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교 글/해간35기 구문굉

영천 따까리 시절 (1)|

머린코341(mc341) 2015. 11. 11. 21:13

영천 따까리 시절 (1)


1967년 당시 경북 영천에 있었던 육군 헌병학교 위탁 교육 시절. 육군 장교들은 모두 BOQ에서 생활을 했으나 우리는 해병대라고 우겨서 장교 네명 모두가 시내에서 하숙을 했다.


처음에는 시내에 있는 한 여관에서 하숙을 했었는데 막상 그곳에서 하숙을 하고보니 너무 시끄러워 공부는 고사하고 놀다가 볼 일을 다 볼 정도라 성적이 걱정 될 정도였다.


나는 해간 30기 정대위 선배님과 방을 함께 썼고 같은 해간 동기생인 26기 조대위와 임대위 두 선배님들은 자기들끼리 한 방을 썼다.

 

우리는 은근히 30기 정대위가 S대 법대 출신이라 1등을 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26기 선배인 조대위께서 나를 잠시 부르더니 "야. 구중위, 일등은 너가 해야 해!"하고는 압력을 넣었다.


아마 경쟁을 시켜야 되겠구나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대답은 "네"라고 했지만 법학이 전공도 아닌 내가 대부분이 법대 출신인 사람들을 어떻게 당할 것이며 특히 군형법이나 형법이나 행정법은 처음 듣는 강의가 되어 재미는 있었으나 남보다 성적이 앞선다는 것은 애시당초부터 내 사전에는 없는 것이었다.

 

비록 시골이었지만 여관은 밤만 되면 시끄러웠다.


베니야 한장으로 도배를 해 막은 방들이라 한밤중에는 옆방의 숨소리까지 다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한참 남녀가 어울리기 시작할 때부터 크라이막스에 이르는 모든 소리를 다 오디오로 감상을 할 수 있었고 방 뒷편으로 유리나 창호지의 가림도 없이 뚫어 놓은 처마 밑의 조그만 환기통 구멍은 우리가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비디오의 스크린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더욱 예민했던 것은 나보다는 모두가 기혼자들인 선배들이었다.


물론 나도 호기심이 발동을 해 한옥집 뒤쪽으로 좁게 나 있는 담벼락과의 사이에 살그머니 들어 가 작업을 할라치면 우리가 기초반 교육을 받았을 때 교관을 했던 임선배께서 한발 먼저 와 있을 때가 많았다.


"야. 구중위, 여기 좀 엎드려"
"형은 왜 나왔소?  형수 보고 온지 며칠이나 됐다고..  내가 먼저 엎드리면 저번처럼 나중에 토끼려고?
한번 속지 두번은 안속아요"
"그래 그래 알았어. 너가 먼저야"


원체 뼈다귀 스타일의 임선배 보다는 내가 훨씬 무거웠기 때문에 사람의 머리가 보일까 말까 할때 더 참지 못하고 임선배는 나를 내리려 한다.


소리를 난짝 낮추어 "아직... 아직..."


"야, 이 시끼야 나 죽겠어.."  


결국 차례를 바꾸고 나면 내 등을 밟고 올라간 선배는 내려 올 줄을 모른다.


"안내려 올거요? 나 일어설거요 그럼.." 그러고는 약간씩 흔들어 댄다.  


"야, 조금만 더.." 으례 임선배는 시간이 길어지기 일수였고 반면 정선배나 조선배는 잠낀 잠깐씩만 관심을 보이는 스타일들이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신 조 선배님 그리고 70년대 초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정 선배님 그리고 친구처럼 항상 같이 낄낄 거리시던  임 선배님이 새삼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