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179기 황석영의 해병이야기 -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66>
상륙사단으로 전출…파월 부대일 줄이야
초소장은 한숨을 푹 쉬더니 내 앞으로 다가앉았다.
-야 황 수병, 한번만 봐주라. 딱 한번 해봤는데 용코로 걸렸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밖으로 기름통을 싣고 나간 트럭이
물건을 내리다가 감찰반에 걸렸다고 한다.
방첩대와 헌병대가 서로 감시를 하는 셈이었는데
얼마 동안의 화해 기간이 지나고 새 부서장이 오거나 서로 '알륵'이 생기면 가차 없이 입건했다.
희생자가 나온 뒤에 다시 조정 기간을 가졌다가 화해하고 평화가 오게 된다.
그때는 아마도 긴장 기간이었던 모양이다.
-내달에 애가 나오는데, 야야 나는 말뚝 아니냐.
구속은 둘째치고 옷 벗게 생겼지 뭐냐.
너야 제대하면 그뿐인데 한번만 봐주라.
초소장이 졸병인 나에게 자꾸만 봐 달라는 말을 했지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야간근무 중에 잠깐 졸았다고 하면 졸병들은 대강 봐준다.
그러니 니가 잠들어서 몰랐다고 하면 간단하게 끝날 거다.
그가 처음으로 기가 죽어서 사정하는 바람에
나는 딱하기도 하고 으스대는 마음도 생겨서 까짓 거 그렇게 하자고 말해 버렸다.
초소장은 출근 시간에 나타나기로 했지만
아마도 부근 가게에서 조마조마하며 감찰반 출두를 기다렸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야근조와 주간조가 교대하는 여덟시 경이 되자 검은 지프가 나타났다.
그들은 나에게 몇 시부터 근무했느냐를 묻고
다짜고짜 따귀 한대를 올려붙이고는 자대 수사반으로 끌고 갔다.
물론 나는 약속대로 깜빡 잠들어서
무슨 트럭이 언제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버티었다.
역시 출근 시간 무렵에 초소장이 출두했고
그는 간밤에 퇴근하고 집에 있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답했다.
침대 각목으로 궁둥이를 이십여 대 맞았지만 나에게는 별로 할말이 없었다.
초병의 근무태만으로 처벌은 중영창이었다.
초소 이탈은 전시에는 총살감이다.
자대 영창이고 모두 동료들이라 높은 사람들이 출근하는 낮에는 영창에 들어가 앉았고
퇴근하면 나와서 빈둥대는 나날이 이주쯤 계속 되었다.
초소장은 부대 앞의 식당에 돈을 내고 부탁을 해두었는지
저녁마다 순대국이네 설렁탕이네가 들어왔다.
드디어 구금이 풀리는 날이 되어 전속 명령이 떨어졌다.
포항 상륙사단으로 가라는 것이다.
그까짓 골병대와도 작별이었다.
나는 더블 백을 메고 전속 명령서를 지니고 부산을 거쳐서 포항으로 떠났다.
그러나 내가 떨어진 대대가 월남 증파부대로 정해진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가자마자 상륙훈련이 시작되어 완전무장을 꾸려서 엘브이티 배를 타고 동해를 떠돌기도 하고
그맘때에 강원도에 자주 출몰하기 시작한 무장 게릴라를 토벌한다고
산악을 오르내리다가 다시 이듬해 팔월을 맞았다.
우리 대대는 전원이 정글전 특수학교에 입교하도록 결정이 났다.
모두 훈련이 끝난 뒤에 우리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중대 화기반의 로켓포 사수를 맡았다.
중대장이 해사 출신이었는데 훈련 중이던 휴식 시간에
사상계에 발표했던 단편소설 얘기가 나와서
그게 내 작품이라고 말해버렸고 그는 약간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림= 민정기
출처 :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160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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