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179기 황석영의 해병이야기 -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83>
몸 날린 순간 짱, 폭음 … 눈떴으나 귀가 먹통
중간에 볼일을 마치고 일어나서 모래언덕을 뛰어 내려오는데
귓전에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전선에서는 그게 뭔지 본능적으로 알게 마련이다.
나는 얼결에 몸을 날려 모래 바닥에 잽싸게 엎드렸다.
어쩌면 둔탁하기도 하고 수백 개의 유리병이 파열되는 것 같은
'짱' 하는 폭음이 들리고 등덜미에 모랫덩이가 덮어씌워졌다.
나는 한참이나 얼굴을 모래에 처박고 꼼짝 못하고 엎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도 축축하게 젖은 모래가 등 위에 연달아 떨어졌다.
머리를 들어보니 뽀얀 화약 연기와 유황 냄새가 주위에 가득 찼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진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찌개를 끓이던 탄통 뚜껑이 젖혀지면서
김치 쪼가리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꼴을 보고서야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우리 조의 임과 박 병장이 뛰어나오는 게 보였고
그들이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모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그제야 뒤늦게 내가 뛰어 내려오던 언덕을 돌아다보았다.
신기하게도 그곳은 평평해져 있었고
사방으로 날려간 모래가 야자나무 둥치나
벙커 주변 곳곳을 반 나마 뒤덮고 있었다.
우리 분대원들이 달려와 흔들었지만
귀가 들리지 않을 뿐 나는 말짱했다.
우리는 아직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상반신을 낮추고는 개인호 쪽으로 달려가 엎드려 있었다.
한참 뒤에야 상황이 알려졌는데 작전 지원차 나와 있던
바다의 전함에서 오포를 쏘았다고 한다.
아마도 사격병이 좌표를 잘못 짚었을 것이다.
우리는 사정이 알려진 뒤에 언덕이 있던 자리에 가보았는데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내가 한발이라도 늦었고 그곳이 평지였다면
나는 흔적도 없이 날아갔거나
최소한 파편에 찢어졌을 것이다.
부드러운 모래땅이고 높은 지대여서
폭발이 흡수되었고 파편들은 우리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바다 쪽으로 흩어졌다.
한 시간쯤 지나자 내 귀도 서서히 청각을 되찾게 되었다.
우리는 그 구덩이를 쓰레기 소각장으로 활용했다.
아무리 해변의 본부 방어진지라고는 해도
밤에는 언제 어느 쪽에서 적이 침투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중대 병력은 일개 분대씩 교대로 첨병과 초병을 방어선에 배치하고
전방 참호에서 밤을 새워야 했다.
두 번쯤 급습의 밤이 있었다.
맨 앞쪽 초소에 나가 있던 첨병에게서
이상한 기미가 있다는 비상신호인 무전기의 축음이
두 번 짤막하게 들려왔고 비상은 곧장 참호에 전달되었다.
우리는 교통호를 통해 반원형으로 되어 있는
방어진지의 전방으로 이동했다.
모두들 개인화기와 중화기를 제자리에 배치하고
기다렸는데 역시 로켓포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박격포는 낮고 기분 나쁜 휘파람 소리를 내지만
로켓은 먼 데서 사격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부근에서 깡마른 소리로 터진다.
아직 사격하는 병사는 아무도 없다.
적의 사격이 시작되고 위치가 파악되기 전에는
기다려야 한다는 원칙은 초보적인 작전 수칙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박격포로 쏘아 올리는 조명탄이
연이어 하늘에서 터져 주위를 천천히 밝히며 떨어진다.
로켓포가 십여 발 떨어지면
사격 지점이 포착되게 마련이고
대응 포격이 시작된다.
무장 헬리콥터인 건십이 함선에서 출동한다.
우리는 전방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우리 측 포격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머리 위에서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오고
전방의 밀림에 대고 로켓포 사격과 기총소사를 하기 시작한다.
수색 소대가 총검을 꽂고 참호에서 나와 방어진지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은 분대별로 산개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림=민정기
출처 :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1617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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