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179기 황석영의 해병이야기 -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80>
고참이 내게…`우리도 양키처럼 놀아보자`
도대체 적이란 무엇인가.
적에게서는 아무런 인간적인 연민의 정도 느낄 수 없었다니.
그 젊은이들이 나와 똑같은 아시아 사람이면서
나처럼 정을 주고받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역시 나와 똑같이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당시 현장에서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는다.
미군 병사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솔직히 인정을 했듯이,
백인 병사들은 제 고향에서라면 짐승의 우리보다도 못한
야자수 잎과 흙벽으로 만든 농가에서 살며,
먹는 것이라고는 자기네 쓰레기보다도 못한
역겨운 냄새가 나는 괴상한 음식을 먹는 노란 놈들에게
영혼 따위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나는 나중에 미군들이 더러운,
또는 어리석은 아시아인을 멸시하여 부르던 베트남인들의 별칭인 '국'이
우리들에게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국'이란 말 자체가 한국전쟁 때에 미군들에게 퍼진 말이며
이것의 유래는 '한구욱'에서 왔다고 한다.
지금도 미군들 사이에서는 아시아인
또는 원주민을 '국'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모두 간밤에 탬키에 머물러 있었던
베트남 하사관 뉘엔의 운명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었다.
다른 하사관인 카오가 우리와 동행했는데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미 색시들이 바와 사창가에서 많이 사라졌던 것이
결정적인 조짐이었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카오가 앞장서서 그 집으로 갔는데
벌써 베트남 군인들이 와 현장조사를 하던 중이었다.
실내는 수류탄 몇 발이 터진 듯 유리창이 모두 깨지고
냉장고 등속에 파편 구멍이 뚫려 있으며
벽에도 파편이 박혔고,
얼굴과 온몸에 잘디잔 파편 구멍과 혈흔이 덮인
시체 세 구가 시멘트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아마도 밤중에 탁자 앞에 모여 앉아
술을 마시다 당한 모양이었다.
그들 모두가 현지의 베트남 경비병들이었다.
총과 방탄조끼가 바로 옆의 의자에 놓여 있었지만
미처 응사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게릴라들은 저희 민간인들은 하나도 상해하지 않았다.
드디어 뒷문을 열고 뒷마당에 나가자
뉘엔의 시신이 거기에 있었다.
뉘엔은 팬티 차림에 벌거숭이였다.
아마도 그를 벽에 돌려세우고
여럿이서 총검으로 찌른 모양이었다.
등판과 옆구리에 총검 자국이 선명했다.
이것은 내게는 아직은 전장에 대한 예습에 불과했다.
탬키에서 나도 하룻밤을 지낼 기회가 왔다.
같은 순찰조원 중에 나보다 반년쯤 먼저 파견나왔던 고참병이 있었는데
평택의 미군부대에서 노무자로 일했다고 한다.
영어도 제법 잘했고 사람이 요령도 있었지만
무리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래 기수들에게도 친구처럼 대해
모두 그와 함께 근무 나가기를 원했을 정도다. 하
루는 그가 내게 속삭였다.
- 우리도 양키들처럼 탬키 나가서 한번 놀아 보자.
- 그러다 중사님한테 걸리면 어쩔려고 그래요.
- 괜찮아, 그 양반 매 주말에 본대 들어가잖아.
그러고 너 잘 알아둬라.
내달에 우리들 중 몇 사람은 작전에 차출될 거야.
그림=민정기
출처 :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161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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