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관 사진/6대사령관 공정식

제1장 - 1. 미 해병대사령관 그린 대장의 초청

머린코341(mc341) 2016. 8. 12. 23:16

제1장 - 1. 미 해병대사령관 그린 대장의 초청

 
  베트콩의 활동이 절정이었던 1965년 5월 어느 날 나는 미 해병대사령관 그린 대장의 초청에 의해 부부동방으로 방미의 여정에 올랐다. 나는 방미에 앞서 해병대사령부의 미 해병 수석고문과 주한 미 해군사령관 그리고 유엔군사령관으로부터 월남의 전황과 미국의 처지 등에 관해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이들 가운데 특히 미 해병대 수석고문은 주월 미 해병대가 고정하고 있다는 말과 아울러 "만약 한국전쟁 때처럼 한국 해병대가 미 해병대와 함께 형제 해병으로 월남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싸울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영광스런 일이 되겠는가?" 하는 말을 했다.


  하와이에 도착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와이에서 워싱턴까지 우리가 탑승할 항공기로 정기적으로 운항되는 공군 수송기가 아닌 미 해병대사령관 전용기가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 도착한 이후 나는 미 해병대가 마련한 스케줄에 따라 백악관과 국방성(펜타곤)을 비롯한 여러 기관들을 방문했고,  미 대통령 전용 헬기(미 해병대 소속) 중 한 대를 제공 받았으며, 미 해병대사령부와 그 예하의 여러부대들을 시찰하는 동안 정중하고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내가 미 해병부대들을 시찰하는 동안 자리를 같이 했던 대부분의 지휘관이나 참모들의 공통된 발언은 "한국 해병대와 같이 싸웠으면..."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1950년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한국전쟁 동안 한·미 해병대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적과 싸웠던 것을 상기하고 한국 해병대가 월남에서도 미 해병대와 함께 자유수호의 일익을 담당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 개인적으로는 여러분의 의견을 지지합니다만 한국 해병대의 해외 파병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결정할 일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런 나의 대답에 대해 미 해병대사령관 그린 대장은 "만약 미국 정부가 한국군의 월남 파병을 요청할 경우 당신은 국방장관과 대통령에게 한국 해병대의 파병을 직접 건의할 용의가 있는가?"라고 물으며 나의 적극적인 노력을 간곡히 당부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월남전 참전 초기 예상과 달리, 막강한 화력과 첨단장비를 가지고도 전쟁을 조기에 끝내지 못하고 엄청난 희생자만 내고 있었고 또 그로 인한 국민들의 반전 여론도 큰 부담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태는 더욱 빠르게 진전되어 내가 귀국한 직후 미국 정부로부터 우리 정부에 빠른 시일 내에 1개의 전투사단을 파월해 줄 것을 요청해 왔고 그 외교문서가 도착한 바로 그 다음 날 나는 청와대의 '특별 리셉션'에 초청되었다. 그 특별 리셉션은 파월 문제를 거론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 리셉션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하여 브라운 주한 미 대사. 김성은 국방장관, 장창국 합참의장, 유엔군 사령관 하우즈 대장,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군수뇌부가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미국 대사와 유엔군사령관이 다시금 미국 정부의 뜻을 전하며 협력을 요청하자 박 대통령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협력할 것을 시사했다.


  국방장관이나 다른 군수뇌들도 조심스러우나 동조적인 발언들을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히 육군참모총장 김용배 대장과 해병대사령관인 필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언제쯤 출동할 수 있겠나?"


 이 질문에 육군참모총장은 최소 6개월 정도의 파월 준비기간이 필요하겠다고 했고 나는 대통령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지금 당장에라도 출동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이에 덧붙여 1개 대대가 출동하는데 24시간, 1개 연대는 48시간, 1개 사단은 72시간이면 된다고 하면서 해병대는 항상 출전할 태세를 갖출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다고 보고했다.


 그 같은 나의 답변에 박 대통령은 크게 고무되었고, 미국 측 참석자들도 안도하는 듯 보였다. 월남전에 투입되기 위한 부대 편성과 현지 적응능력을 감안한다면 황당무계한 것이었으나 국가전략기동군이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해병대사령관으로서 당연한 답변이었으며, 지금 생각해도 참 적절한 대처였다.


  미 해병대사령관 그린 대장의 초청으로 김포공항에서 미국으로 출발하는 필자 부부. 1965. 5


 
 미 해병대사령관 전용기로 워싱턴에 도착한 필자 부부. 1965. 5


 
 워싱턴 공항에서 필자 부부를 영접하는 미 해병대사령관 그린 대장. 1965. 5


 
 워싱턴 D.C의 미 해병대사령부에 도착, 사열식에 임하는 미 해병대사령관 그린 대장과 필자. 1965. 5


 
 미 해병대사령부 의장대 사열. 1965. 5


 
 의장대 행사 후 미 해병대사령관 그린 대장 및 제병 지휘관과 환담을 나누는 필자. 1965. 5


 워싱턴 D.C 해병대사령부 선셋 퍼레이드(Sunset Parade)에 참석하여 중앙에서 거수경례로 답하고 있는 필자와 미 해병대사령관 그린 대장. 선셋 퍼레이드는 황혼이 질 무렵 시작되는 열병식으로 행사가 끝나면 귀빈과 함께 만찬장으로 연결되는 미 해병대의 전통적인 환영 행사이다. 1965. 5

 

 미 해병대 의장대와 함께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참배하는 필자. 1965. 5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헌화하는 필자. 1965. 5


 
 미 해병대사령관 공관에서 그린 대장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가한 필자 부부와 정광호 소장. 1965. 5


 
 월남전 파병을 담당한 국방성 고위 관료 부부와 필자 부부. 1965. 5


 
 워싱턴 D.C 주재 김현철(국무총리 역임) 한국 대사 부부가 필자 일행과 그린 대장 부부를 만찬에 초대했다. 1965. 5


자료 출처 : 해사1기, 예비역 해병중장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님 사진첩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