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감투가 세개?" 한반도 안보 실세 美 육군대장의 실체는
전 세계를 무대로 군사작전을 펼치는 미군의 장군들 중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다.
전시에는 동맹국 군대와 미군을 합쳐 60만명이 넘는 병력을 지휘하면서 한 국가와 인접 지역 일부를 작전 지역으로 삼는다.
정부와 국가 단위를 초월한 국제기구인 UN의 위임을 받은 사령관으로서 휴전 상황을 관리한다. 수만명의 해외 주둔 미군의 복리후생을 위해 예산 규모를 협의하며 본국 정부 및 의회와 긴밀히 소통하기도 한다. 바로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이다.
지난 2일 한국국방연구원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이 강연을 하고 있다.
미 유럽사령관처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지상군 사령관을 겸하는 등 두 개 이상의 직책을 갖는 미군 장군들이 종종 있지만 UN의 이름이 붙은 UN군사령관을 맡고 있는 장군은 한미연합사령관이 유일하다.
주한미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 UN군사령관이라는 ‘삼위일체’ 직책은 빈센트 브룩스 미 육군 대장에게 한국 내에서는 그 누구도 그의 언행을 무시할 수 없는 권한과 권위를 부여한다.
◆ ‘삼위일체’ 사령관 영향력 극대화하는 美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주어진 ‘삼위일체’ 직위는 서로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난 2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국방연구원(KIDA) 주최로 열린 국방포럼에 참석한 브룩스 대장의 강연이 대표적인 사례다.
브룩스 대장은 ‘한미동맹의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다른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제 장병들이 절대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주한미군 장병들의 안위를 책임지는 주한미군사령관과 한반도 안보를 책임진 한미연합사령관으로서 한 말이다.
브룩스 대장은 “수도권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 대한 추가적인 중첩 미사일방어를 위해 주한미군사령관으로서 한국 합참, 국방부와 긴밀히 협조해 아낌없는 조언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한미연합사령관의 책임을 언급한 발언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브룩스 사령관은 “역사적으로 적이었던 국가들, 깊은 반감이 있는 국가들 사이에 신뢰를 형성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미사일 조기경보 분야부터 정보공유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며, 역내 국가들이 광범위하게 파트너십을 구축해 통합 노력을 보여주면 북한 김정은이 보유한 군사력은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군 당국간 정보공유를 위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는 해석을 낳은 이 발언은 한미연합사령관도, 주한미군사령관도 아닌, 초국가적 조직인 UN의 깃발 아래 활동하는 UN군사령관이 아니면 말하기 쉽지 않다.
브룩스 사령관이 5월12일 이순진 합참의장과 함께 판문점을 방문해 경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한반도 정전협정을 관리하고 비무장지대(DMZ)를 관할하는 UN군사령관은 주일미군이 사용하는 일본 내 7개 후방기지도 관리한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 기지를 통해 병력과 장비를 지원받아야 하고, 일본 자위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일 양국 군사협력 강화는 한반도 안보를 책임진 브룩스 대장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 한미일 군사일체화를 추구하는 미국 정부의 속내가 결합한다면 ‘북핵 방어’라는 명분과 ‘미국의 이익 극대화’라는 실리를 모두 갖춘 훌륭한 논리가 만들어진다. 그 논리를 초국가적 조직의 권위를 등에 업은 군인이자 행정가, 정치인이자 외교관인 미군 대장이 전파하면 반론을 제기하기 쉽지 않다. 브룩스 대장이 예민한 사안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는데도 반발이 크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미 공병부대가 부교를 가설해 K-200 장갑차를 도하시키고 있다.
◆ 한미연합사령관의 권한, 우리 군에 ‘부메랑’ 될 수도
‘삼위일체’ 미군 사령관의 권한과 권위는 우리 군의 군사행동에 명분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지난 6월10일 한강하구 중립수역에 침입한 중국어선 단속 과정에서 브룩스 대장이 사령관으로 있는 UN군사령부 예하 군사정전위원회는 이 수역을 통행하는 중국어선을 정전협정을 위반한 ‘무단 진입 선박’으로 규정했다. 한강하구 중립수역과 DMZ는 UN군사령관 관할로 우리 군은 UN군사령부 요원과 함께 중국어선 단속에 나서 2척을 나포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지난 6월10일 한강하구 중립수역에서 중국어선 불법조업 단속에 참여한 유엔군사령부. 중립수역은 유엔군사령부 관할로 단속과정에서 정전협정 준수 여부를 점검했다.
문제는 한미연합사령관의 권한과 권위가 한국 정부나 군 당국의 의지와 충돌할 경우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는데 있다.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이 도발로 이어지면 한미연합사령관이 합참의장과 함께 대응에 나선다. 하지만 우리 군이 북한에 단호히 대응하면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조사하도록 지시하는 사람은 한미연합사령관을 겸하는 유엔군사령관이다.
우리 군의 ‘도발 원점 타격’을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중립국 감독위원회가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제지하면 뾰족한 수가 없다.
사령관들의 통제되지 않은 발언도 한국 정부를 때때로 곤혹스럽게 한다.
브룩스 대장의 전임자인 커티스 스캐퍼로티 대장은 2014년부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주한미군에 배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전 협의 없이 제기된 스캐퍼로티 대장의 발언에 한국 정부는 진땀을 흘려야했다.
2007년 1월 버웰 벨 한미연합사령관은 당시 화두였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되면 유엔군 사령부에 전시조직이 새롭게 구성돼야 한다”며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 이양해도 유엔군사령관으로서 정전협정 관리와 한국군 지휘권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시사해 전작권 전환 찬반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 있는 막강한 힘을 우리 군이 자신의 것으로 착각할 경우 발생한다.
핵무기가 없는 우리 군이 북한에 군사적 억지 능력을 발휘하려면 북한을 압박할 ‘카드’를 보여줘야 한다. 탄도미사일 발사 등 비대칭 무기 사용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린 북한군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파악한다. 마음만 먹으면 북한 수뇌부를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한미 해병대 요원들이 모니터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보며 의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이 정보수집자산을 통해 확보한 정보나 작전계획이 노출될 위험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8월 발생한 ‘작전계획 5015’ 논란이다. 선제타격을 통해 북한 정권을 무력화시키는 내용이 담긴 작계5015가 언론에 노출되자 스캐퍼로티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은 우리 군에 공조 조사를 요청하는 등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미 군사공조에 악영향을 미칠 사안이지만 북한 압박용으로 더없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공개해버린 작계5015 논란은 한미 군 당국의 정보공유 측면에서 보이지 않는 후유증을 남겼다.
전 세계의 연합방위체제 중 가장 복잡한 것이 한미 연합방위다. 권한이 중첩되는 미군사령관으로부터 파생되는 복잡다단한 지휘체계에 정치적 입장까지 포함되면서 미군 사령관의 영향력은 커지는 반면 우리 군은 결정적인 순간 한계에 부딪힌다. 한미연합사령관이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면밀히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세계일보]201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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