다시 1차 공격 때와 같이 미 해병대의 탱크와 수륙 양용 차를 앞세운 보전협동의 공격작전에 들어갔다.

 

나는 1차 공격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우리 소대가 고립되거나 죽어라 후퇴를 해야 할 일이 없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매우 자신감이 앞서고 있었다. 대형은 1차 공격 때와 다름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전과는 다르게 H-아워가  되기 무섭게 적의 저항도 아랑곳없이 마치 중대끼리 서로 경쟁이나 하듯 모든 중대가 앞을 다투어 돌진했다.


3시간이 채 걸리기도 전에 그 넓은 지역이 7개 중대에 의해 완전히 포위가 된 것은 물론, 급기야 지하 진지로 숨어들었던 적들은 항복을 하거나 야음을 틈타 탈출을 기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장기 포위망은 청룡부대 본부를 방어하기 위해 철수를 해야 하는 특공중대를 뺀 나머지 6개 중대에 의해 이루어졌다.

 

밤이면 도주로를 찾기 위해 지하 동굴에 숨어 있던 적들이 이곳저곳으로 사격을 가해 왔고 적들의 근거리 공격을 위해 만든 조악한 마다리 포도 몇 차례 우리 중대로 날라 들었다.

 

다음 날 오후 청룡부대(여단)본부는 즉시 계획 된 작전에 따라 미 해군 해안시설대대의 대형불도저 10대와 미 해병 공병대의 불도저 2대를 우리가 포위하고 있는 지역으로 투입했다.


불도저는 모두 우리 대원들이 호위를 하면서 작업을 했고 그 순서는 우선 나무부터 쓰러뜨린 후 결국은 땅 속의 두더지를 잡아내 듯 차례차례 거미줄 같이 뻗어있는 동굴을 모조리 파헤치며 끝까지 대항하는 적들을 발견해 사살을 했다.

 

적들은 손에 총이나 수류탄을 쥔 채 불도저의 삽날에 찍혀 나오기는 해도 결코 항복을 하고 나오는 수는 없었다.

 

아군의 불도저는 완강히 구축 된 적의 지하 탄약고는 물론 의료시설까지 철저히 초토화 시켰고 계속 포위망을 좁혀갔던 3대대와 5대대는 약 2주 동안에 걸쳐 100여명에 가까운 적을 사살하고 많은 개인 화기와 공용화기를 노획하는 한편 122미리 로켓포의 기지까지 분쇄 할 수 있어 드디어 승리의 자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로써 용궁작전은 당당한 해병대 전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고 그 결과 내가 소속된 5대대 27중대는 해안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5고지의 진지를 25중대에 인계한 후 적들이 은거했던 바로 그 지역에 우뚝 새로운 중대 진지를 구축하여 적들이 다낭 비행장을 향해 늘 상 공격하던 로켓포로부터 미군들이 해방이 될 수 있는 기초를 다듬어 주었다.


*****나중에 사 이해 할 수 있었던 H-아워의 해프닝은 열두 대의 수륙 양용 차와 두 대의 탱크 중 처음 맨 앞으로 불쑥 전진했던 0대대 0중대의 수륙 양용 차 한 대가 이상을 일으켜 미 해병대 기갑병이 잠시 공격선 가까이로 후진을 시켰는데 이것을 본 바로 옆의 소대 수륙 양용 차도 무슨 일인가?하고 어리둥절한데다 보조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따라서 후진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본 다른 소대도 그리고 또 다른 중대들도 혹시 공격 명령이 바뀐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해 27중대를 제외한 모든 중대가 그만 처음의 공격선으로 후진을 했다는 것이다.

 

잠시 후 후진했던 중대들이 계속 공격 명령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27중대가 홀로 들어가다 공격을 당해 곤경에 처해 있었고 바로 후진해 후퇴 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대승을 거둔 용궁 작전에만 이런 뒤안길의 얘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터에서의 해프닝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이해 해주기 바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