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179기 황석영의 해병이야기 -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67>
로켓포 부사수가 닭서리 … 철모에 튀겨 먹어
화기반이라고 다 편한 것은 아니고
이를테면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라도 걸리거나 박격포 조에 걸리면
다른 소총수들보다 훨씬 고생이 심했다.
그래서 그런 직무는 보통 덩치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힘꾼들을 지명했다.
기관총의 총신을 메고 어깨에 실탄을 감고 뛰는 것도 힘겹고
쇳덩이 총좌와 실탄통도 보통 무거운 게 아니다.
박격포 조도 포신과 포 받침과 포탄을 운반해야 한다.
그러나 로켓포는 두 사람이 연통 모양의 가벼운 조립식 알루미늄 포신을 둘로 나누어
한쪽 어깨에 메고 슬슬 대열의 뒤를 따라가면 되었다.
고지 공격이나 보전협동으로 다른 병사들이 헐떡이며 뛰어오르고
탱크 뒤를 뭣 빠지게 쫓아다니는 동안에
그늘에 포신을 거치하고 앉아서 적당히 쉬면 된다.
참관 장교가 지나가면서 너희는 뭐냐고 물으면,
'예 로켓포 거치하고 사격 준비 중입니다'라고 한마디 하면 끝이었다.
중대장이 봐준 덕분이었다.
나와 로켓포 사수 부사수로 짝이 되었던 사람은
추장이라는 별명의 얼굴이 새까맣고 코가 매부리코인 같은 기수의 병사였는데
집이 전주 인근 농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중에 베트남 바탕간 작전에서 부비트랩으로
다른 병사들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떨어져 양팔이 날아갔다.
언제나 낙천적이던 그가
판초 우의 위에 피투성이가 되어 헬기로 실려 가면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끊임없이 질러대던 생각이 난다.
나에게 우스개 얘기 한마디 해달라고
휴식 시간이 되면 보채던 키 작고 영리한 인수라는 통신병이 있었는데
그는 나보다 한 계급 높은 상병이었다.
베트남 가는 수송선 안에서도 어떻게 '긴바이(군수품 훔치기)'를 해왔는지
밤중에 배의 취사장에서 식빵과 햄 등속을 슬쩍 해다가 야참을 먹기도 했다.
인수는 매복을 나가다가 뒤에 따라오던 병사가 졸음 때문에
유탄 발사기의 방아쇠를 당겨 유탄이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그대로 발치에 떨어지는 바람에 온몸이 파편에 찢겨서 숨졌다.
정글전 훈련 기간 내내 우리 셋은 단짝패가 되었다.
추장과 내가 가까워진 것은 야간전투 훈련장에서였다.
그는 2인용 텐트를 나와 함께 썼던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배가 고팠고,
밤마다 나란히 드러누워 사회에서 먹던 음식 얘기를 늘어놓곤 했다.
추장은 주계병인지라 무슨 음식이든지 얘기만 나오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입으로 요리해나갔다.
그의 얘기에 빨려들면
드디어 그럴듯한 요리가 나오는 장면에 이르러 우리는 거의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는 보급병과인 데다 사회에서 갖가지 고생을 해본 친구라
맨손 가지고도 입을 달랠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야간전투 훈련장에서 나머지 사흘을 영계백숙으로 포식했다.
추장이 십여 리나 되는 주변마을의 양계장으로 원정을 가서
여섯 마리의 닭을 산 채로 사냥해 왔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우리 분대의 비밀보급창에다 숨겨두었다.
작은 소나무 사이에 구두끈으로 닭의 발목을 매어놓고는 우의를 덮어 놓았다.
분대원들에게는 무차별 급식을 해준다는 약속을 하고 교대로 감시를 시켰다.
우리는 한밤중에 일어나 철모에다 닭을 튀겨 먹곤 했다.
밤에 독도법 훈련이며 야간매복 훈련을 나갔다가
돌아올 제 추장이 먹을 것을 닥치는 대로 보급해왔다.
팔뚝만한 무, 설익은 수박, 햇고구마 따위였다.
추장은 늘 전우의 영양상태를 걱정했다.
그림=민정기
출처 :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1604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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