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179기 황석영의 해병이야기 -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64>
침상 배치 붙기, 나이롱 취침…기합도 갖가지
머리를 땅에 박고 두 손은 뒷짐 지고 거꾸로 엎드리는 자세를
해병대에서는 '원산폭격'이라고 하는데,
'폭격 실시'라는 명이 떨어지면 즉각 '실시'하고 복창하며 꼴아박는다.
기합받아 본 중에 제일 기발했던 것은 '침상 배치 붙기'라는 것과
'나이롱 취침', 그리고 '모기 회식'이었다.
'침상 배치 붙기'는 주로 면회를 다녀온 날 실시하기 마련인데
전반기가 끝날 무렵부터 훈련병의 가족 면회가 허가된다.
나도 어머니가 누나와 함께 고기붙이를 장만해 가지고 면회를 왔었다.
면회를 가서 가족을 만나면 고기는 물론이려니와
보통 때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떡이나 빵 종류처럼
배부르고 부피 큰 먹거리들을 찾게 된다.
가족들과 눈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보따리를 풀자마자 아귀아귀 먹는데 돌아올 때에는
구령과 군가가 건성으로 나올 정도로 군기도 빠지고
배가 잔뜩 불러서 구보도 못할 지경이 된다.
하사관들은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밤에 자다가 급체로 사고가 나는 경우도 겪었으므로
내무반에 돌아오자마자 배 속에 가득 찬 것들을 반납받으려고 작정한 것 같다.
면회에서 돌아온 녀석들을 세워 놓고 일장훈시를 한 뒤에
'침상 배치 붙어'를 실시한다.
이층 철침대의 모서리에 군홧발을 올리고 거꾸로 엎드려뻗쳐를 실시하는데
삼분이 못 가서 명치 너머까지 가득 찬 음식물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한다.
오물을 치우고 일주일 변소 청소의 서약까지 받아낸 다음에 잠을 재운다.
사실 곁에서 겪고 본 일이지만
어느 병사는 면회 나가서 건빵을 다섯 봉이나 바짓가랑이에 숨겨 들어와
밤중에 침낭 속에다 까 넣고 물도 없이 우적이며
밤새껏 씹어 돌리다가 급체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나이롱 취침'은 사지를 허공으로 번쩍 쳐들고
겨우 궁둥이 꼬리뼈만을 땅에 붙인 동작으로
'자장가'를 부르게 하는 기합인데
두 다리가 땅에 닿거나 머리 뒤통수가 뒤로 떨어지면
그대로 '군기봉'의 타작이 떨어진다.
'모기 회식'은 빤스 바람에 선착순을 시키고는
풀밭 한가운데에 팔다리를 벌린 채 세워 두는 동작이다.
어둠 속에서 모기들이 신나게 달려들어 마음대로 피를 빤다.
온몸이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지만 움직이면 끝장이니까 이를 악물고 참는다.
정신없이 쫓기면서 온갖 일을 당하고도
돌아서서는 원망 한마디 없이 킥킥 몇 번 웃으면서 세월이 간다.
드디어 신병이 두 명쯤 올라오자 사환 역은 끝났지만
다시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 때에 번화가에서 교통정리를 하게 된다.
복장검사 때마다 곤욕을 치르고 동작이 나쁘다고 몇 시간씩 팔 벌리고 섰거나
꼴아박고 하는 곤경을 치르고 나서 겨우 현장에 나가게 된다.
주요 군용차의 번호를 일일이 외워야 한다.
주요 부처의 해군 해병 장교들의 차에 신경을 쓰지 않고 정지시키거나 경례를 놓쳤다가는 점심 굶고
저녁 퇴근시간 때까지 동작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 처음으로 제법 괜찮은 군대생활이 시작되었다.
진해 해군 통제부 사령부의 문 근무가 시작된 것이다.
정문 말고는 측면에 나있는 문들이 한가해서
차량도 인근 독립 부대의 트럭이나 스리쿼터 정도가 가끔씩 오갈 뿐이었다.
우리는 이런 근무처를 '휴양소'라고 불렀는데
근무자는 하사관 한 명에 사병 세 사람 정도였다.
하사관과 고참이 주로 낮 근무를 하고 두 졸병들은 야간 교대근무를 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글 출처 :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158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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