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25 ) 본토 영어 그리고 양주와 안주

머린코341(mc341) 2015. 6. 7. 22:07

"불꽃처럼" (나의 해병대 일기) (25 ) 헌병 수사과, 본토 영어 그리고 양주와 안주

 

월남군 호이안지역 헌병 대장과 보안대장을 초대한 만찬

 

(1) 본토 영어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거의 모두가 미국 상품에 대한 견식이 별로 없을 때였다.

하루는 우리 지역의 월남군 헌병대장과 보안대장을 초대하는 만찬회가 우리 헌병대에서 열렸다.

 

나는 사전에 옷매무새도 고치고 그래도 샤워 후에는 무엇을 발라야겠다는 생각으로 전령에게 로션이 떨어졌는데 가진 것이 있으면 좀 달라고 했다.

 

“과장님 이것 괜찮습니다.”하고 내 놓는 것을 얼핏 보니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병에 붙은 천연색 그림이 그럴싸하고 또 영어로 써 놓은 미제 피엑스 물건이라 매우 좋을 것으로 여겨 약간은 미끈거리는 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대충 얼굴에다 바르고는 손님들을 맞았다.


한참 만찬을 하다 보니 술이 들어가 몸에 열기가 더해지는 것은 물론 처음에도 약간은 그런 느낌이 있었지만 이번부터는 어쩐지 내 손수건을 쥔 손이 얼굴을 닦느라 너무 바빠지고 있었다.

 

“얼굴에 흐르는 땀이 왜 이렇게 미끈거리는 거지? 아마 새로 나온 미제 로션을 발라 그럴 거야.”


나는 내 나름대로 좋게만 생각을 하고 말았는데 행사가 끝나자 방으로 돌아 온 나는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데가 있어 전령에게 아침에 내게 준 로션을 다시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고는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shampoo”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지? 로션의 이름인가?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듣도 보도 못한 단어가 궁금해  얼른 영어 사전을 펴서 찾아보았더니 뭐? 머리를 감을 때 쓰는 세제라나......?


그리고 또 다른 얘기는 27중대에서 내가 처음 소총 소대장을 했을 때 대원들이 보급품을 나누는 것을 보고 매우 흥미 있게 생각 되었던 것이 있었다.

 

“야, 장교담배는 이곳에 모아!”

 

라는 말이 들려 잠시 고개를 돌려 보았는데 윈스톤과 살렘담배를 장교 담배라고 골라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왜 윈스톤과 살렘 담배가 장교 담배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내 경우는 자주 대원들이 피우는 카멜이나 럭키스트라이크 담배와 서로 바꾸어 피우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는 내 전령이 내가 럭키스트라이크 담배를 좋아 하는 것을 보고 염려가 되었던지 넌지시 운을 떼었다.


빨갛고 동그란 담배의 겉표지가 마치 과녁 같아 보이기 때문에 모두가 피우기를 꺼려하는데다 물론 믿을 수는 없지만 어떤 소문으로는 미군들이 전멸을 했는데 시체를 치우다 보니 호주머니 안에 모두 럭키스트라이크 담배가 들어 있더라는 얘기였다.

 

나는 그런 미신에 연연하다보면 전쟁도 못하게 된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 후로 작전에 나갈 때는 몇 번은 다른 담배로 바꾸어 나간 적이 있었다.


또 나는 대원들이 씨레이션으로 식사를 할 때 ‘꿀꿀이!’라고 하는 말이 들려 잠시 무슨 말인가 하고 쳐다보았는데 많은 대원들이 영어로 써 놓은 것만 보고는 그 내용물을 알 수가 없어 깡통을 흔들어 보고는 마치 의성어와 의태어처럼 대부분 이름을 지어놓고 서로 내용물에 대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한 대원에게 “야, 꿀꿀이가 뭐야?”하고 물었더니 삶은 콩과 토마토 주스를 넣은 것이 마치 꿀꿀이 죽 같을 뿐만 아니라 흔들어 보면 꿀렁이는 소리가 그와 비슷하게 나기 때문에 그 이름을 꿀꿀이로 지었다고 했다.

 

그리고 영어를 모르는 신참일 경우는 그 깡통의 내용물들을 크기나 무게로 알아내거나 흔들어 보고 알아내는데 까지 약간의 시간은 걸린다고 했다.    


(2) 양주와 안주


그 당시에는 조니 워커 스캇치 위스키 정도를 알면 촌놈은 면하고 그 중에서도 블랙라벨과 레드라벨 정도를 알면 꽤나 유식한 사람으로 인식을 할 때였다.


막상 월남을 와보니 조니 워커 양주쯤이야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고 또 싼 피엑스 가격으로도 살 수가 있어 전투부대의 분위기와는 달리 후방부대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흔하게 즐길 수가 있었다.


헌병대에서는 조니 워커를 마실 경우 군용 냉동 닭고기를 보금부대에서 20마리가 든 박스를 채로 얻어 와 , 물론 삶아서도 먹었지만 그 것을 마치 생선회처럼 썰어 초고추장 대신 타바스코 핫 소스로 버무려서는  소고기 육회나 되는 것처럼 먹었다.


처음 파병이 되어 그 독한 조니 워커를 한 낮 뜨거운 열기 속에서 한국에서 소주 마시듯 서로 권 커니 자 커니 했다가 큰 낭패를 보았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에 우리는 저녁 늦게 어느 정도 서늘해지면 야참으로 한 상 벌려 마시는 수가 왕왕 있었다.


그런데 다낭을 나가 미군 피엑스를 가보면 매우 진풍경을 발견 할 수가 있었다.

 

남루한 군복을 입고 총을 옆에다 둔 채 땅바닥에 앉아 있는 미 해병대 대원들의 모양새는 틀림없이 최 일선의 소총수들이 잠시 외출을 나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들은 누구를 왜 기다리고 있을까?

 

보나마나 그들은 바로 한국 해병대 대원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참이었다.


원래 미군들은 자기들의 피엑스라 해도 술은 사지 못 하게 규정되어 있었는데 반해 우리는 그들과는 달리 어떤 제한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한국 해병대 대원이 혹시라도 나타나면 술을 사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마냥 기다리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