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수기/해병179기 황석영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17회>

머린코341(mc341) 2015. 7. 24. 11:21

해병179기 황석영의 해병이야기 -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77>

콜라 마시고 나오자 `꽝!`
그 가게에 로켓포가 …

 

죽을 고비야 전쟁터를 제 발로 찾아갔으니 언제나 내 주위에 있었다.

나중에 드디어 작전에 나가게 되어서는 더욱 생생하게 죽음과 대면했지만

일번 도로 주변에서도 거의 날마다 우연과 행운의 연속이었다.

우리가 순찰 중에 빈손 마을 부근에 이르면 갈증도 달래고

먼지 구덩이의 더위도 잠깐 피할 겸 하여

들러서 콜라 한 병씩 마시던 작은 가게가 있었다.

 

 

그날도 들러서 물수건을 달래서 얼굴도 훔치고

시원하게 얼음에 채워두었던 콜라도 마시고 나서 자리를 떴는데

빈손 마을의 중심가를 다 벗어나기도 전에 뒤에서 폭발음이 들려서

돌아보니 가게에서 검은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차를 돌려서 멀찍이 세우고 개인화기를 겨누고 다가갔다.

집의 절반쯤이 날아갔고 사방에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부상자들이 꿈틀거리며 고함을 질렀다.

어디선가 근접거리에서 로켓포로 딱 한 방 갈기고 내뺀 것이다.

미군 병사들이 규칙적으로 드나드는 가게를 백주에 노린 게 틀림없었다.

 

나중에 미군들 사이에 '두 발로 걸어다니는 모든 베트남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이 전쟁에 대한 속수무책의 패배를 진작 인정한 것이다.

웨스트모얼랜드 미군사령관의 공식 지침에 의하여

 베트남 전 국토가 '자유발포지역'으로 선포된 것도 그 무렵의 일이다.

어느 날에는 바로 앞에서 질주하던 수송트럭이

불길과 함께 공중으로 치솟는 것도 보았다.

대전차지뢰를 매설했다가 역시 가까운 곳에서

전선 접촉으로 폭파시켰을 것이다.

이런 작은 작전들은 주로 농촌지역의 지방 게릴라들이 수행하는 임무 중 하나였다.

미군 순찰조의 운전자는 대개 두 종류였는데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녀석이거나,

 아니면 머리를 움츠리고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는 조심스럽게 서행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도로에 부비트랩이 있다면 터져 죽기는 매일반일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밀림에서 저격을 해오는 경우라거나

접선으로 매설된 폭탄을 터뜨리는 때에도 전속력으로 통과하면

모면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천천히 차를 모는 녀석이 걸리면

말다툼을 하거나 중간에 내려서 다른 차를 갈아타기도 했다.

가슴에 뭔가 무거운 것이 얹힌 듯한 날에 나를 찾아들었던 불면의 밤이 있었다.

고향에서 좋지 않은 소식을 받았을 때,

또는 포로수용소에서 여자 포로나 소년병들을 보았을 때,

대량살육의 흔적이 남은 밀림 속의 협로를 순찰했을 때라든가,

순찰차 위에 저격받은 아군의 시체를 싣고 올 때,

그리고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파견대의 책임조장인 하사와 나 사이에 있었던 알력이었다.

 

그는 나에게 미군 PX에서 위조카드로

냉장고와 텔레비전 따위를 수없이 사 내오기를 명했고,

모종의 구멍뚫기를 재촉했던 것이다.

구멍이란 보급병들과의 접촉을 의미했다.

그는 우리에게 본때를 보인다는 식으로 아침마다 모래펄 위를 기어가게 했고,

우리들에게 미군 녀석들의 활기있는 사기 속에서 깊은 열등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나는 장교가 되지 못한 것과 작전에 지원하지 않은 것을 날마다 후회했다.

그림=민정기


출처 :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1612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