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추억의 해병학교 (1) 해병학교 입교

머린코341(mc341) 2015. 11. 11. 20:38

추억의 해병학교 (1) 해병학교 입교


후보생 시절  덕산 사격장에서

 

진해 경화동에 위치한 해병학교에서 오른 손을 들고 선서를 하며 입교를 했던 날이 그렇게도 내 인생을 파란만장하게 만들 줄은 미처 몰랐다.


정확히 얘기를 하자면 당시는 간부후보생이라는 명칭이 아니고 해병학교의 사관후보생이라는 공식명칭이 붙어있었고 지금은 간부후보생이라고 불렸던 선배들과의 괴리가 생기지 않게하기 위해 편의상 함께 간부후보생 출신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고모부  한분이 해군장교로 진해에 계셨기 때문에 학창시절 방학을 이용해 여러번 여좌동 관사에 들렀던 적이 있었고 또 부산에서 버쓰를 타고 진해 시내로 들어 올 때 해병학교 연병장 앞으로 버쓰가 지나갔기 때문에 가끔은 해병대 간부후보생들의 제식훈련하는 모습이 눈으로 들어 오기도 해 진해의 해병학교가 그렇게 낯설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해병학교 35기에 입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직장에 있다 온 사람들이 많아  마악 대학을 졸업하고 온 사람들과는 어느 정도는 구분이 되고 있었다.


특히 나이가 들어서 온 사람들은 인솔하는 중사 한분의 지시나 명령에 잘 따르지 않고 동작들이 굼떠서 결국은 인솔을 하던 중사가 화를 내게 만들기도 했다.


"아니 당신들, 나이로 따져도 많아 봤자 스물일곱 밖에 더 됐겠소?"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대구 말씨를 쓰는 우람한 덩치의 한 사나이가 "그래 스물일곱살이 작소?"하고는 대들어 분위기가 졸지에 험악하게 되기도 했었다.


만약 여차하면 나도 그 덩치의 사나이를 거들 참이었으나 "그만들 하시오"라고 말리는 사람들이 여럿 나서는 통에 그 분위기를 뒤로 할 수 있었다.


잠시 후 피복을 배급할 때 옆에서 지키고 앉아 있는 중위 한 사람은 체격이 아담한데다 어떻게나 얼굴이 곱고 동안인지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32기였지만 동기생들보다 네살 정도가 더 많은 호랑이 구대장 김0중 선배였다)


밤이 되어 줄을 서 상륙형으로 머리를 깎고난 뒤에는 서로 쳐다보며 한참을 웃었다.


또 입교식을 마친 첫날밤은 내무실로 들어 와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가 어떤 이력의 소유자인지 한 사람 한사람 은연중에 살피게 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면 본능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좁은 방안의 네사람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군림을 해보려는 숨은 의지력은 누구에게나 잠재되어있는 또 다른 본능 같기도 했다.


우리 방에는 나보다 나이 두살이 어린 태권도 유단자가 두사람이나 되었다.

나는 어릴때 공부쪽 보다는 운동쪽이 좋았고 싸움을 구경하는쪽 보다는 직접하는 쪽이었다.


내가 고교 1학년이었을때는 태권도가 그렇게 많이 보급 되었던 때가 아니었으므로 보통 사람들은 유단자라면 사람 몇명은 문제 없이 죽일 정도가 되는 줄로 알고 있었을 때였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유단자가 우리 학년에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사람은 이미 내가 쉽게 항복을 받았는데 키가 182세치나 되는 유단자는 나를 오히려 쉽게보는 편이어서 결국은 한판을 붙게 되었다.


마침 빈 교실이 있어 동학년의 심판들까지 동원한채 맨발로 뛰자는 상대의 제안까지 들어 주면서 붙었는데 처음에는 옆차기에 걸려 내가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으나 나중에는 기회를 보아 재빨리 닥아가면서 연타를 퍼부어 결국 그 친구의 머리가 유리창을 깨면서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들어 오면서 "졌다!'라는 말과 함께 결판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내나름대로 당시 전국에서 알아주던 광성고교의 권투도장을 다니고 있었을 때였고  유도와 장술도 함께 이미 입문을 하고 있었을 때라  적어도 이불속에서는 만세를 부를 정도의 쌈꾼은 되어있었다.ㅋㅋ

그러나 35기 5구대의 우리방은 내가 누군지를 알리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사람을 잡으면 한 사람이 튀고 나머지 한사람은 부처님 같은 소리만하고 그것도 워낙 험악한 분위기로 돌아서면 겁이나 우리를 말리는 말소리마저 떨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함께 고생을하며 세월이 가다 보면 미운정 고운정이 다들게 마련인 것이 동기생들이었다.


특히 마주보는 앞 내무실과는 티격 태격하는 수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때면 모두 똘똘 뭉쳐 형제처럼 함께 편을 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곧 뭉쳤다가도 헤쳐지고 또 헤쳐졌다가도 다시 뭉쳐지면서 서로가 더욱 돈독한 정을 굳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