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20) 각양 각색의 지휘관들

머린코341(mc341) 2015. 6. 1. 05:35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20) 헌병 수사과, 각양 각색의 지휘관들

 

 

해병대 제2여단 청룡부대 본부


전투대대의 대대장은 계급으로 보나 위치로 보나 전투부대의 꽃일 뿐만 아니라 많은 부하를 거느리는 대대의 최고 책임자다.

 

그러나 실은 최종 결심을 해야 하는 대대장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조언과 역할은 더욱 중요했다.

 

어떤 대대장은 전쟁을 해 본적이 없는 참모들의 말에만 의존해 최 일선에서 싸우는 장병들이 느끼기에도 매우 답답한 작전 명령만을 계속 하달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대대장은 전투와 관련되는 한 직접 사소한 일까지 챙겨가며 효율적인 아이디어로 운용을 했고 또 어떤 대대장은 유창한 영어로 평소 우리가 생각지도 못 했던 화력지원까지 미 해병대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아가며 작전을 펴기도 했다.


우리 중대가 용궁작전 이후 새로운 요새로 이동을 한 뒤로는 우리 대대뿐만이 아니라 다른 대대의 작전이 벌어질 때도 종종 우리 방석(중대 진지)에 전방 지휘소를 설치하는 수가 있어 이미 부중대장이 된 나로서는 대대장들과 참모들을 배려하느라 자연히 접촉이 잦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한 번은 어떤 대대장이 자기 통신참모에게 장비가 부족한 가운데 통신 운용의 묘안을 지시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는 과연 대대장이 다르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통신장교가 자리를 떠나자마자

“대대장님은 통신장교도 아닌데 통신 운용을 그렇게 잘 아시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겁니까?”하고 물었더니 대대장은

“참모에게만 의지하지 않고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해보는 거지”하고는 껄껄 웃었다.

 

또 어떤 대대장은 대대작전을 할 때마다 너무 요란스러울 정도로 항공 폭격을 많이 해 그 비결을 물었더니

“에어스트라이크(공중폭격)는 미 해병대 팬텀기들이 다른 지역에 폭격을 나  갔다 모두 폭탄을 소진하지 않고 돌아오는 수가 있어. 나는 그 것을 지나  가면서 모두 우리 작전지역에 떨어뜨려 달라고 미리 교섭을 해 놓는 거지.  그래야 또 아군의 피해를 줄일 수도 있고...”라는 대답을 했다.

 

나는 대대본부마다 미 해병대 항공대위가 엥그리코맨(항공, 함포지원 통신병)의 책임자로 나와 있는 것을 떠올리면서 역시 그 친구들을 구슬리면 무엇이 나와도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1968년 10월 어느 날이었다.

전방의 0대대 0중대에서 한 밤중 적들과의 교전이 벌어졌는데 결국 전사자는 없으나 아군 세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는 보고가 0대대에 나가 있는 담당수사관으로부터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그 내용에 미심쩍은 구석이 많아 담당수사관에게 0중대 포반을 잘 점검해보라는 지시와 함께 특히 박격포탄의 장약관리가 지난 우기 철에 어떻게 이루어졌고 지금의 관리 상태는 어떤지를 철저히 점검을 해보라는 말을 덧 붙였다.


다음 날 오후, 나는 지난 밤 교전이 벌어졌었다는 0대대 대대장이 직접 나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는 대원의 말을 듣고 수화기를 들었다.

 

나는 이미 담당수사관이 0대대 0중대 포반 대원들을 조사해 사고에 대한 이실직고를 얻어낸 내용을 보고 받았기 때문에 0대대장의 전화를 직접 받기가 매우 껄끄럽게 생각 되었다.

 

말하자면 내가 예상했던 대로 당일 밤에 있었던 작전은 0중대의 가짜 시나리오에 의한 접전보고였던 것이다.


그 내용의 실상은 지난 우기 철에 장약 관리가 소홀해 일부 소량의 장약에 습기가 차 있는 줄도 모르고 본의 아니게 박격포로 야간 요란사격을 하다 그만 낙오 탄이 생겨 아군의 청음초들을 다치게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0중대 중대장은 이 사실을 그대로 대대를 통해 청룡부대(여단)본부로 보고 한다는 것이 매우 난처한 일이라 고심 끝에 대대장을 설득해 함께 시나리오를 만들고 마치 적과의 교전 상황인 것처럼 꾸며 청룡부대 본부 작전부서까지 밤새 법석을 떨게 한 후 자체 요란사격에 의해 부상을 입었던 대원들을 마치 적과의 교전에서 부상을 입은 것처럼 처리를 했던 것이다.

 

“네 구 중윕니다.”

“나 0대대장이오. 지난 일 때문에 전화를 했는데...”

 

나는 최 일선 전투대대의 대대장이 이제 겨우 중위인 나에게 혹시나 비굴스러운 모습을 보일까 내 스스로가 걱정스러워 먼저 요점을 빨리 말 해버렸다.

 

“대대장님 수고 많으십니다. 내용은 잘 알고 있고 저도 전투중대에서 소대장을 해보았기 때문에 이해를 합니다만, 일단 상황이 벌어지면 참모님들은 물론 여단장님께서도 주무시다 일어나 상황실에서 꼬박 밤을 새우신다는 것도 아시죠? 아직 헌병대장께 보고도 안한 사건이라 저가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만.. 이  후 이런 일이 또 있을 경우는 보고를 안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아~ 구 중위 정말 고맙소.  내 우리 대대 피엑스 장을 내일 보내겠소.”

“아닙니다. 보내지 마십시오.”

“그럼 전화 끊소”

“수고 하십시오”

 

나는 내 처리가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떠나 최 일선 대대장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만족했다.

 

물론 헌병대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사실이 무례하기도 했지만 목숨을 걸고 말단 소총 소대장을 했던 내가 아니라면 최 일선 대대장이나 중대장들의 애환을 누가 알아주랴 싶은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마치 풀 먹인 옷이 이슬에 젖은 듯 후줄 그래한 모습의 상사 한 사람이 수사과 사무실 앞으로 어슬렁거리며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원래 헌병대는 상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또 친구를 찾아 온 어떤 사람인가? 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그 상사는 먼저 나를 보고 정중히 경례를 한 뒤 내 책상머리에 다가와 허리를 약간 굽힌 채 공손하게 귓속말처럼 말을 건넸다.

 

“0대대 대대장님께서 보내서 왔는데요.”

 

나는 그 때서야 0대대장이 어제 전화를 끊기 전에 했던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상사는 내가 무슨 대꾸를 하기도 전에

“과장님, 맥주를 하실 겁니까? 아니면....”

 

나는 예상치 못했던 분위기로 끌고 가려는 상사가 마치 장사 군처럼 느껴져 매우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어제 대대장님께 얘기를 드렸는데 무슨.. 그만 돌아가고...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만 전하시오!”

 

내가 벌컥 화를 내는 바람에 상사는 어쩔 줄을 몰라 하다 얼른 경례를 하고는 총총한 걸음으로 내 방을 나갔다.


물론 대대에서 관리하는 맥주를 얻어 시장에 내다 팔게 되면 2배 정도는 넉넉히 받을 수 있고 절간(채를 썰어 말린)오징어의 경우는 4배 정도가 남는다. 또 여단본부 피엑스의 양주도 얻어서 팔면 꽤 남는 장사가 된다.

 

그리고 술은 박스로 거래를 하지만 맥주나 절간오징어는 거래 단위를 파렛으로 하기 때문에 개수나 포장으로 따지자면 엄청 많은 분량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되도록이면 중대장이나 대대장들을 배려하고자 했던 것은 앞서도 잠시 언급을 했지만 그만큼 전투부대의 지휘관이 되면 나름대로의 고민을 가지고 악전고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과 또 그 것을 누구 못지않게 내가 소대장을 하면서 직접 보아 왔기 때문에 지휘관들에게는 되도록 기회는 줄망정 어떤 부담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내 나름대로 철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