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179기 황석영의 해병이야기 -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68>
사격장 가는 길에 서있던 여인 알고보니…
하루는 폭우가 쏟아지는 밤인데 추장이 나를 깨웠다.
그는 무릎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판초 우의를 걸치고 있었다.
한잔 빨러 가자.
먹고 튀는 건 자신 없는데.
그는 우의를 슬쩍 쳐들어 보였다.
흙 한번 묻히지 않은 새 군화가 세 켤레나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나는 반듯하게 각이 진 군화의 뒤창 모서리를 만져보면서,
추장이 사단 보급창을 거덜내는 게 아닌가 놀랐다.
오늘 통신대에 워커 보급이 있더라.
통신대는 특수교육대와 길 하나 사이였다.
추장이 내무반의 혼잡 속으로 들어가
새로 지급받은 그들의 군화를 슬쩍 걷어온 모양이었다.
침상 널빤지 밑에 감춰뒀는데,
들킬까봐 하루 내내 밥도 못 먹었다.
추장이 널빤지를 깔고 누워 환자 시늉을 한 것이
그 밑에 들어있던 군화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우리는 비가 퍼붓는 특교대 연병장을 나란히 구보했다.
버젓하게 뛰어가야 동초가 아무 말 없다는 그의 주장이었다.
우리는 철조망을 무사히 통과했다.
개구리 소리에 귀가 멍멍했다.
논두렁을 지나면 한길이 나오게 되어 있었다.
불빛 보이니?
응, 몰개월이다.
몰개월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특교대가 생겨나자 서너 채의 초가가 있던 외진 곳에 하나둘씩 주막이 들어섰는데,
거의가 슬레이트 지붕에 흙벽돌이나 블록으로 지은 바라크들이었다.
비슷한 꼴의 나지막한 집 이십여 채가
울퉁불퉁한 자갈길 양쪽에 늘어서 있었다.
원래의 몰개월 마을은 이킬로쯤 더 가야 있었으나,
이곳을 모두 몰개월이라 불렀는데 바다가 바로 뒤편에서 철썩이고 있었다.
어디서 흘러왔는지도 모를 작부들이 집마다 두세 명씩 기거했다.
낮에는 모두들 깊이 자는지,
과외출장을 나갈 때에 몇 번 지나가보았으나 모래먼지만 뽀얗게 일어나고 있었다.
특수교육대 훈련장은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있었지만
본대 막사는 언제나 한곳에 있어서
우리는 대개는 훈련이 끝나면 돌아와서 머물렀다.
이제 곧 전선으로 떠날 병사들이라 철조망을 넘어
인근 마을로 넘나드는 것을 상부에서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
오전에 전투사격을 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트럭을 타고 상륙사단 남문을 지나 오천 읍내를 가로질러 가는데
신작로 정면에 삼거리가 갈리는 길목에 웬 여인이 서있었다.
트럭들은 줄지어 천천히 돌아나갔고
나는 뒤늦게야 한복 차림의 어머니가 길 위에 서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중에 들으니 어머니는 면회 신청을 했다가
저녁에 과업이 끝난 뒤에야 가능하다는 걸 알고는
먼발치서 군인들 틈에 행여나 자식을 볼 수 있을까하여
길에 나선 참이라고 했다.
내가 트럭에서 상반신을 내밀고 어머니를 향하여 외쳤다.
- 어머니 여기예요!
그림=민정기
출처 :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160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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