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179기 황석영의 해병이야기 -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73>
파월 명령 받은 친구, 총구를 입에 물고 …
내가 그를 본 것은 증파대대로 전속을 갔던 직후였다.
일요일 오전에 남들은 거의 시내로 외출을 나가고
나는 남아서 빨래도 하고 편지도 쓰다가
길 건너편의 매점에 가서 군납 막걸리라도 한 병 사 마시겠다고 길을 건너던 참이었다.
4분의 3톤 차량이 지나다가 멈추더니 누군가 나를 불렀다.
- 어, 저기 황형 아녜요?
나는 군복 입은 그를 처음에는 못 알아보았다.
그가 자기 이름과 민기 이름을 대어서 그제야 가까스로 그를 기억해 냈다.
그는 당시에 베트남에 증파된 해병대 병력의 충원 방식으로 새로 채택된 징집제도로 입대했다.
영어를 하니까 다행히 사단 내의 미 해병 파견부대에 배속되었던 것이다.
그의 근무지는 사단 동문 근처의 미 고문단 막사였다.
나는 주말에 그의 부대로 놀러가곤 했다.
배식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널찍하고 조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에프엠 라디오를 낮게 틀어 두고 독서를 왕성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니 밖에서보다 그와 나는 군대에서 훨씬 많이 만난 셈이다.
특교대에 입대한 뒤에는 어쩌다가 한두 번 보았고 베트남으로 가면서 곧 잊어버렸다.
출라이 전선에서 호이안으로 이동한 뒤에 여단본부 구역에서 어느 행정병을 만났다.
그는 철이의 후배 기수로 고문단실에 근무했던 병사였다.
내가 그에게 내 친구는 잘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 모르고 있었어요? 박 수병님 특교대 입교했다가 죽었어요.
역시 영어가 문제였던 모양으로 특기병을 차출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떨어져
박철은 월남 파병에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그는 특교대에서 훈련을 잘 받아 냈다.
그리고 야간 전투사격의 며칠 동안에 결심을 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사격장에서 엠원 실탄 한 개를 꼬불쳤을 것이다.
아마도 전쟁에 보낼 인원이 아니었다면 검열을 철저하게 했을 테지만
어쨌든 그는 마지막까지 실탄을 잘 보관해 냈다.
내내 잘 지내다가 바로 출동명령이 떨어진 그날
몰개월에 내려가 술을 잔뜩 먹고는 운동장 맞은편 끝에 있는 변소로 가서
안으로 문을 잠그고 엠원 총구를 입에 물었다.
방아쇠에 나무 막대를 걸어 두 발로 당겼다고 한다.
- 부대에서 쉬쉬하며 보안 지킨다고 분위기 냉랭했어요. 오발 사고루 처리했을 걸요.
나는 정신없이 상황에 휘말려 가면서
당연하게 베트남을 내 군대생활의 목적지의 하나로 넘겨 버리고 있었다.
박철의 소식을 들은 뒤에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잔잔한 파문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뒤에 나는 보병에서 빠져 다낭 수사대로 나가면서
진짜 전쟁의 진면목 속에서 철이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수송선에서는 캘리포니아 검은 도장이 찍힌 주먹만한 오렌지의 기막힌 맛과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훔쳐다가 선실에 둘러앉아 퍼먹던 일이 생각난다.
육이오 이래로 미제 물건은 그야말로 천국에서 떨어진 희한한 특산품들이었다.
승선 수당으로 처음 미군 군표를 받아 매점에서 양담배를 사서 피우던 것이며,
좌식 변기에 익숙하지 않은 병사들이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앉아 일을 보는 바람에
언제나 군화 자국으로 더렵혀져 있던 변기 뚜껑이 떠오른다.
필리핀인 선원들이 서커스 같다고 휘파람을 불며 조롱했다.
그림=민정기
출처 :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1609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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