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179기 황석영의 해병이야기 -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81>
`상`이란 소녀와 하룻밤, 그리고 병가를…
그의 말에 의하면
다음달에 미군과의 대대적인 협동작전이 시작되는데
기지 근무자들을 원대복귀시킨다는 풍문이 돈다고 했다.
그의 이름이 이 아무개였는데
계급이 병장이었으니까 이 병장이라고 해두자.
예전 식으로는 이 선임수병인 셈이었다.
이 병장과 나는 오후까지 근무를 마치고
여섯 시쯤에 저녁도 먹지 않고 서문으로 나가 기다렸다.
부두의 필코에서 일한다는 한국 민간인 아저씨 한 사람이
스리쿼터를 몰고 슬슬 서문 체크 포인트 앞으로 다가왔다.
이 병장은 평소에 그와 잘 아는 사이였는지
번쩍 손을 들어 보였다.
우리는 스리쿼터를 타고 탬키 마을로 나왔다.
원칙적으로는 야간에 탬키 마을 출입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바리케이드가 쳐지는 자정 전까지만
돌아가면 외출은 대개 허용되었다.
특별히 외출 불허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날은
허락이나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이 병장은 민간인 아저씨 모씨를 내게 소개해 주었다.
귀국 기일이 가까워진 이 병장은
그 모씨와 함께 스리쿼터 차로 귀국 준비 돈벌이를 했을 것이다.
모씨가 단골인 듯한 어느 집으로 가자 안에서 기다리던 남자들과
주인 아저씨가 나와서 부지런히 화물칸의 짐을 실어 날랐다.
그것은 베트남 사람들이 더위에
제일 좋아하던 담배인 셀렘과 캔맥주 박스였다.
거래가 끝나고 나서 우리는 안쪽으로 안내되었는데
문 대신에 커튼만 친 칸막이의 방이 여러 개였다.
아오자이 차림의 소녀들 댓 명이 와서 우리 앞에 섰고
우리는 각자의 취향대로 하나씩 지명하여 옆에 앉혔다.
우리는 계집아이들과 서투른 영어와 베트남어로
손짓 발짓까지 겸해 가면서 맥주를 마셨다.
나는 지금도 처음으로
내 상대가 되었던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상'이라고 했다. 무슨 한자말에서 온 이름이었을까.
그녀와 나는 침침한 촛불이 켜진 칸막이로 들어가서
대나무 침상 위에 나란히 누웠다.
밤이 깊어가자 어느 매복지에서 전투가 벌어졌는지
81밀리 박격포로 조명탄을 쏘아 올리는 소리와
자동화기의 사격
그리고 헬기가 날아다니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 정도면 평온한 전선의 밤이었다.
겨우 의사소통을 해보았더니
상의 남편은 어느 전선에 나간 베트남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옮겨다닐 때마다
마누라를 바꿔 치우기도 하고
함께 거느리기도 한다고 그랬다.
상에게는 갓 난 딸 하나가 있는데
부모가 맡아 키우고 있다.
상은 겨우 스무 살이었다.
얼결에 일을 마치고 누웠는데
그녀는 내 얼굴 사방에 입술을 맞추어 주면서 말했다.
-슬립, 슬립, 돈 워리.
내가 가까워진 사격 소리로 불안해진 눈치를 챘는지
그녀는 촛불을 훅 불어 끄고는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한 손으로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어느 결에 깊이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이 병장이 와서 깨울 때까지 우리는 그 자세로 잤다.
며칠 후에 병에 걸린 걸 알았지만
원망스러운 마음은 들지 않았고
약이라도 갖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선에서 이런 일이 일상이나 다름없던 중대에서는
이내 병가를 일주일이나 내주어
나는 주사를 규칙적으로 맞으며
내무반에서 '해골 굴리며' 며칠을 보냈다.
동료 미군들은 이죽거리며 놀렸지만
순찰조장인 중사는 내 관물 검사를 한 뒤에
빳다 열 대를 선사했다.
나는 거북스러운 사타구니와 궁둥이 때문에
어기적거리며 걸었고
미군들은 휘파람을 불며 내 걸음걸이를 흉내 냈다.
그림=민정기
출처 :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1616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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