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군대/세계의 특수부대

<스파이열전> 기드온의 용사들…

머린코341(mc341) 2015. 10. 8. 08:57

<스파이열전> 기드온의 용사들…


'어둠의 제왕' 메이어 다간
 
<※ 편집자주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문 직업 중 하나로 꼽히는 스파이의 이야기는 늘 흥밋거리입니다. 스파이들의 은밀한 작전으로 세계사가 요동한 사례는 적잖이 있습니다. 그러나 첩보세계의 속성상 대부분이 베일에 가려진 상태입니다. 금세기 세계사를 뒤바꾼 첩보 비사의 재조명을 통해 비밀전쟁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스파이열전>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서울=연합뉴스) 김선한 기자 = 지난 1970년대 초 이스라엘 점령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 특히 파타(Fatah) 등 반(反) 이스라엘 무장 조직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 있었다.


자신들과 똑같은 외모와 행동, 완벽한 언어구사 능력을 갖추고 신출귀몰한 침투와 대담한 기습공격으로 엄청난 피해를 준 '샤이렛 리몬'이라는 이스라엘의 초미니 비밀특수부대였다. '닌자'와 같은 이 부대의 지휘관도 공포의 진원이었다.


특히 이 비밀 특수부대를 이끈 이는 의외의 인물이었다. 작은 키(160㎝)에 다리를 저는 메이어 다간이라는 26살 청년이었다. 그에 대해선 그후 온갖 별명이 따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잘 알려진 별명은 단 하나 '어둠의 제왕'이었다.


세계 첩보사에서 '슈퍼맨'으로 알려진 다간은 출생부터 남달랐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1월 소련에서 폴란드로 향하던 열차 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핍박을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가 귀국하던 참이었다.


모사드의 '르네상스 맨' 메이어 다간(AP=연합뉴스 DB)


조부 등 가족 대부분이 대학살에 희생된 그의 부모는 어린 다간을 데리고 신생국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수도 텔아비브 남쪽 아랍인 거주지에서 성장한 다간은 자연스럽게 아랍어와 그들의 습성 등을 익혔다. 18살에 군에 입대한 그는 타고난 싸움 기술 특히 능수능란한 칼 던지기 솜씨를 갖고 최정예 특수부대 '샤이렛 매트칼'에 지원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떨어져 대신 공수부대에 들어갔다.


3년간의 의무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한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이 터지면서 다간은 장교로 임관돼 군문에 다시 들어갔다. 치밀함과 과감함을 동시에 갖춘 그는 군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등을 상대로 임시로 편성된 비밀 특수부대 샤이렛 리몬의 활약이 워낙 뛰어나 이를 지휘한 다간은 신체적 결함에도 최고의 특수전 전문가로 명성을 쌓는 한편 출세길을 달렸다.


다간은 진급과 함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 때마다 한가지 '보물'을 간직하고 다녔다. 바로 곤봉과 권총을 쥔 독일군 앞에 무릎을 꿇고 죽음을 기다리는 조부의 사진이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우리가 늘 강해져야 하고 스스로 지킬 힘을 기르지 않으면 유대인 대학살의 비극이 재현된다고 되새깁니다"라는 말을 다간은 습관처럼 방문객들에게 하곤 했다.


기갑여단장과 총참모부 국장 등을 거쳐 1995년 소장으로 전역한 다간을 모사드로 이끈 사람은 바로 그의 대부나 마찬가지인 아리엘 샤론 총리였다. 전역 후 베냐민 네타냐휴 총리의 대테러담당 보좌관을 잠시 지낸 다간에게 신임 샤론 총리는 특명과 함께 모사드(대외정보부) 수장 자리를 권했다. 2002년 8월이었다.


◇ 모사드의 '르네상스 맨'


다간이 취임할 당시 모사드는 엉망이었다. 요르단, 스위스, 키프로스, 뉴질랜드 등에서 팔레스타인 과격단체 하마스 지도자 등을 대상으로 한 제거 공작이 잇따라 실패하면서 모사드의 명성은 송두리째 떨어졌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구원투수'로 등판한 다간은 외교관 출신인 전임자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조직문화에서부터 공작활동까지 통째로 모사드 대개혁에 나섰다. 정보 수집과 분석 및 비밀 외교를 강조하던 것에서 벗어나 과감하면서도 치밀한 비밀공작을 중시하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또 미국(CIA), 영국(MI6) 등 우방 정보기관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 확대에도 발벗고 나섰다. 이에 일부 간부들이 불만을 표시하면서 퇴직했지만, 다간은 자신의 정책을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치밀하면서도 과감한 비밀공작은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대담하면서도 증거를 남기지 않은 치밀한 모사드의 비밀공작은 숙적인 아랍권 심장부에서 잇따라 이뤄졌다. 2004년 9월 26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한복판에서 하마스 간부인 이즈 엘딘 알쉐이크 칼릴이 SUV 승용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터진 폭발물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가자 지구 등에서 발생한 폭탄테러의 배후 인물로 지목을 받아왔다.


이어 2008년 2월 12일에도 다마스쿠스에서 대형 차량 폭탄사고가 일어났다. 희생자는 레바논을 근거로 한 과격 무장세력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중의 한 명인 이마드 무그니예였다. 1983년 레바논 주재 미 대사관과 미 해병대 막사 폭탄테러와 외국인 납치 등을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로 미 정부가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건 그는 이날 저녁 불귀의 객이 됐다.


두 사건 직후 영국의 선데이타임스 등 외신은 시리아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모사드가 배후에 있다고 보도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유력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시리아와 두바이에서도 모사드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대형 사고가 잇따랐다. 2008년 8월 1일 시리아 서부 지중해 연안 도시 타르투스 부근 알리말 알 자하비예 휴양지에서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의 군사 보좌관 겸 알키바르 핵시설 보안 책임자인 무하마드 술레이만 장군이 별장 앞바다를 지나가던 요트에서 발사된 총탄에 맞아 숨졌다.


미국의 도·감청 전담 정보기구인 국가안보국(NSA) 소속 요원으로 망명한 에드워드 스노우든이 공개한 NSA 문서는 술레이만 암살을 모사드와 '제13전단'으로 알려진 이스라엘 해군 특수부대의 '합작품'으로 기술했다.


또 2010년 1월 19일 두바이에서는 이스라엘 병사 납치와 살해 및 무기 밀반입 혐의로 수배를 받아온 하마스 요원 마흐무드 알마브후가 암살됐다. 특히 이 사건은 용의자로 지목된 33명의 모사드 요원들이 모두 영국,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호주 등의 위조 여권 소지자로 드러나 국제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다간의 모사드 국장 재직 시 가장 큰 성공작은 "지도상에서 이스라엘을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계획 저지 관련 공작이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심야의 불꽃놀이(中)
 
(서울=연합뉴스) 김선한 기자 =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주황색 섬광이 치솟았다. 곧이어 건물들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유리창들이 잇따라 부서지기 시작했다.


잠에서 깬 어린이들이 영문을 모른 채 울음을 터뜨렸다. 2014년 10월 5일 저녁 11시께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일어난 대형 폭발사고의 위력은 발생지인 파르친 군사 지역에서 15㎞ 떨어진 곳에서도 가옥이 심하게 요동칠 정도였다.


IAEA가 공개한 이란 파르친 지역 핵의혹 시설물 위성사진(출처: IAEA)


권위 있는 군사·정보 전문 매체 IHS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JDW)에 따르면 인공위성 사진 판독 결과 이 폭발로 군사 지역 내 대형 시설물 두 채가 완전히 파괴됐으며, 일부는 다음날까지 불길에 휩싸였다. 폭발 현장에서 300m 떨어진 곳의 건물도 피해를 보았다.


이 사고와 관련해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NYT)와 USA투데이 등 외신은 당시 사고 소식과 함께 이 지역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이스라엘 모사드가 이란의 핵무기 개발 관련 극비시설들이 들어선 곳이라고 나란히 지목한 표적이라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핵분열 물질의 연쇄반응을 일으켜 핵폭발이 일어나도록 하는 장치인 '폭약 렌즈' 개발 시설물이 파르친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IAEA도 이 지역이 핵무기용 기폭장치 시험장을 가능성이 크다며 사찰까지 시도했다.


이란은 이런 보도와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파르친 지역이 실각한 팔레비 정권 당시 탄약고로 건설됐다가 이후에는 미사일과 무인기(드론) 엔진 생산시설이 들어선 곳으로 핵무기 개발과는 거리가 먼 곳이라고 주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사드 개입설은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핵무기 개발 시도를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며 필요하다면 군사적 수단도 동원할 것임을 경고해왔기 때문이다.


2012년 발간된 '모사드' (Mossad: The Greatest Missions of the Israeli Secret Service)는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수록해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나온 또 다른 책 '아마겟돈에 맞선 스파이들'(Spies Against Armageddon)도 유사한 내용을 다뤘다.


실제로 지난 2010년 이후 이란에서는 가스관과 군 시설물 등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련의 폭발사고와 적어도 4명의 이란 핵 과학자들이 잇따라 피살됐다.


파르친 폭발사고 3년 전인 2011년 11월 12일에도 테헤란 인근 비밀 미사일 기지에서도 역시 대형 폭발사고가 일어나 기지 일대가 한순간에 폐허로 변했다.


다탄두를 장착한 이란의 탄도미사일(AP=연합뉴스 DB)


이 사고로 '샤하브'(shahab, 유성)로 잘 알려진 이란의 중거리미사일 개발 책임자인 하산 테라니 모가담 장군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장거리미사일용 고체연료 엔진 수십 기도 고철로 변했다. 역시 사고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모사드가 지목됐다.


테헤란 남부 바니 하셈 거리에서 발생한 핵물리학자 다리우쉬 레자이 네자드 피살 사건(2011년 7월 23일)도 모사드가 고용한 현지 공작원에 의한 것으로 훗날 밝혀졌다. 그는 핵탄두 작동에 필요한 전자 신호장치 개발작업 책임자로, 귀가하던 중 오토바이를 탄 두 명의 괴한이 쏜 권총에 맞아 즉사했다. 


네자드 피살 사건 전해인 2010년 11월 29일에도 마지드 샤리아리 박사와 페레이둔 아바시-다바니 박사 등 핵개발 계획의 최고 책임자급 두 사람이 역시 오토바이를 탄 괴한이 순식간에 부착한 차량폭탄에 희생됐다. 


또 같은 해 1월 12일에는 양자 물리학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자 핵개발 계획의 고문이던 마수드 알리 모하마디 교수가 출근하려고 자동차 문을 여는 순간 차량 부근에 세워진 오토바이에 설치된 폭발물이 터져 목숨을 잃었다. 


이란 정부는 오토바이를 동원한 공작수법을 고려할 때 이 부분의 '최고수'인 모사드의 소행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며 비난성명을 발표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뒤늦게 이란-파키스탄 커넥션 탐지, 저지공작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려는 메이어 다간 모사드 국장의 집요하고 치밀한 공작은 역설적으로 관련 정보 확보 실패에서 비롯됐다. 10년 넘게 이란의 이런 기도를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제정권인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란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한 아야툴라 호메이니는 '반이슬람적'이라는 이유로 핵무기 개발 계획을 반대했다.


그러나 이라크와의 전쟁 과정에서 독가스 공격을 경험한 데다 서방의 제재가 노골화하자 호메이니의 후계자로 권좌에 오른 알리 하메네이는 '자위 수단'으로 핵무기 개발을 승인했다. 


이란은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원자로 건설 계획을 추진했지만, 미국의 강력한 제동으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미국의 제지로 곤경에 처한 이란이 찾은 대안이 바로 파키스탄이었다. '파키스탄 커넥션'의 핵심인물은 압둘 카디르 칸 박사였다.


'파키스탄 핵무기의 아버지'로 유명한 칸 박사는 천연 우라늄을 가스로 바꿔 이를 원심분리기에 주입해 핵폭탄 제조에 필수적인 농축 우라늄-235를 분리 추출해내는 방식을 개발했다. 이를 고체로 전환하면 우라늄-235를 얻을 수 있었다.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의 주인공 압둘 카디르 칸 박사(EPA=연합뉴스 DB)


이란은 1987년 가을 파키스탄과 핵무기 개발을 위한 비밀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은 11년 후인 1998년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한 파키스탄 과학자의 증언과 다시 4년 뒤인 2002년 이란의 반체제 지하조직(MEK)이 이란 내 두 곳의 핵시설 존재를 폭로하고부터다.


2004년 2월 칸 박사가 파키스탄 TV를 통해 자신이 북한, 이란, 리비아 등 3개국에 원심분리기와 기술을 판매해 거액을 챙겼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파키스탄 정부가 그를 사면하면서 모사드는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하고 본격적인 저지공작에 나섰다.


번뜩이는 키돈의 창끝(下)
 
◇ 다간-번스 비밀 회동
 

다간 국장은 2007년 8월 워싱턴 D.C를 비밀리에 방문했다. 이란 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외교 공조 체제를 공식화하기 위해서였다. 니컬러스 번스 국무부 차관과의 비밀 회담에서 다간은 이스라엘이 수립한 대(對)이란 5대 전략을 설명했다.


유엔을 통한 외교적 압력,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원부자재 금수를 통한 저지 노력, 이란에 대한 금융 제재, 쿠르드족, 아제르족 등 이란 내 소수민족들을 동원한 정권 교체, 특수 공작원들에 의한 비밀공작 등이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외교적인 '모양새'를 갖춘 것이었을 뿐 모사드와 CIA 그리고 MI6 간에는 이미 2년 전부터 실질적인 협력체제가 가동되고 있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1년 전인 2007년 5월 비밀리에 이란 핵개발 시도 저지를 위한 CIA의 비밀공작을 승인했다. 


의회 청문회에서 이란 핵개발계획을 맹비난하는 마이클 헤이든 전 국가안보국장(왼쪽)과 니콜라스 번즈 대사(EPA=연합뉴스 DB)


공작은 다양하게 이뤄졌다. 구약성경 사사기에 나오는 기드온의 용사들로 자처하는 모사드의 은밀한 활동 흔적이 곳곳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핵개발 계획에 깊숙이 발을 담근 것으로 알려진 이란 최정예 혁명수비대 소속 장교 등을 태운 군용기 추락사고가 잇따랐다. 


미국의 전략정보 분석. 예측 전문업체인 스트레트포(Stratfor)는 일련의 항공기 추락 사건이 CIA, MI6 그리고 모사드가 함께 수행한 '합작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 진가 발휘하는 국제공조 


2008년 5월에는 우라늄을 가스로 전환하는 이스파한 핵시설에서 원인 모를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곧이어 유대계 공동체의 영향권에 있는 유력 언론매체들의 폭로보도가 잇따랐다. 


이란 이스파한 핵시설 광경(AP=연합뉴스 DB)


NYT는 스위스의 명문 공학자 가문인 티너(Tinner)가가 이란과 리비아의 핵개발 정보를 넘겨주는 대가로 CIA로부터 1천만 달러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보도 내용 중에는 티너 가문이 이란에 결함이 있는 전기 공급장치를 판매했고, 이 때문에 나탄즈 핵시설의 원심분리기 50대가 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것도 들어 있었다.


이란행 우라늄을 선적한 채 몰타 선적 화물선 '북극해 호' 납치 사건(2009년 7월)을 다룬 시사 주간지 타임의 특종 보도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런던타임스와 런던데일리텔레크래프 등도 러시아군 퇴역 장교가 이란에 우라늄을 몰래 판매한 사실을 모사드가 러시아 측에 알렸다고 전했다. 


이란은 이런 미디어의 파상공세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부인으로 일관하면서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120㎞ 떨어진 혁명의 성지(聖地) 콤 산악 지하에 비밀리에 핵 시설을 건설했다. 


그러나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다. 모사드와 CIA 그리고 MI6는 이란이 이 지하 핵시설에 3천대의 원심분리기를 설치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미, 영 그리고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관련 정보를 입수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이란 정부는 2009년 9월 IAEA에 존재 사실을 급하게 통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세 기관의 공조는 모사드가 이란 내에서 직접 활동하고, CIA와 MI6가 지원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는 모사드가 귀중한 정보원들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정보원들이란 다름 아닌 반정부단체인 국민저항위원회(NCRI)의 간부진이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NCRI 간부진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이란 핵 개발계획의 중심인물인 테헤란대학 물리학과의 모센 파크리자데 교수에 대한 상세정보를 제공했다.


핵폭탄의 연쇄반응과 미사일 적재용 소형화 부문에서 최고의 권위자인 파크리자데 교수의 정보를 확보한 다간은 국제 공조를 통해 미국과 유럽연합(EU) 입국 금지와 은행계좌 동결 등의 조치와 함께 제거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곧이어 사흐람 아미라라는 콤 핵시설 연구원이 아라비아에서 실종되는 등 개발 작업 핵심 관계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공작이 이어졌다.


◇ 컴퓨터 바이러스 심기 공작


2010년 여름 이란의 핵개발 계획을 통제하는 컴퓨터 수천 대가 당시 이름도 생소한 '스턱스넷'(Stuxnet)이라는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다른 부분에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은 채 특정 시스템에만 손상을 끼칠 수 있는 이 바이러스의 가장 큰 피해자는 나탄즈 핵시설 내의 원심분리기들이었다. 


발견이 어려운 이 바이러스는 원심분리기의 회전속도를 바꿔 결국 부산물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이듬해까지 이 바이러스는 이란 핵시설 내 원심분리기 절반가량의 작동을 중단시켰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 사이버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거론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물증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 


컴퓨터 바이러스 공격을 받은 이란의 부쉐르 원전(AP=연합뉴스 DB)


이란 핵개발 저지 작전과 관련해 모사드의 '해결사,' '암살자' 등으로 불리는 비밀공작원 '키돈'(Kidon)의 무용담도 회자됐다. 죽음의 공포도 아랑곳하지 않고 투철한 애국심과 직업적 헌신성으로 무장한 키돈들이 숨은 주인공으로 묘사됐지만 역시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모사드의 집요한 저지 공작이 없었다면 이란은 이미 핵무기로 무장해 중동정세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이 서방 정보기관들의 지배적 시각이다.


특히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사드의 이란 핵개발 저지 공작에 나선 다간 국장의 예리한 정세판단과 과감한 실행력에 대해선 과거 이스라엘과 4차례나 중동전쟁을 한 이집트의 극우 신문 '알 아흐람'도 "지난 7년간 다간은 이란의 핵개발 계획에 극심한 타격을 입혀 진전을 막았다"고 평가할 정도다.


<참고문헌>

*Michael Bar-Zohar & Nissim Mishal, Mossad: The Greatest Missions of the IsraeliSecret Service(2012)

*Dan Raviv & Yossi Melman, Spies Against Armageddon: Inside Israel's Secret Wars(2012)

*Gordon Thomas, Gideon's Spies: The Secret History of the Mossad(1999)

*Victor Ostrovsky & Claire Hoy, By Way of Deception: The Making and Unmaking of a Mossad Officer(1990)



[연합뉴스] 201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